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발목 부상 방치하다 악화…올해 '높이뛰기' 국가대표 뽑혀

육상 선수에게 31살 나이는 ‘환갑’에 비유된다. 하지만 정수혜(31·창원시청) 선수는 지금부터가 인생 제2막이라며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주변에서도 그의 도전을 단순한 바람이나 허풍으로 보지는 않는다. 몇 년간 부상과 재활로 힘겨운 시기를 보낸 정수혜는 지난해 자신의 높이뛰기 최고 기록을 6년 만에 연달아 갈아치웠기 때문이다. 이제 그가 바라보는 더 높은 곳은 2018년 아시안게임이다.

그를 지도하는 구영진 감독은 “수혜 같은 친구는 처음 본다. 너무 열심히 해서 오히려 따라다니며 훈련 좀 줄이라고 한다. 부상으로 그동안 제대로 운동 못한 것이 얼마나 한이 됐으면 저러겠나 싶다. 늦었지만 뭔가 보여줄 선수다. 꼭 기억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수혜 선수와 일문일답.

-어릴 때부터 팔다리가 길쭉길쭉했나?

“6학년 때 키가 이미 169㎝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운동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했어요. 먼저 운동을 시작한 언니가 얼마 못하고 힘들어 포기를 했어요. 뛰어노는 것이 제일 재미있는 일 중 하나잖아요. 그런데 그게 뭐 힘들다고 포기할까 하는 호기심에 시작했습니다. 허허. 5학년 때는 부모님이 그만두라고 했는데 속이고 계속하다 들켜서 혼나기도 했어요. 그때 계속하고 싶다고 사정해서 했는데 그게 운명이었나 봐요.”

-세부종목이 많이 바뀐 것으로 안다.

“처음에는 포환던지기를 했어요. 6학년 때 소년체전 나가서 은메달을 땄고요. 중학교 입학해서 높이뛰기를 하다가 2·3학년에는 창던지기로 전환해서 2관왕 하기도 했어요. 고등학교 때 본격적으로 7종 혼성을 시작했죠. 높이뛰기, 멀리뛰기, 허들 100m, 포환던지기, 창던지기, 200m와 800m 달리기 7종목인데요. 전국체전 나가서 2관왕 하기도 했죠. 그러다 부상을 당해 몇 년 쉬고 2∼3년 전에 복귀했는데 최근 다시 높이뛰기로 바꿨습니다. 지난해 전국체전을 준비하다 뛰어야 할 종목이 많아 연습과정에서 부상을 당했어요. 애초 2·3관왕이 목표였는데 겨우 은메달 하나를 땄습니다. 나이가 들어 여러 가지 하는 것보다 최근 기량이 향상되면서 성적이 잘 나오는 높이뛰기에 집중하려고요.”

-어쩌다 부상당해 몇 년을 쉬었나?

“몇 년 쉰 것은 아니고 회복 과정이 몇 년 걸렸어요. 진명여중, 진주여고 졸업하고 경남은행에서 운동하다 2010년에 진주시청으로 옮겼어요. 2011년 4월쯤일 거예요. 왼쪽 발목 아킬레스건을 다쳤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계속 운동하다 악화했죠. 나중에는 통증 때문에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데 정밀진단을 해도 원인을 못 찾아서 병원을 옮겨다녔죠. 원인을 못 찾다보니 심리적인 탓으로 생각하고 다시 운동을 하다 결국 수술을 받게 됐죠. 당시에 의사 선생님이 조정 등으로 종목을 바꾸라고 권유하시기도 했어요.”

-회복은 힘들지 않았나?

“2012년 8월에 수술을 했는데 6개월 지나면 운동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간신히 걸었어요. 자연스럽게 마음이 답답하고 힘들었죠. 재활이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급하게 운동을 시작하다 보니 무리가 오고…. 그러다 다시 몇 개월 쉬었고요. 수술하고 재활하는 데 3년 넘게 걸렸어요.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그냥 아픈 게 해결되면 끝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몸 만드는 과정이 더 힘들었습니다. 3년 넘게 쉬었으니 완전히 민간인 몸이죠. 그런데 마음은 최상의 상태만을 기억하고 있으니 매번 좌절하고 또 조급해하고…. 뭣보다 두려웠던 것은 다시 당당하게 선수로 운동장을 누비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죠.”

123.jpg
▲ 구영진 감독이 몸을 푸는 정수혜(오른쪽) 선수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고 있다. / 유은상 기자

-창원시청으로 옮긴 계기는?

“허허, 간단합니다. 진주시청 육상팀이 해체하면서 옮겼습니다. 사실은 그전에 구영진 감독님 러브콜을 몇 번 받았지만 인연이 되지 못했어요. 그러다 마지막으로 멋지게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창원시청으로 왔습니다. 제 부족한 부분이 구 감독님께서 잘 가르치는 강점분야라 제대로 배워보려고요. 그 덕에 최근 높이뛰기 성적이 6년 만에 최고 기록을 경신했어요. 나이가 들어 7종을 계속하기에는 체력적인 한계와 부상 부담이 커요. 그래서 감독님과 논의해서 높이뛰기로 완전히 전향을 했습니다. 1m 84㎝가량이면 아시안게임 입상권에 듭니다. 한 4∼5㎝만 높이면 됩니다. 올해 국가대표로도 뽑혔는데 잔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하면 합류해서 또 훈련을 해야죠.”

-‘악착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장점인가.

“아닙니다. 타고난 체력조건과 유연성, 훌륭한 인성, 인내력, 미모 등등 모두 장점입니다. 호호∼. 농담이고요. 악착같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최고의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런데 그건 타고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부상으로 4∼5년 운동을 못하다 겨우 회복하고 보니 어느덧 은퇴를 고민해야 할 시기더라고요. 그러니 시간이 너무 아까웠어요. 아쉬움과 미련,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마지막 남은 열정을 태워보려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만 좀 하고 쉬어라’는 이야기를 감독님과 주위 사람들에게 자주 들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 들으면 조금씩 보람을 느껴요. 더 열심히 해야죠.”

-선수로서 목표와 앞으로 인생 계획은?

“2018년 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꼭 메달권에 들고 싶습니다. 이것은 저의 욕심이기도 하지만 구 감독님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감독님 제자들이 올림픽, 세계선수권대회 등 모든 메이저대회에 다 출전했지만 아직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제가 꼭 메달을 따서 소원을 이뤄드리려고요. 그리고 장기적으로 선수를 그만두면 트레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그것도 재활심리 전문트레이너 말입니다. 선수를 하면서 부상과 슬럼프, 재활, 회복, 복귀 과정을 겪으면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힘들어하는 또 다른 나를 위해 힘이 되어 주려고요. 더 공부해서 그쪽 일을 하고 싶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