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9 이후>부정을 이기는 고발 (2) 노회찬 의원 인터뷰

온 국민을 분노에 떨게 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그 중심에는 삼성이 있다.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후계자 지위를 공고히 하려고 최순실 딸 정유라 지원 대가로 박근혜 정부로 하여금 국민연금공단을 움직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삼성은 지난 2005년에도 정·경·관·언 유착의 중심에 섰었다.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이다.

이때 삼성의 행정부와 사법부를 향한 전방위적 로비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럼에도 정작 삼성 쪽 인사는 누구 하나 처벌받지 않았다. 반면 이 사실을 알리고,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검사 명단을 폭로한 일부 언론과 노회찬 의원만 명예훼손과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돼 형을 받았다. 삼성 X파일 사건 11년이 지난 지금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에 연루된 삼성을 보는 노회찬(정의당·창원 성산) 의원의 생각이 궁금했다.

- 삼성 X파일 사건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경유착' 측면에서 많이 닮았다.

"이들 두 사건이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이번에는 현직 대통령이 연루됐다는 점, 또 대통령 측근으로서 다수 민간인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도 형식적 차이는 있지만 '정경유착'이라는 본질은 같다."

노회찬 국회의원이 창원 코아상가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11년 전 국회에서 삼성 X파일을 공론화했을 때 심정은 어땠나.

"사실 (떡값 검사) 명단 발표 이후를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당시 법사위원이었고 국회에 출석한 당시 법무차관이 내가 확보한 파일 속 떡값 검사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법사위 회의에서 이를 안 물어볼 수가 없었다. 차관 본인은 안 받았다고 대답했지만 몇 시간 후 스스로 사표를 냈다. 이 정도면 검찰이 사건을 수사해야 하는데 자기 식구가 관련돼 있으니 끝내 불러서 조사하지 않았다. 왜 사표 냈는지 진짜 받았는지 말았는지를 밝혀야 함에도 말이다."

- 삼성이 연루된 비슷한 사건이 10년이 지난 지금 왜 또 터졌다고 생각하나.

"삼성 X파일 사건 당시 청산과 규명을 다 하지 못해 또 다른 방식의 변종이 더 큰 암덩어리가 돼 권력형 비리로 터져 나온 것이라고 본다. 실제 당시 재벌과 검찰 내 비리관련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이건희 회장 등 돈을 준 사람, 돈을 받은 검사 등 고위공직자 다 처벌받지 않았다. 되레 나처럼 이것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 일부 보도한 언론만 처벌받았다. 당시 국회의원 280명 찬성으로 X파일 공개 법안이 발의됐으나 17대 국회 끝날 때까지 처리가 안 됐다. 이렇듯 처벌도 진실 규명도 안 되다 보니 이런 일을 막을 예방적 제도도 만들지 않았기에 이 비슷한 사건이 또 터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10년 전 지금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사전에 방지할 기회를 맞았는지 모른다. 이때 검찰을 검찰답게 만드는 정치·사회적 노력을 기울였다면 지금 온 국민이 추위 속에 대통령 즉각 퇴진과 민주주의 회복을 부르짖지 않아도 됐을 일이다. 한데 아이러니는 당시 진보 개혁 성향인 참여정부가 이 문제에 단호히 대처하지 못한 점이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1209 이후'를 가늠할 척도가 될 수도 있다.

- 참여정부가 적극적이지 않은 이유가 있었나.

"문제의식 부족과 한계가 있었다고 본다. 당시 천정배 법무장관은 부임하자마자 이 사건과 맞닥뜨렸다. 그도 이 사건을 '단군 이래 최대 정·경·관·언 유착 비리 사건'으로 정의하고 국가 기강 확립 차원에서 발본색원한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사안을 너무 정치적으로 봤다. 제대로 수사하면 당시 정권 반대편에 있는 정치 세력을 핍박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부정부패를 일소하는 문제를 정치 보복으로 판단해 적폐 해소에 실패했다는 게 내 생각이다."

- 이도 어찌 보면 정치권력과 사법권력의 유착 아닌가.

"유착보다 검찰이 그 권력을 남용해가면서 방어한 것으로 이해하는 게 현명하다. 이를 정치권력이 제어했어야 했는데…. 결국 유야무야됐다."

