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도착, 해냈다는 생각에 눈물이…"

아르수아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40㎞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일어나 평소와 다름없이 준비를 합니다. 긴 길을 걷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아요. 그동안 눈뜨면 습관처럼 했던 행동들이 오늘은 의식을 치르는 것 같습니다. 바셀린을, 선크림을 더욱 꼼꼼히 발라봅니다. 드디어 친구들도 준비가 끝났고 우리는 어두운 거리로 출발을 합니다. 날이 밝아지고 오늘이 거의 마지막인데 저는 앞만 보며 빨리 걷는 게 싫었어요. 일행은 먼저 가라고 하고 조금 천천히 걸어가는데 갈림길이 나오더라고요.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는 곳을 선택해서 왼쪽으로 갔는데 헐~! 제가 낚였어요. 웬 바르(Bar)에서 자기 집을 들러가게 하려고 이정표를 세워 놨던 거죠. 칫~! 그 바르를 지나자 이정표도 없고 지나는 사람도 없고 차만 쌩쌩~! 되돌아갈까 하다 분명히 길이 있지 싶어 스마트폰 지도에 산티아고를 치니 방향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길을 따라 얼마를 가니 순례자들이 보이기 시작하네요.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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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테 도 고소를 지나자마자 나오는 산티아고 데콤포스텔라 표지판. / 박미희

친구들은 저만치 가 있을 테지만 산티아고에 있는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걱정은 없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음악도 듣고 막바지 카미노를 충실히 느끼며 걷습니다. 숲길을 지나고 산길도 지나는데 혼자서 거꾸로 걷는 사람이 있네요. 오늘이나 어제쯤 산티아고에서 출발했을 터. 대부분 산티아고를 목표로 그곳을 바라보며 걷는데 그곳에서 출발하는 사람은 어떤 목표로 걷는 것일까요? 거꾸로 걷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더욱 외로울 거고 거기다 해를 마주 보며 걷는 것이 고역일 텐데요. 이런 어려움을 통해 뭔가를 깨달으려 하는 걸까요? 아무튼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저도 스틱에 힘을 줍니다.

중간에 바르에서 아는 쿠바 사람을 만났어요. 그를 보는 게 마지막일 것 같아서 태극 배지를 나누어 주었지요. 그도 그런 느낌이었는지 서로 깊게 포옹을 했습니다. 서로 행운을 빌며 손을 흔들며 헤어졌습니다. 익숙한 얼굴들과 이제 곧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점점 심란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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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테 도 고소로 가는 길에 있는 유명한 십자가 철조망. 순례자들이 만든 것이다. / 박미희

몬테 도 고소(Monte do Gozo)에 도착을 했어요. 언덕에 있는 간이 바르에서 일단 쉬며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 보니 이곳 공립 알베르게가 너무 맘에 안 든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이곳은 순례길 최대 규모고, 병영 같은 느낌인 데다 길에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고요. 사설 알베르게로 간 친구가 자기가 묵는 곳으로 오라고 문자를 보냈더군요. 간이 바르에 앉아 있는데 많은 사람이 그곳을 지나쳐 산티아고를 향해 가고 있더라고요. 아직 시간도 이르고 바로 코앞에 산티아고가 있는데 나도 그냥 산티아고에 갈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 왠지 오늘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막 들대요. 빨리 도착하는 것이 아쉬워 천천히 음미하면서 왔는데, 이제 얼마 남겨놓지 않았는데,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친구들에게 산티아고에서 기다리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언덕을 걸어 내려갔습니다.

언덕을 내려가자 얼마 안 있어 빨간색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란 표지판이 서 있었어요. 너무 빨리 나타난 표지판에 적이 당황도 했지만 내가 해냈구나 하는 마음이 들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누군가 곁에 있었으면 서로 얼싸안고 울음을 터트렸을 텐데 혼자서 이 감동을 느끼기에 너무 안타까웠어요. 후회도 되기 시작했어요. 친구들이랑 함께 올걸! 친구들이랑 함께 이 감격을 느꼈어야 하는데 너무 아쉽더라고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너 참 잘했어 정말 대단해, 저 자신에게 칭찬을 해 주었지요. 10kg 정도의 배낭을 메고 800㎞를 걸어왔는데 왜 대단하지 않겠어요.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여행경험도 별로 없는 내가 그 많은 사람과 어울려 이 길을 걸었는데 왜 대단하지 않겠어요. '나 해냈다' 하며 소리라도 치고 싶은 걸 꾹꾹 참고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사진만 찍고 시내로 들어섰습니다.

