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는 추운 겨울을/바람 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평생을 살아봐도 늘 한자리/넓은 세상 얘기도 바람께 듣고

꽃피던 봄여름 생각하면서/나무는 휘파람만 불고 있구나

- '겨울나무' -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나오는 '겨울나무'라는 동요. 겨울이 다가오면 크리스마스 캐럴과 함께 제법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정겨운 동요 가운데 하나다. 가을이 되면 거의 모든 나무들은 잎을 떨구고 겨울 채비에 들어가 겨울나무로 변신한다. 최대한 잎을 내려놓고 가지를 낮춤으로써 추운 겨울 온도와 매서운 바람을 이겨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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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의 팔손이나무.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그런데 동요 가사처럼 '눈 쌓인 응달에 외로이 선 나무' 말고 겨울에 꽃을 피우는 나무들이 있다. 눈꽃이 아니라 진짜 살아있는 꽃을 피운다. 가장 대표적인 나무는 동백나무다. 동백나무는 10월쯤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이듬해 4, 5월까지 핀다. 동백나무 종류로는 애기동백나무도 있고 그냥 동백나무도 있다. 요즘 도심 가로변에는 활짝 핀 애기동백꽃 무리를 꽤 많이 볼 수 있다. 원예 종으로 가꿔서 여기저기 심은 모양이다. 대체로 애기동백꽃은 10월부터 12월까지 피었다 지는 경우가 많고 토종 동백꽃은 11월쯤부터 이듬해 4, 5월까지 피었다 지기를 반복한다. 애기동백꽃은 개량을 많이 한 나머지 다양한 색깔의 꽃이 피어나는데 꽃잎이 한 장씩 떨어지는 특징이 있다. 반면에 토종 동백꽃은 원통형으로 핀 선홍빛 꽃잎이 한꺼번에 툭 떨어진다.

겨울에 꽃피는 나무는 동백나무 말고도 여러 가지가 있다. 구골나무는 서리 내릴 무렵 어김없이 피어난다. 구골나무 꽃은 조금 일찍 피면 11월부터 시작해 늦게는 다음 해 1월까지 하얀 꽃을 피운다. 도심 공원이나 학교 화단에서 종종 볼 수 있다. 한자로는 구골, 우리말로 풀면 개뼈다귀가 된다. 꽤 큰 구골나무 아래 쪼그리고 앉아 나뭇가지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왜 개뼈다귀나무라고 부르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생긴 모양과 색깔이 개뼈다귀를 닮아서 그렇게 이름이 붙은 것이다. 물론 개뼈다귀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릴 적에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은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 날 학교 화단을 거닐 다 문득 발견하게 된 나무였는데 향기도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어떤 나무 길래 이렇게 추운 겨울에 꽃을 피우는 걸까? 무척 궁금한 나머지 나무 도감과 자료를 뒤져 찾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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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골나무 꽃.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구골나무의 원산지는 일본, 대만, 중국이다. 1912년부터 1926년 사이에 우리나라로 들어왔는데 제주도와 남해안같이 겨울이 따뜻한 곳에 심었다. 남쪽 지방에서는 열매까지 맺는 경우가 있는데 새가 씨를 물고 가 싹을 틔운 야산에서도 간혹 볼 수 있다. 북쪽 지방에서는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구골나무 열매는 약간 단맛과 신맛이 나는데 구연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어 뼈 질환에 효과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구골나무와 닮은 나무들도 꽤 많은데 금목서, 은목서, 박달목서, 호랑가시나무 등이 있다. 키나 겉모양이 거의 비슷하게 보여서 구분하기가 쉽진 않다. 꽃 색깔이 짙은 노란색으로 황금빛 꽃이 피면 금목서, 하얀 은색 꽃이 피면 은목서, 11월지나 12월 무렵까지 꽃이 피는데 겨울에 흰색 꽃이 피면 구골나무라고 보면 된다. 호랑가시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으로 쓰이는 조경수인데 교회나 성당에 많이 심어져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어 성탄 트리 장식이나 성탄 축하 카드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가장자리가 가시처럼 뾰족한 잎에 둥글고 붉은 열매를 달고 있다. 예수의 가시면류관을 만들 때 쓰였다고도 한다. 호랑가시나무는 겨울 지나 봄에 꽃이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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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파나무와 꽃.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비파라는 악기를 닮은 잎과 열매가 특징인 비파나무도 10월부터 12월 사이에 꽃이 핀다.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안 지방에서 집 모퉁이나 정원에 흔하게 심어 키우는데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어렵다. 중국의 양쯔강 중상류지역이 원산지인 늘 푸른 나무라 따뜻한 남쪽에서만 자란다. 비파나무는 추위만 피하면 생명력이 아주 강하다. 씨앗을 따로 구하지 않아도 먹고 난 씨앗으로 충분히 싹을 틔워 키울 수 있다. 그래서 남해안 바닷가 주변 집에서는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꽃잎은 우윳빛으로 피어나는데 지름 1cm정도로 작고 화려하지도 않아 자세히 관찰해야 볼 수 있다. 가지 끝에 여러 꽃송이가 빽빽하게 모여 피어나기 때문에 그나마 눈길을 끌 수 있는 꽃이다. 암술과 수술을 같이 가지고 있어 자가 수정이 가능해 특별히 곤충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열매를 맺는다고 한다.

