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호실 고 ○○○ 님 화장이 끝났습니다." 기계음 같은 멘트가 나오자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남성이 늘어뜨린 손에 애써 힘을 주고 주먹을 쥔다. 하지만 작고 하얀 항아리를 마주한 순간 이내 그 다짐은 산산조각 난 듯하다. 그는 붉어진 눈시울을 숨기지 못한 채 이미 울음이 터져버린 주변인들을 다독인다.

쭈뼛쭈뼛 서 있는 20대 중반 고인의 지인들은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이 믿기지 않는 표정이다.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젊음만큼이나 어색한 눈들은 항아리 속에 담긴 고인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다. "아까버서 우짜노 우째." 고인의 친척 아저씨쯤 돼 보이는 남성은 연방 아깝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서 더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주입하듯 '이제 다 끝났다'고 되뇐다.

지난달 31일 창원시 의창구 두대동에서 친구들과 술자리 후 집으로 돌아가던 한 청년이 세상을 떠났다. 경찰이라는 꿈을 향해 달리던 그는 마지막 문 앞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혹자는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술을 마신 것 아니냐', '그 시간에 도로에 있다면 발견하기 어려웠겠다' 등 피해자가 원인을 제공했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추측일뿐더러 문제는 고인이 실수를 했더라도, 그래서 차에 치였더라도, 피를 많이 흘렸더라도 살 수 있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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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구급차를 불렀다면 그가 큰 수술을 하거나 오랜 시간 병원에서 지낼지라도 가족들 곁에 있을 수 있었다. 문병 온 친구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학교로 돌아갈 날을 손꼽을 수 있었다. 뺑소니 사고 가해자가 비난받아 마땅한 이유는 피해자가 살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고인이 젊은 생을 이어갈지 말지는 그를 치고 달아난 운전자가 판단할 몫이 아니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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