산티아고 표지판이 눈에 보인다고 해서 그곳에 도착한 것이 아니었어요.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한없이 시내가 이어져 있었어요. 갑자기 도착했기 때문에 어느 알베르게에 묵어야 하는지 도통 알 수도 없었고 일단 성당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조개 모양 안내표시를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해서 걷습니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산티아고 대 성당에 다 와 가나 봅니다. 북쪽 길이나 은의 길 같은 다른 루트로 온 순례자들과 관광객들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듯 보이는 단체 관광객 한 무리도 지나갑니다. 가서 '저는 800㎞ 걸어 이곳에 왔다'고 자랑질을 하고 싶더라구요~. 인파를 거슬러, 또 휩쓸려 걷다 보니 오브라도이 광장에 들어섰습니다. 광장에서 바라본 산티아고 대성당은 실망~! 하필 공사 중이라서 본래의 위엄은 다 볼 수 없었어요. 아쉽긴 하지만 이곳을 향해 그렇게 먼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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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테 도 고소로 향하는 숲길. / 박미희

저처럼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해 걷는 사람도 많지만 중간에 있는 대도시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 같은 곳에서 출발하는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처음부터 걸어온 사람이랑은 급이 다르지요! 흠흠~!! 끝까지 배낭을 메고 걸어서 완주 한 사람, 배낭을 부쳤던 사람, 버스 타고 건너뛴 사람, 중간에 출발 한 사람 등, 각자 느끼는 성취감도 다르겠지요? 저는 비록 서너 번 배낭을 부치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뿌듯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예전 중세의 순례자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이곳까지 걸어왔던 순례자들은 그 감동 또한 지금의 몇 배가 되지 않았을까요.

사람들을 해치고 알베르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시내가 너무 넓고 가게도 많고 사람도 많아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르겠대요. 어느 가게에 들어가 알베르게를 찾는다고 하니 한쪽을 가리키며 가 보라고 하더군요. 그쪽으로 가니 알베르게가 보여요. 물론 사립이죠. 다리도 아프고 너무 지쳐서 다른 곳을 찾을 엄두도 나지 않았어요. 일단 들어가니 깨끗하고 자그마한 알베르게였어요. 여태 7~8유로의 숙소에서 묵었는데, 여긴 무려 16유로, 거기다 2층 침대에 위층을 배정받았지 뭐예요. 하는 수 없지요. 그래도 시트도 깨끗하고 예전의 알베르게랑은 좀 다르긴 해요. 짐을 풀고 씻고 나니 살 것 같네요. 초반에 함께 출발했던 미국 교포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더 오래 걷는 계획이었는데 컨디션이 좋아 모레쯤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대요. 꼭 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저도 아주 반가웠지요. 못 만나고 갈 거로 생각했는데 다시 볼 수 있다니요. 저도 기다리겠다고 답장을 했어요.