꽃이 귀한 겨울에 피어나고 은은한 향기까지 담고 있어 겨울 정원의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나무다. 꽃이 지고 나면 겨울 동안 열매를 맺기 시작해 다른 식물들이 화려하게 꽃을 피우는 봄에 익어 가다 한여름에 완전히 익는다.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노란 열매는 그냥 먹어도 좋고, 술에 담가 먹어도 좋다. 먹다 보면 과육에 비해 씨가 더 커서 아쉬움이 남는 과일이다. 오래전부터 약재로 요긴하게 쓰였다고 한다. 옛날부터 '비파나무를 키우는 집안에는 아픈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약효가 뛰어나다고 한다.

큰 잎사귀가 특징인 팔손이나무는 자생지가 통영시 한산면 비진도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 나무다. 주로 남해안 섬 지역이나 바닷가 골짜기에서 자란다. 원산지는 일본과 한국 남부 지역 일대다. 난대성 식물이라 남쪽 지방 정원이나 길가에서 꽤 흔하게 볼 수 있다. 집에서 키우면 공기를 정화시켜 준다고 한다. 필자는 15년 전쯤 아파트에서 살다 주택으로 이사를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정원에 심어져 있던 나무가 바로 팔손이나무와 금목서였다. 금목서는 가을이 되면 황금색 꽃을 피워 온 동네에 진한 향기를 잔뜩 퍼뜨릴 정도로 큰 나무였다. 팔손이나무도 꽤 컸었는데 겨울에 꽃을 피워서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겨울에 꽃을 피우니 벌과 나비는 날아오지 않고 꽃 전체에 등에와 파리만 들끓었다. 충매화의 하나라고 하는데 꽃은 향기가 아닌 약간 고약한 냄새를 풍긴다. 다행히 지독하지는 않았다. 아파트가 싫어 설레는 맘으로 이사 간 주택 정원에 있는 나무라 신기할 따름이었지만 파리만 들끓는 상황은 참기 어려웠다. 고심 끝에 나무를 베어버리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꽤 귀한 나무였는데 그땐 사람 기준으로만 나무를 바라봤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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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파나무와 꽃.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팔손이나무란 이름은 잎이 손바닥 모양으로 생겼고 여덟 갈래로 갈라진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진짜 여덟 갈래인지 한참을 세어 봤는데 일곱 갈래에서 아홉 갈래까지 다양하게 갈라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팔손이나무는 오래전부터 약초로 쓰였다고 하는데 팔각금반 또는 팔금반, 금강찬이라는 약명을 가지고 있다. 팔손이나무의 꽃말은 '비밀'이다. 겨울에 꽃이 피고 열매는 열리지 않아서 비밀이란 꽃말이 붙은 걸까? 전해 내려오는 설화의 내용도 비밀을 간직한 나무란 것이 암시되어 있다.

옛날 어느 나라의 공주에게 시녀가 있었다. 공주가 아끼는 금반지가 탐이 난 시녀는 양쪽 엄지손가락에 공주 몰래 금반지를 끼워보았다. 인기척에 깜짝 놀란 시녀는 끼운 금반지를 얼른 빼고 빠지질 않는다. 반지가 사라진 궁궐에서는 난리가 났다. 궁궐 안에 있는 시녀와 하인들을 모두 불러 모아 손가락을 내밀어 보게 했다. 이때 다른 하인들은 손가락을 쑥 내밀어 결백을 주장했는데 그 시녀만 엄지손가락을 꼭 접어 여덟 개의 손가락만 내보였다. 그때 그 시녀에게만 하늘에서 벼락이 치고 말았고 그 시녀는 잎이 손가락 여덟 개를 붙여 놓은 것처럼 생긴 팔손이나무로 바뀌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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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손이나무 꽃. / 윤병렬 환경과생명을지키는전국교사모임 회장

누가 지어낸 이야기인지 몰라도 시녀만 불쌍한 봉건 왕조시대 이야기다.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라지만 없이 사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따뜻한 겨울이 좋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두 여러모로 힘든 세상이다.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도 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겨울 추위까지 다가왔다. 그래도 잠시 짬을 내 겨울에 꽃 피는 신기한 나무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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