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서면 서상마을에서 노구마을까지 10.4㎞ 3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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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서면에 우뚝 선 망운산(786m)은 남해섬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금산의 유명세에 가려져 있지만 옛 기록에는 망운산이 남해의 진산으로 돼 있다. 남해를 대표하는 산이란 뜻이다. 남해바래길 14코스는 이 망운산 자락을 따라 서면 바닷가를 걷는 길이다. 서쪽 바다로 열린 땅이니 노을이 유독 아름답다. 하지만, 노을이 지는 시간에 이 코스를 걷지 않는 게 좋다. 여러 번 외진 바닷가와 등성이를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애초 남해군 서면사무소가 있는 서상마을에서 갈화마을까지 19.2㎞로 계획이 되어 있는데, 2016년 11월 현재는 노구마을까지만 길이 연결돼 있다.

이 길이 남해바래길 마지막 코스다. 안내도는 서상마을에서 출발해 유포마을에 이르게 돼 있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걸어보기로 했다. 마지막 코스를 걸어 1코스 다랭이지겟길과 연결해 보자는 생각도 있고, 왠지 이편이 더욱 운치가 있을 것 같아서다. 이 코스에서 큰 도로를 만나는 일은 없다. 길은 그대로 몽돌해변을 지나고, 어촌마을 작은 어항을 지나고 다시 등성이를 지난다. 바닷가 등성이마다 가지런한 마늘밭과 시금치밭, 그 너머로 펼쳐진 푸른 바다는 처음 바래길을 걸었을 때의 느낌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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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망운산 중턱에서 본 노을. / 이서후 기자

◇한겨울에도 푸름 가득한 들판

남해군 서면 노구마을의 이름은 갈대 노(蘆), 아홉 구(九)자를 쓴다. 9월에 마을 갈대들이 풍성하게 살이 찐다는 뜻이다. 우리말로는 '갈금'으로 불린다. 77번 국도변 노구마을 버스정류장에서 길을 시작한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바래길 표지판이 있다. 마을 길로 들어서면 바로 내리막이다. 건너편 등성이를 따라 계단식으로 들어앉은 집들과 밭들이 가지런하다. 내리막이 끝나면 정면으로 등성이를 에도는 길이 보인다. 구불구불한 모양새가 정겹다. 그 길을 따라간다. 고갯길에서 뒤를 돌아보니 들판 풍경이 훤하다. 늦가을 밭에는 시금치가 싹을 틔우고 마늘 줄기가 크고 있다. 들이 온통 파릇하니 지금이 봄인지 늦가을인지 헷갈린다. 시금치와 마늘은 겨울 동안 튼실하게 자랄 것이다. 하여 남해는 겨울에도 푸르다. 이 푸름이 남해의 매력이다.

등성이 길 오르막 끝 외로운 소나무 한 그루를 지나면 곧 바래길 표지판이 나온다. 유포마을까지 0.8㎞가 남았다. 등성이를 넘자 바다 건너로 광양제철소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면에 보이는 섬은 광양만의 한가운데 떠 있는 여수 묘도다. 묘도에서 오른쪽 광양 쪽으로 이어진 다리가 이순신대교, 왼쪽 여수로 이어진 다리가 묘도대교다. 묘도 앞으로 커다란 배들이 느릿느릿 여수항 방향으로 움직인다. 그 풍경을 보며 건들건들 내리막을 걷는다. 곧 바닷가에 닿는다. 이제부터는 제방을 따라간다. 100m 남짓 걷고 나니 만조로 길이 사라졌다. 잠시 헤매다가 바닷가 조그만 등성이 거친 오르막을 발견한다. 곧 다시 바닷가로 빠져나오면 유포마을 들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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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들판에 시금치와 마늘이 자라고 있다. 이 푸름이 남해의 매력이다. / 이서후 기자

노구마을 경사진 농지와 달리 유포 마을은 바닷가 비교적 평평한 땅에서 시금치며 마늘이 자라고 있다. 마을 초입 단정한 정자 두 채가 맞이한다. 정자 뒤로 수영장을 거느린 건물이 유포어촌체험마을안내소 건물이다. 이곳에서 갯벌체험, 통발체험 같은 것을 할 수 있다. 유포마을은 지금부터 거의 900년 전 망운산 자락에서 광물 채취하던 사람들이 바닷가로 옮겨와 살면서 생겼다고 한다. 지금은 청소를 아주 열심히 하는 마을이라고 남해군은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안내소 주차장이 꽤 넓은데도 아주 말끔하다. 주차장 한편에 깨끗한 화장실도 있다.

