펼침은 공격 무력화하는 진실·아우름…나라 사랑한다면 모두 활짝 펴 보여라

날이 차다. 손 시리다고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출근하다 빙판길에서 나뒹굴었다. 땅을 짚거나 무엇을 붙잡았으면 덜 다쳤을 텐데 무릎이 까이고 얼굴이 긁혔다. 아니 그 전에 팔을 허우적거려 중심을 잡아 넘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손이 구속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다. 뉴스를 보면 범죄자를 검거할 때 손목에 수갑부터 채운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비선 실세나 돈이라면 닭을 봉황이라 팔아먹던 재벌들도 쇠고랑을 차는 순간 바로 끝장이다.

손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사람의 팔목 끝에 달린 부분이라고 했다. 정확하지만 뭐랄까 너무 어석버석하다. 인류는 직립 보행에 이어 손을 진화시켜 오늘날의 문명을 이루었다. 머물러 있는 생각을 머리에서 끄집어내어 행하는 것이 손이다. 손은 약 30개의 뼈마디로 만들어졌다. 그 한 마디마디가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어릴 적 사고로 왼손 검지 두 마디를 잃었는데 악력을 재면 5㎏정도 차이가 난다. 불편하기도 여간한 것이 아니다. 손가락 중에 가장 굵고 짧은 것이 엄지다. 어머니 손가락을 뜻하는 어원에 걸맞게 최고 중요한 손가락이다. 많은 나라에서 엄지를 치켜세우는 것이 최고라는 뜻을 나타낸다. 엄지가 없으면 물건을 집거나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없다. 당장 엄지를 사용하지 않고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먹어보면 실감할 것이다. 검지는 엄지와 더불어 물건을 집거나 정밀한 일을 할 때 사용하므로 집게손가락이라 부른다. 무언가 가르쳐 주거나 나아갈 방향을 알려 주기도 하지만 남을 무시하거나 경멸하는 의미로 삿대질에 쓰이기도 한다. 가운뎃손가락인 중지는 서양에서는 모욕적인 욕이기도 하지만 지성을 나타낸다. 가운뎃손가락이 길면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나다는데 사실을 확인할 순 없지만 피아노 건반을 타고 넘는 손이 솥뚜껑보다는 희고 긴 손가락이 왠지 더 어울릴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그보다 주먹을 쥐어보면 가장 힘을 많이 받고 손을 오므려 물을 뜨면 가장 깊고 넓게 만들어 주는 것이 가운뎃손가락이다.

넷째 손가락인 무명지는 말 그대로 이름 없는 손가락이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손도장을 보면 이 무명지 한 마디가 없다. 1909년 3월 안중근을 포함한 12인의 의사는 나라를 망하게 한 이토 히로부미와 나라를 팔아먹은 이완용을 처단하지 못하면 자결하기로 뜻을 모으며 왼손 무명지 한 마디를 잘라 혈서로 '대한독립'이라 써서 결의를 다진다. 왜 하필 넷째 손가락을 잘라 동맹했을까? 저격이나 전투에서 손을 온전히 시용하는데 가장 쓰임이 없는 손가락이기에 그랬다지만 다른 의미가 더 크다. 이 손가락을 약지(藥指)라고 한다. 한방에 탕약을 짜서 복용하기 전 뜨거운 정도를 보기 위해 저어보는 손가락이라는 말도 있지만 전설이나 옛 문헌에 피를 먹여 사람을 살릴 때 베는 손가락이라 약지라 불렀다. 새끼손가락은 작고 얇다하여 소지라 부르기도 하고 소중한 약속을 서로 걸어 다짐하는 손가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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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하나하나 소중한 이 다섯 손가락을 꼭 쥐어 보자. 주먹이 된다. 주먹은 분노이고 강함이요 단결이며 저항이다. 그러나 그러쥔 주먹은 탐욕이며 불통이고 폭력이며 독선이다. 주먹으로 항거하여 이루어 냈거나 폭력으로 찬탈한 역사 이후에는 늘 불통의 대립이 뒤를 따랐다. 5·16 군사 쿠데타가 독재로 이어졌고 6·10항쟁으로 3당 야합이 벽을 쌓았다. 그러면 이번에는 양손을 활짝 펼쳐 보자. 바로 무방비 자세가 된다. 이런 상태에서는 여포 창날 같은 날카로운 공격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나를 다 드러내놓고 무너질 것 같지만 결코 지지는 않는다. 손바닥을 펼쳐 내보이는 것은 진실함이요 아우름이다. 예리하고 치밀한 공격을 무력화하는 주먹조차도 펼침을 이길 수가 없다. 펼침은 지고이기는 것이 아니라 감싸 안아 펼치게 하여 함께 맞장구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모두들 나라를 사랑하고 주권을 가진 국민들을 위한다면 활짝 펼쳐 보여라. 자 가위바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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