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교때부터 통학하며 타고 다닌 자전거…아침공기 차갑지만 페달 밟기는 계속

내 고향은 밀양 초동 차월 날끝이다. 초등학교는 마을에 있어 대포탄피로 만든 종소리를 듣고 가도 되지만 조선조 대학자 춘정 변계량 선생 생가 근처인 중학교는 십리 밖이라 자전거를 배워 타고 다녔다.

짧은 다리에 맞춰 아버지가 자전거 안장을 낮추어 주었기에 또래 친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3년을 타고 다닌 덕에 자전거 부품도 그릴 수 있다. 봄·가을 운동회 10m 천천히 타기와 1㎞ 경주에 참가해 우승도 하였기에 고향을 떠난 고등학교 등과 군복무를 빼면 31년 출퇴근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전거와 함께하였다.

펑크수리 장비를 챙겨 들고 마당에 나갔다. 아내의 자전거 앞바퀴 상태를 살피니 날카로운 유리가 한군데 박혀 있어 제거한 후, 튜브를 빼내어 공기를 채워 물 대야에 넣자 거품이 일었다. 헝겊으로 튜브 물기를 닦고 줄톱으로 부드럽게 한 후 고무풀을 발랐다. 고무풀이 어느 정도 마른 후 땜질용 튜브를 붙였다. 지켜보던 아내가 "퇴직해도 먹고살 길이 있겠네" 한다.

고유가로 온 나라가 허리띠를 졸라맬 때는 자전거 열풍이 불더니만 요즘은 시들해졌고 건강을 챙기는 이들이 가끔 자전거를 탄다.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내가 타는 자전거는 국민자전거라 불리는 노인들이 타는 것이라 18만 원인데, 젊은이들이 타는 자전거는 몇 백만 원짜리도 있다. 언젠가 사무실에 자전거를 들고 온 직원이 있었다. 워낙 고가라 밖에 두기가 염려스러워 아예 곁에 두니 휴대폰증후군에 버금가는 자전거증후군에 다리 밑 거지아들 생각이 난다. 남들이 쳐다보지 않는 자전거를 타면 될 것을 하면서도 자전거 애착에 혀를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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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비오는 날. 바닥이 미끄러운 곳을 지나다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한손에 우산을 들고 조심해 회전을 하였는데 넘어져 중심을 잡았지만 다리에 생채기가 생겼다. 공원 농구장이라 본 사람은 없지만 차량 왕래 잦은 도로였다면 큰일 날 뻔해 가슴을 쓸어내렸다. 자전거 타기도 나이를 먹나보다. 노란색 잠바를 아들이 사왔다. 눈에 잘 띄게 자전거를 타는 아버지에 대한 염려라 고마웠다. 도로에 자전거 통행표시가 되어 있지만, 이보다 보도와 도로의 이어짐이 원만해야 사고를 줄일 수 있다. 아침공기가 제법 차갑다. 자전거 페달을 밟을 힘이 남아있는 한 아내와 나의 자전거 사랑은 변함없이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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