이 주차장 끝에서 바다를 등지고 왼편으로 들어선다. 이제 길은 마을을 지나는 아스팔트 도로다. 천천히 5분 정도 걸으면 마을 등성이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바닥 화살표를 잘 살피자. 반대로 왔으니 녹색 화살표를 따라 걸어야 한다. 서상마을에서 출발해 왔다면 이 지점에서 노란색 화살표를 보고 바닷가로 향하면 된다. 오르막 중간에서 뒤돌아보니 유포마을 집들과 농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래길 표지판이 있는 등성이 정상은 그야말로 기가 막힌 전망대다. 코앞으로 염해마을 전경이 눈에 들어오고 바다 건너 여수 산단이 한결 가까워졌다. 내리막이다 싶더니 길은 다시 다른 등성이로 이어진다. 그것마저 넘어서니 배들이 가지런히 정박한 염해마을 방파제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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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면 노구마을 입구에 있는 바래길 표지판. / 이서후 기자

◇긴 갯바위 해변을 따라서

염해마을은 옛날 사람들이 소금을 만들던 곳이다. 그래서 염전포(鹽田浦)라고 했다. 그러다 주변 세 마을이 통합되었는데, 다시 분리가 되면서 염해(鹽海)라는 이름을 얻었다. 소금을 만들던 곳이란 뜻이다. 여유가 있으면 마을 어항을 지나 갯바위가 있는 곳으로 넘어가 보자. 그곳에 하얀 등대가 있다. 제법 운치가 있어선지 몇몇 드라마가 이곳을 배경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마을 어항을 지나 널찍한 해안도로를 따라간다. 모래사장이며 갯벌이 적당하고 보기 좋은 해변이다. 벤치에서 쉬며 잠시 파도 소리를 듣는다. 해안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조그만 다리를 건넌다. 그리고 바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자 또 등성이를 오르는 길이다. 그 너머는 여지없이 마늘밭과 시금치밭이다. 제법 자란 마늘 줄기가 바닷바람에 흔들린다. 바다가 눈부시게 반짝인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 해가 가장 높을 시간이다.

곧 몽돌해변이 나온다. 남상마을이다. 가까운 바다에 고깃배가 몇 척 떠 있다. 남상마을 앞바다는 원래 1급 청정해역이었다. 하지만, 80년대 들어 바다 건너로 호남정유, 율촌공단, 여천공단, 광양제철, 하동화력이 들어서면서 수질이 나빠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도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서 나는 해산물이 최고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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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포어촌체험마을 안내소 옆 깔끔한 주차장에서 본 바다. / 이서후 기자

마을 긴 해변을 따라가다 보면 축사가 나오고 바래길 표지판이 보인다. 길은 계속해 바닷가 농지를 지나 이내 커다란 몽돌 바위 해변으로 이어진다. 걷는 길이 만들어져 있지만 사람들이 거의 다니지 않아 풀이 우거져버렸다. 길이 조금 험하다. 그러다 시멘트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가다 보면 하천이 하나 바다로 스며드는데 망운산 자락에 있는 직장 저수지에서 흘러나와 작장마을을 지나온 물이다. 작장마을은 예로부터 물이 풍부했다. 신라시대 목마른 용이 물을 마시고 승천했다는 전설로 '갈용(渴龍)고지'라고 불렸다고 한다. 뒤새미, 말새미, 참새미 등 샘이 많은 고장이다. 마을은 예로부터 양반고을로 알려졌다. 작장(勺長)이란 이름도 서로 다독이며 한 가족처럼 지낸다는 뜻이라고 한다.

하천을 지나면 곧 작장마을 어항이다. 이곳에서 길은 다시 바닷가 등성이를 오르게 된다. 이번에는 산길이다. 군대 초소가 곳곳에 있는데, 몽돌을 쌓아 만든 참호가 인상적이다. 곧 갯바위 해안으로 빠져나온다. 바위에는 예전에 간첩 침투에 대비해 유리 조각을 박아놓은 흔적이 남아있다. 바닷가의 너럭바위를 지난다. 꽤 넓다. 오랜 세월 물이 흐르면서 바위에 물길이 생겼다. 실감할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다. 그걸 보고 있자니 꼭 외계 행성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바위를 지나면 상남마을 어항이다. 어항을 지나면 계속해 갯바위 해변이 이어진다. 이곳 바위에는 톳이며 미역 같은 해조류가 많다. 곳곳에 망태기를 들고나온 주민들이 바위에 쭈그리고 앉아 이것들을 따고 있다. 갯바위 해변이 제법 길다. 파도에 닳아 독특한 모양을 한 바위들도 많다. 14코스 절반 정도가 이런 해변을 지나니 이름을 갯바위길이라고 해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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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해마을 해안도로변 돌담. / 이서후 기자