참여정부 과오를 논할 때 많은 사람이 '검찰개혁 실패'를 거론한다. 사법권력을 향한 행정부의 정치 탄압으로 비칠 수 있다는 생각이 너무 강한 나머지 개혁 호기를 놓쳤다는 점에서다. 덕분에 참여정부 시기 사법권력 독립성은 어느 정도 보장됐으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모든 행정부가 참여정부와 같지 않았다. 검찰 인사권을 행정부가 쥐고 있는 한 '정치 검찰'은 막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결국 권한은 막강한데 충분한 견제를 받지 않는 무소불위 사법권력을 유지시키는 데 한몫한다. 당장 정윤회 비선 실세 의혹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 삼성 X파일과 지금 사태는 행정부 비호를 받은 막강한 사법권력이 문제 아닌가.

"맞다. 앞서 2014년 정윤회 비선 실세 의혹 사건 때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했으면 최순실도 다 드러났을 거고 국정농단도 그 당시 중단됐을 것이다. 미르재단이니 K스포츠재단이니 다 2015년 만들어진 걸 고려하면 2014년 검찰 과오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번 사태가 터졌다고 본다. 이것이 결국 촛불 이후 '검찰개혁'이 가장 큰 국민적 관심사이자 국가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는 길을 열었다고 본다."

- 검찰 개혁은 어떻게 이뤄져야 한다고 보나.

"우리나라 검찰 권력 문제는 한편으로는 정치권과 유착이고 또 한편으로는 검찰권 행사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주목할 점은 검찰이 인사권을 지닌 고위공직자 수사를 공정하게 못 한다는 데 있다. 이 때문에 나는 고위권력층 수사를 독립적으로 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만들자 주장하고 있다. 이 공수처는 대통령과도 거리를 두게 하자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검찰 인사는 민정수석을 통해 대통령이 다 한다. 헌법재판관, 대법관도 그렇다. 이런 사법부 인사권을 대통령에게서 독립시키는 작업도 필요하다. 인사권의 3분의 2는 국회에 주면 어느 한 정파의 뜻대로만 되지 않을 것이다. 아울러 검경 수사권 조정을 근본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 모두를 조화롭게 풀어내야 한다. 이는 민주주의 근간인 '삼권분립 체계'를 확고히 하는 일로 귀결된다."

현재 대한민국은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민주제를 추동하고 있다. 이 정국은 헌재가 박 대통령 탄핵 심판 결정을 내릴 때까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국회가 국민 열망을 얼마나 잘 받아 안느냐가 상반기 정국 방향을 정할 전망이다. 이 작업은 비단 사법제도뿐만 아닌 대한민국 전체를 개혁하는 작업의 시금석이라 할 수 있다.

- 국회 역할이 중요한 때인 거 같다.

"국민이 혼연일체가 됐다. 국민 여론이 90% 넘게 박 대통령 퇴진을 원했기에 국회의원 78%, 새누리당 절반이 탄핵안에 찬성했다. 현 국회는 이 점에서 '제헌의회'나 다름없다. '이게 나라냐'는 국민의 외침은 박 대통령만 탄핵시킨 게 아니다. 검찰과 재벌도 탄핵했다. 국민은 이 나라를 정상으로 되돌리라는 명령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는 정경유착 근절, 검찰개혁, 언론개혁 등이 다 담겨 있다. 지금이 바로 '골든타임'이다. 국회는 당리당략을 다툴 게 아니라 광장의 촛불 민심을 어떻게 법과 제도, 정책에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다. 90% 국민만 바라보면 통과되지 않을 게 없다. 이게 2017년 국회가 해야 할 일이다."

-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하자면.

"나는 세 가지 분류를 해야 한다고 본다. 정책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 입법활동으로 바꿀 수 있는 것, 개헌으로 바꿀 수 있는 것 말이다. 이를 구분해 '개혁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이미 박근혜 정부가 시행한 각종 정책, 예컨대 국정 역사교과서, 사드, 일본군 위안부 협상 등 사실상 박 대통령과 함께 탄핵당한 결정 사항이 더는 시행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입안한 각종 법안도 마찬가지다. 이에 황교안 직무대행이 과거 정권의 노선을 현상유지식으로 밀어붙이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회는 이를 막고 국민 열망을 담아 우리 사회 여러 나쁜 관행을 고치는 입법 활동을 해야 한다. 다음이 개헌이다. 승자독식의 낡은 선거제도를 혁파하고 국민 목소리를 적절히 담아낼 그릇을 만들어야 한다. 개헌은 이 점에서 기본권 신장, 직접민주주의 확대를 목표로 해야 한다. 이는 곧 제왕적 대통령제 권한을 제한하고 그 일부를 국회에 넘기는 방향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의 국회 구성 방식에 권한만 늘리면 더 나쁜 괴물이 될 수도 있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도입 등 제대로 된 국회를 만들려는 선거제도 개편은 2017년을 맞는 국회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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