몸은 피곤하지만 누워 있기는 싫었어요. 나갔죠. 내일 친구들이 오면 순례자증 받으러 가려고 어디에 사무실이 있는지 알아보고 성당 주변도 살펴보고 시내를 거니는데 그동안 길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만나자마자 서로 끌어안고 감동을 나눕니다. 그동안의 노고를 서로 알기 때문이죠. 이 감동을 서로 알기 때문이죠~! 스페인의 마리아는 여자인데도 나를 안고 뱅뱅 돌고 또 만나는 사람마다 돌려주는 바람에 오늘 여러 번 돌았지 뭐예요. 동양에서 온 조그만 여자가 대단해 보였나 봐요. 이탈리아 삼인방, 폴란드 모자, 러시아 부자, 독일인 부부 등 정말 기쁘게 반겨주는데 그 감동 또한 정말 크더라고요. 내가 뭐라고 저렇게들 격하게 표현을 해 주는지 정말 감사할 뿐이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선물이라며 태극 배지를 나눠주었어요. 그 조그마한 것을 받고도 얼마나 감동하는지 오히려 제가 미안할 정도였어요. 혼자이긴 해도 외롭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함께했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먼저 오기를 잘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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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자들의 목적지 산티아고 대성당. / 박미희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공연도 보고 이것저것 먹어도 보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잠이 오지를 않아요. 밖에서 요란하게 음악 소리가 들리는데 잠이 올 리가 없죠. 원래도 순례자들을 위해 퍼포먼스가 많다는데 알고 보니 며칠 후에 축제가 시작되기 때문에 더욱 소란스럽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알베르게이다 보니 문 닫는 시간이 10시예요. 하는 수 없이 들어오긴 왔는데 순례를 끝낸 사람들에게 통행금지 10시는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요? 그냥 잘까 하다 관리인에게 나갔다 오면 안 되는지 물으니 키를 주며 갔다 오랍니다. 오예~! 역시 용기를 내면 된다니까~ 용기를 내니 이곳 산티아고까지도 왔잖아! 뭐든 부딪혀 보는 거야! 아니면 말고 잖아! 이곳저곳에서 재즈, 개그, 락공연이 펼쳐지고 나도 그들과 동화되어 함께 즐기다가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관리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잠을 청해 봅니다. 내일 아침에 함께 다니던 친구들이 산티아고에 도착한다고 하니 마중 나가려고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둘째 날

엊저녁엔 제법 푹 잠을 잤어요. 어제 많이 걸은 데다가 전의 알베르게보다 잠자리가 편했나 봐요. 친구들 마중하러 오브라도이 광장으로 갔더니 벌써 모두 도착해 있어요. 모두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사진을 찍고 순례증을 받으러 순례자 사무실로 갔어요. 일찍 이라서 다행히 줄이 길지는 않네요. 여기는 언제나 순례자가 많아 늘 줄을 서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에 찍힌 도장을 보고 순례증을 발급해 줍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었다는 증명서예요.

순례증을 받고 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하지만, 시끌벅적 다시 친구들과 어울려 내가 묵는 알베르게로 갔어요. 모두 다 오늘은 내가 묵는 곳에서 묵는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다른 곳으로 가면 따라가려고 했는데 잘 되었어요. 어제 묵었던 사람들이 빠져나간 자리에 우리 친구들이 자리를 잡았네요. 부엌에서 간단히 함께 아침을 먹고 다시 광장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성당으로 갔어요. 매일 정오에 순례자들을 위한 특별미사가 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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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중심가, 뒤편으로 산티아고 대성당이 보인다. / 박미희

성당에 갔는데 이게 누구예요? 미국인 프랭크가 앉아서 엽서를 쓰고 있더라고요. 얼마나 반갑던지요. 얼마 전부터 못 만나기 시작해서 다신 못 만날 줄 알았는데 글쎄 이곳에서 다시 만나다니요. 프랭크도 아주 반가워합니다. 암에 걸린 친구에게 엽서를 쓰고 있었다고 하네요. 다행히 한국 학생 지원이가 옆에 있어서 할 말은 조금 할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사진을 함께 찍기는 했는데 사람이 많아 다시 얼떨결에 헤어졌고 나중에 피터(프랭크의 아들)와 함께 다시 만날 줄 알았는데 그 길로 만나지 못해 너무 아쉬웠어요.

수많은 순례자가 성당을 가득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제대 뒤쪽에는 성야고보(산티아고) 상이 있었는데 지난 1000년간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왔고 성 야고보 상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답니다. 나도 손을 얹고 기도를 했습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감사하다고요.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오래 기도할 수 없어서 아쉬웠어요. 야고보 성인의 무덤도 둘러보고 미사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감사의 눈물이 저절로 흘렀습니다. 마음도 벅차오릅니다. 이 대단한 일을 한 제가 너무 대견합니다. 꼭 야고보 성인의 무덤을 보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어요. 또 어떤 대단한 깨달음을 얻으려고 온 것도 아니었고요. 그 신문 화보 속의 산티아고는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겼고 난 이곳이 오고 싶어 열병을 앓았었지요. 이곳만큼은 꼭 나 혼자 오고 싶었고 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전 결국 해 내었습니다.