길을 잘 살펴 펜션이 있는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 풀이 많이 자라 길을 놓치기 쉽다. 펜션 지역을 지나면 다시 바닷가로 향하는데 깔끔한 자갈 해변이다. 곧 예계마을에 닿는다. 마을 표지석에는 '여기방'이라고도 적어 놓았는데, 양지(陽地)바르고 따뜻하다는 뜻이란다. 예계마을을 통해 도로로 빠져나온다. 그대로 도로를 따라 걸으면 도착지인 서상여객선터미널에 닿는다.

바닷물이 황금색을 물들 즈음 남해섬 망운산에 오른다. 산봉우리에서 구름을 내려다본다고 해서 망운(望雲)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던가. 운해가 자주 낀다고 들었지만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다. 4, 5월이면 철쭉이 흐드러지게 핀다고도 들었다. 초겨울 산은 그저 억새들만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KBS 송신탑을 지나 감시초소까지 가니 비로소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남해에서 가장 우뚝한 산답게 망운산은 바다를 굽어보는 기상이 웅장하다. 남해섬 여러 봉우리는 물론, 바다 건너 전남 여수 땅 봉우리들도 이쪽을 향해 고개를 숙이는 듯하다. 해는 여수 쪽으로 넘어간다. 지평선 주변에 가로로 길고 붉은빛이 머물다 사라지니 해가 온데간데없다. 곧 바래길 주변 어촌 마을에 짙은 어둠이 깃든다. 반면 바다 건너 여수 산업단지와 광양제철에는 환하게 불이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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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모양의 바위가 많은 갯바위해변. / 이서후 기자

◇망운산과 화방사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산에서 내려간다. 세계 2차대전 때 망운산에 추락해 전사한 미 폭격기 승무원 11명을 기리는 전공비가 근처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둠이 급하게 밀려들기에 찾기를 포기하고 하산길을 재촉한다. 길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급하다. 망운산의 기운이 강해서 그런지 몸이 자꾸만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옛 시절 남해에 비가 오지 않으면 가장 먼저 망운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래도 비가 안 오면 상주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노구마을 방향으로 내려가 보면 망운사 가는 길이 나온다. 원래는 북쪽 자락에 있는 화방사의 부속 암자였다. 효봉, 경봉 같은 큰 선승들이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30여 년 전 선화를 잘 그리기로 유명한 성각스님이 이곳에 온 후 공을 들여 쌍계사 말사로 승격했다. 보통 망운산 산행은 화방사에서 시작한다. 정상까지는 2.97㎞, 약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617~686)가 금산에는 보광사를 망운산에는 연죽사를 세웠는데, 연죽사가 지금 화방사의 전신이다. 임진왜란 당시만 해도 호국 사찰로 이름이 높았다. 이순신 장군을 포함해 임진왜란 때 순국한 이들의 제사를 이곳에서 지냈었다고 한다.

화방사 일주문을 지나 산사로 들어가는 길은 오솔길처럼 정겹다. 일주문에 달린 '망운산 화방사' 현판에는 글씨를 쓴 이가 '여초거사'라고 돼 있다. 근현대 서예의 대가 여초 김응현(1927~2007) 선생을 말한다. 충청북도에서 경상북도 길목에 있는 영남제일문(경북 김천) 현판을 쓴 이다. 사찰로 들어서면서 먼저 만나는 건 채진루다.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알 수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채진루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대웅전이 있다. 아담하지만 단정하고 늠름한 모습이다. 작은 마당 한편에 범종과 법고가 보인다. 아니, 자세히 보니 목어와 운판도 있다. 이 조그만 절에 법전사물이 다 갖춰져 있다. 전체적으로 화방사는 소박한 느낌이 나는 사찰이다. 하지만, 산기슭 쪽으로 새로 지은 듯한 용왕단이 이 소박한 맛을 조금 떨어뜨린다. 용왕단에는 돌로 된 커다란 약사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망운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용왕단 뒤편으로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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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 망운산 정상에서 본 노을. / 이서후 기자

