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의지 없어 보였던 거래처 아저씨…어느 날 울먹임에 내 마음 녹아내리고

슈퍼에 과자를 팔면서 거래처에 일주일에 한번 간다. 간혹 장사가 안돼서 2주에 한 번 가는 거래처가 있는데 드물다. 문구점은 학생이 줄면서 더러 2주에 한 번 가는 거래처가 있다. 거래를 하다가 문구든 슈퍼든 매출이 너무 저조하면 주기적으로 방문을 한다는 게 어렵다. 그런 경우에는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전화를 달라고 부탁한다. 좋게 말해서 전화주세요지만 주기적으로 방문하지 않는다는 건 거래처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거다. 자동차로 말하면 스페어타이어 같은 거래처다.

행운마트가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닌데 이웃건물에 슈퍼가 들어오면서 밀리기 시작한다. 경쟁적으로 할인도 하고 오래된 가게 인테리어도 하고 어떻게든 경쟁을 해야하는데 그냥 멍하다. 여름이면 햇빛이 들어오는 자리에 전병이고, 건빵, 고구마, 소라과자를 그냥 방치한다. 유통기한이 남아있는데 냄새가 난다고 반품을 한다.

도롯가로 먼지가 뿌옇게 낀 과자를 성의없이 반품한다. 반품이 너무 많아서 2주에 한 번 오겠다고 반품을 줄여달라고 부탁을 해본다. 몇 번의 실랑이를 한 다음부터 과자를 반박스씩 주문한다. 매번 번거로운 판매를 하면서 남는 이익금을 반품으로 받아온다. 가게가 낡은 것도 그렇고 판매가 저조한 것도 그렇지만 내가 화가 난 건 너무 성의가 없다. 어떻게든 경쟁해보려고 애를 써야 하는데 그런 게 없다. 매일 봐오던 이웃들이 옆집 슈퍼로 가면 가는 대로 낡은 모습, 낡은 생각 그대로다.

한 달만인 것 같다. 늘 아줌마가 있었는데 아저씨가 주문을 한다. 몇가지 되지않는 주문을 챙기고 가본다. 스니커즈랑, 초콜릿이 떨어져 있다. 그간에 수금은 잘 해줬는데 최근에 그마저도 밀린다. 습관적으로 영업을 한다. 수금이 밀리면 추가영업을 하지 말아야하는데 마음 따로 말 따로다. 마음은 아닌데 눈이, 입이 술술 영업을 한다. 필요해보이는 몇가지를 영혼없이 영업하는데 고개를 젖는다.

그럼 그렇지 생각해보는데 아저씨가 할 말이 있는지 주저주저한다. 실은 다음달에 한 달쯤 휴가를 갈 생각이란다. 무슨 소리인가 싶다. 슈퍼하는 사람들 일년에 휴가 3∼4일도 가지 않는데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 휴가란 건 가게를 접는다는 소리와 다를바 없는 이야기다. 수익에 도움도 되지 않는 거래처가 휴가를 가든 말든 상관없어서 건성으로 듣는다. 나는 건성인데 아저씨에게 나는 건성이 아닌가보다.

순간 묘한 느낌을 받는다. 초등학교 동창이 우리 친했다고 내 이름을 부르고 그때 있었던 일을 반갑게 이야기하는데 전혀 기억나지 않는 상황처럼 아저씨는 묻지도 않은 말들을 이어간다. 자기는 회사에서 정년퇴직하고 10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았다고. 시간대가 달라서 그렇지 매일 슈퍼로 출근했었다고. 최근에 아줌마하고 시간대를 바꿔서 이제야 나를 본다면서 말이다. 정년퇴직하고 10년 하루도 쉬지 않았는데 좀 쉬어도 되지 않냐고 물어온다. 자기는 일만 했지 한 번도 한가롭게 쉬지 못했다고. 자기 가게가 아니어서 인테리어를 하고 싶은데도 건물주가 언제 나가라고 할지 몰라서 그렇게 못한다고 말한다. 지쳤다고 쉬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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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은 좀 어려보이는 아이에게 담배를 팔았단다. 주민등록증을 가져왔었고 느낌이 좀 이상하긴 했는데 팔았다고. 그 다음에 다시 왔는데 그냥 팔았다고. 며칠 뒤 그 아이가 경찰과 왔단다. 미성년자에게 담배를 팔아서 벌금에 한 달쯤 영업정지를 먹을 것 같단다. 마침 잘 됐다고 한 달 정도 쉬고 싶단다. 40년 넘게 일만 한 아저씨가 휴가를 앞두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과자장수 앞에서 울먹인다. 자기 한 달 정도 쉬어도 되지 않냐고 물어온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동안 뭐가 그렇게 미웠는지 내 마음에 있는 미움을 지우느라 아무 말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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