비록 언어는 잘 통하지 않지만 이 먼 타국에서 수많은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고 스페인을 구석구석 거닐며 아름다운 광경을 수없이 보았고 세계의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지요. 긴 시간 동안 오로지 저 자신과 마주하며 저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그것 하나만으로도 큰 수확인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수많은 순례자가 바닥에도 앉아있고 벽에도 기대어 서서 미사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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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중심가에는 자주 공연이 펼쳐진다. / 박미희

미사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거대한 향로가 그네 타듯 춤을 추는 광경이었어요. 예전에는 순례자들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에 향을 피웠다고 하는데 지금은 미사의 순서로 자리 잡았다고 하네요. 정말 장관입니다. 향로가 움직일 때마다 모두 와~! 와~! 환성을 지릅니다. 그리고 미사 때 예전에는 순례자들의 이름을 한명 한명 불러 주며 축복해 주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출발도시와 국적, 몇 명인지만 불러 주며 축복을 해 줍니다. 예를 들면 '생장에서 출발한 한국인 몇 명' 하는 식으로 말이죠. 너무 소란스러워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지만 감동은 가라앉지 않습니다. 미사 후 거리에서 정들었던 얼굴들과 마주칠 때마다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온 마음을 다해 서로 안아주고 축복하는 거지요. 다들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광장에서 흥겨운 음악과 함께 축하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빠질 수 없죠. 어깨동무도 하고 함께 엉켜 춤추며 흥겨움을 나눕니다. 스페인 사람 하우메가 스페인 전통춤을 추길래 따라 해 보았는데 잘 되지를 않아요. 안 되는 춤이긴 하지만 열심히 하면 그만이죠 뭐~! 신나면 그만이죠 뭐~!

한바탕 어울림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저 혼자서는 찾지도 못할 곳으로 갔습니다. 현지인들이 찾는 곳이라나 봐요. 역시 스페인 친구들이 있어 좋네요. 우리가 파파라고 불렀던 비센테가 돌아가며 소감을 말하라고 합니다. 모두 한마디씩 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말이 통했더라면 더 감동적이었을 텐데 이럴 때 말이 안 되는 게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합니다. 그래도 마음은 통하는 법,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요. 식사 후 우린 함께 쇼핑을 하고 살 옷 입는 것도 봐주고 거리를 쏘다녔습니다.

친구들은 알베르게로 돌아가고 저는 니나를 바래다주러 갔습니다. 니나는 몬테 도 고소의 폴란드인 알베르게에 며칠 묵기로 해서 그곳까지 다시 걸어간답니다. 그곳에서 며칠 묵으며 산티아고에 매일 올 거고 축제도 보고 갈 거라네요. 같은 나라 사람이 하는 알베르게라고 그 먼 거리를 마다치 않고 의리를 지키는 니나가 대단해 보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포옹을 했습니다. 이제 만나지 못할 거거든요. 물론 서로 초대는 했지만 언제 만날 수 있을는지요. 함께 하며 많이 의지했었는데 엊저녁이라도 함께 할 걸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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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티아고 중심가에서 펼쳐지는 밤 공연. / 박미희

알베르게로 오니 친구들은 이야기를 나누며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함께 슈퍼에 갔어요. 함께 카미노를 걸으며 한국식으로 밥을 한번 해 주고 싶었는데 알베르게에 취사가 안 돼서 못 해주었어요. 그래서 아쉬움에 함께 먹을 맥주도 사고 낼 아침을 위해 달걀도 사고 바나나도 좀 사서 숙소로 왔어요.

친구들은 콘서트를 본다고 먼저 나가고 저는 달걀을 삶아 놓고 나가서 합류했죠. 늦을지 모르니까 관리인에게 열쇠도 받아 가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광장에 나가 콘서트도 보고 즐기다가 알베르게로 돌아와 맥주도 마시고 사진도 함께 찍으며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 고마운 인연들, 순례자 생활을 풍성하게 해 주었던 친구들, 헤어지면 언제 만나게 될까요. 서로 기회가 되면 스페인에서, 한국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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