◇남해스포츠파크, 오래된 나무들

바래길 14코스가 시작되는 서상마을 주변은 서면사무소가 있는 면 소재지다. 이곳에 5개의 야구장, 4개의 축구장, 수영장, 테니스장이 있는 남해스포츠파크가 있다. 면적은 30만㎡로 지난 2000년에 공사를 시작해 2004년 완공했다. 바다 건너 광양제철소를 지으면서 나온 흙과 그 앞바다를 국제항로로 만들려고 바다에서 파낸 흙으로 메운 매립지 위에 조성한 시설들이다. 이곳에 사계절 푸른 잔디를 입혔는데,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 이렇게 잔디를 잘 키운 것만으로도 견학 대상이 된다고 한다. 메인 구장에는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덴마크 선수들이 이곳을 훈련장으로 썼다는 안내판이 지금도 붙어 있다. 월드컵을 전후해 국내 큰 축구대회도 열리고, 많은 팀이 전지 훈련장으로 이곳을 썼다. 뭔가 굉장하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실제는 꽤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관리가 깨끗하게 잘 되고 있어서 여전히 작은 대회들이 자주 열리고, 남해군민들에게도 훌륭한 공원 노릇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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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해스포츠파크 메인 구장. 따뜻한 남해 날씨에 사계절 내내 푸른 잔디를 키울 수 있다. / 이서후 기자

14코스에는 오래된 나무와 관련한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먼저 남상마을에서 태어난 스님 이야기가 있다. 조선 영조 때 운흥(남상마을 옛 이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비범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커서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이 스님이 가직대사다. 어느 날 가직대사가 전북 무주를 지나고 있을 때 마침 가뭄으로 고생하던 주민들이 지하수 맥을 좀 짚어 달라고 부탁했다. 스님은 소나무 하나를 가리키며 나무를 베고 그 밑을 파보라고 했다. 하지만, 땅을 파고 보니 커다란 돌이 있었다. 실망한 주민들이 항의하자, 스님이 들고 있던 쇠막대로 바위를 내리쳤는데 물이 솟구쳐 올랐다고 한다. 조금 황당하지만, 가직대사가 백성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기로 유명한 것으로 미루어 이와 관련해 만들어진 설화일 것이다.

이 가직대사가 남상마을과 중리마을, 노구마을에 소나무를 심었다. 물론 30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러면서 '이곳에 길이 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지금 이 소나무들은 모두 77번 국도변에 있다. 하여 사람들은 훗날 이 나무들을 '가직대사 삼송'이라고 부르며 잘 보호하고 있다. 특히 남상마을 소나무 곁에는 가직대사삼송기념비가 함께 있어 스님의 뜻을 기리고 있다.

지금은 노구마을까지만 바래길이 조성됐지만 애초 14코스 예정지인 고현면 갈화마을에도 유서 깊은 나무가 있다. 아니, 지금은 없다. 갈화마을 들판 한가운데 있는 갈화리 느티나무는 지난 1982년 천연기념물 제276호로 지정됐다. 높이 17.5m, 둘레가 9.3m. 500년 전에 이 마을 부농이 마을 들판을 지나는 냇가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동쪽 가지에서 서쪽 가지까지가 27m, 남쪽 가지에서 북쪽 가지까지는 25m로 여름이면 그늘이 아주 넓어 주민들이 와서 쉬기도 하고, 마을 회의를 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나무가 몇 해 전에 죽었다. 한동안 잎이 나지 않더니 결국 고사했다고 주민들은 전한다. 현재는 아예 베어지고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정자가 새로 생겼다. 또 하나, 주민들이 그 곁에 새로 느티나무 묘목을 심었다. 아직은 앙상하지만 앞으로 또 몇백 년이 지나면 다시 후손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바래길 주변 남해섬 사람들의 삶도 이런 식으로 이어져 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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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직대사 삼송 중 남상마을에 있는 소나무 곁에는 삼송을 심은 가직대사 기념비가 있다. / 이서후 기자

<바래길에서 만난 사람들>

◇남상마을 가는 길에 만난 어르신

남해바래길 14코스 망운산노을길은 남해섬 서쪽으로 전남 광양과 여수를 지척으로 바라보며 걷는 길입니다. 바다 건너에는 광양제철소, 여수산단 등 거대한 산업시설이 들어서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바닷물이 많이 오염되기도 한 모양입니다. 염해마을에서 남상마을로 가는 길, 바닷가 등성이가 아마도 여수 쪽으로 가장 가까운 곳이지 싶습니다. 등성이를 내려오면서 마침 지나는 어르신에게 여쭈었습니다.

- 저 공단들 생기믄서 물이 안 더러버 졌습니까?

"아이다, 괜찮다. 저저 화력 발전소 앞이나 물이 좀 나빠졌을까, 여는 괜찮아."

마침 바닷가에 고깃배가 몇 척 떠 있습니다. 그걸 보던 어르신이 생각이 난 듯 말을 잇습니다.

"메기, 문어, 여가 주산지야. 좀 있으면 메기 많이 난다. 문어도 많이 나고."

이 앞바다는 여수항과 광양만으로 향하는 대형 선박들이 많이 다니는 곳입니다. 해상 교통안전을 위해 특정해역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선들이 선박 항로 쪽으로는 가지 못합니다.

"하루에 400척이 안 다닌다 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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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7변 국도변에 있는 가직대사 삼송 중 중리마을에 있는 소나무. 가직대사가 300년 전에 나무를 심으며 이 앞으로 길이 날 것이라 예언했다. / 이서후 기자

- 400척이예?

"5년 전에는 280척이라 캤는데. 지금은 한 400척. 컨테이너선이 많이 다닌다. 그쪽으로 소형 선박들 다니면 참 위험타. 속력이 빠른께 파도가 이마이 높다. 지금 저저 배가 빨간 등대 손보고 있제. 저 등대가 제일 중요한 기다. 저 빨간 등대 보이제 들어가는 배는 저 등대 오른쪽, 나오는 배는 왼쪽으로 그래 안 다니나."

어르신이 다시 가던 길을 가나 싶더니 문득 상체를 돌려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에서 뭐 국회의원들이나 대통령이나 죽든지 살든지 우리는 마 촌에서 살기 좋다 아이가! 농사 지가 살믄 쌀이 없나 돈이 없나. 북에서 쳐 내려오면 불쌍한 우리 농민들이 먼저 죽긋나, 국회의원 그놈들이 먼저 죽긋지. 그렇제?

- 아, 예~. 하하하.

"가게!"

- 예, 말씀 고맙습니다!

◇작장마을 펜션 주인 아주머니

남해바래길 14코스 망운산노을길, 작장마을 몽돌바위 해변을 걷다 보니 지친다. 자갈길을 오래 걷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다 길이 갑자기 절벽 위로 향한다. 절벽 근처에 몇몇 펜션이 모여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어느 펜션에 놓은 일상적인 물건들이 보기 좋아 사진을 찍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가 의심스런 눈으로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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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장마을 펜션 주인 아주머니. / 이서후 기자

- 아, 예, 이것들 예뻐서 사진 찍어봅니더.

이 말에 그럼 그렇지 우리 펜션이 예쁘긴 하지, 하는 표정이더니, 들어와서 물 한잔하고 가란다. 황송해서 괜찮다고 했다.

"아참! 옛날에도 지나가는 나그네 물도 주고 했었잖아예."

- 하하, 예. 그라믄 믹스 커피 있습니꺼? 그거로 주이소.

커피를 한 잔 주고는 반찬을 만드시는지 채소를 숭숭 썰기 시작하신다.

"혹시 남해에 대해서 뭐 알고 싶다 그라믄 제가 상세히 알려줍니더."

- 예? 아, 남해가 고향이세요?

"제가 남해서 태어나서 남해서만 살아와 갖고예. 솔직히 도시에 가서 살고 싶어예. 이거 펜션하고 나서는 오데 가서 하루 자고 오는 것도 힘들고."

잠시 말이 없으시더니 문득 이렇게 물으신다.

"남해 좋지예?"

- 좋지요. 겨울에도 파릇파릇하고. 오다 보니 사람들이 톳 같은 거 뜯고 있던데요?

"서면 바다에만 톳이 나와요. 또 미역이 많고 고동도 많아요. 다른 데는 없습니더. 희한해요."

이어지는 이야기 끝에 지금은 사라진 여수행 배에 대해 물었다.

"옛날에 차 귀할 때는 여객선이 하루에 두세 번 있었거든요. 그 배를 타고 여수 가기 좋았는데…. 지금은 사람이 없으니 아예 안 갑니다. 없어졌어요. 배가."

말끝에 쓸쓸함이 묻어난다. 배가 없어진 것에 대한 것일까, 세상이 변해 버린 것에 대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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