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납치사건' 국제공조로 해결

창원시 성산구 한 주택가. 마치 잘 지어놓은 관사 같은 곳이 자리하고 있다. 경남경찰청 비음로 별관이다. 이곳 2층 사무실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자, 크지 않은 체구의 한 남자가 나타났다. 양복 차림을 한 채 "인사드릴 일이 있어 오늘은 차려입고 왔습니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친근한 옆집 아저씨 같은 그가 내민 명함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경남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팀장 박재홍 경감'

이질적 문화 배워가며 수사

지난 2011년 한국인 2명이 인도네시아에서 납치됐다. 각각 통영·인천에 살던 피해자들은 "높은 월급에 선원으로 취업시켜주겠다"는 현지 한국인 말을 믿었다. 인도네시아 도착 후 그들이 건넨 술을 먹고서는 정신을 잃었고 깨어났을 때는 온몸이 묶여 있는 상태였다. 피해자들은 한국인 중심인 일당들로부터 마구 폭행을 당했다. 그리고 강요에 따라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사고가 일어나 돈이 필요하다"며 송금하도록 했다. 피해자 가족들은 이를 수상히 여겨 경찰에 신고했다. 이에 경남경찰청은 인도네시아 현지 경찰에 즉각 수사협조 요청을 했고, 유기적인 공조 수사를 이어간 끝에 일당 6명을 모두 붙잡을 수 있었다. 피해자들은 40일 가까이 감금당한 채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다 가족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일당들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일정 형기를 채운 후 한국으로 송환돼 계속 죗값을 치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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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홍 국제범죄수사대 수사 1팀장. / 김구연 기자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국제공조가 잘 된 사례로 회자되고 있다. 실제 검거는 인도네시아 경찰 몫이었지만, 경남경찰청이 각종 정보를 신속히 제공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도네시아 경찰 관계자들은 직접 한국까지 날아와 경남경찰청에 감사패를 전달하기도 했다.

경남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이와 같은 국외 납치사건을 비롯해 외국인 조폭, 마약 밀수입, 불법 밀입국, 산업기술 국외유출 등을 다루고 있다. 박재홍(50) 경감은 지난 2011년 2월부터 국제범죄수사대에서 활동하며 지금은 수사 1팀장을 맡고 있다.

"처음에는 작은 규모였지만 외국인 관련 범죄가 늘면서 점점 확대되었죠. 현재 경남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두 개 수사팀으로 나뉘어 모두 14명이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제 공조뿐만 아니라 국정원·세관 등 국내 기관과도 정보를 공유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여야 할 일이 많죠."

최근 들어서는 외국인들 간 세력다툼 문제가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이 때문에 외국인들 또한 조폭 형태로 세력을 확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박 경감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했다.

"종종 패싸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비에 따른 우발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자기 나라 여성한테 안 좋은 말을 한다든지, 같은 주점에서 노래 부르다 곡 선정에서 시비가 붙는다든지 하는 경우죠. 물론 자기들 패거리가 있고 그 안에 리더도 있습니다. 또한 서로 간 군림하려는 경향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로 한두 명이 적발되면 대부분 고국으로 추방됩니다. 조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분산될 수밖에 없죠. 따라서 계보를 따질 정도로 조직적이고 대형화된 조폭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동네 조폭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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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홍 국제범죄수사대 수사 1팀장. / 김구연 기자

관련 범죄 또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최근에는 '블랙머니'라는 생소한 단어가 알려진 바 있다. 한 외국인이 "검은 종이를 특수 약품에 넣어 세척하면 지폐로 바뀐다"며 약품 구매비 투자 사기를 시도한 사건이다.

"지역에 돈 많은 사람을 상대로 사기 치려 한다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투자자인 척 접선해서 창원 한 호텔방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덩치도 크고 성격이 포악한 걸로 파악됐습니다. 민간인을 들여보내기엔 위험 부담이 컸죠. 우리 수사관들이 투자자로 가장해 직접 들어갔고, 현장에서 바로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친구가 나름 이상한 약품을 묻히면서 보여주는데 모르는 사람이면 속아 넘어갈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수사 혹은 정보 파악에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을 상대해야 할 경우가 많다. 언어적인 부분에서부터 쉽지 않을 수밖에 없다.

"신뢰할 수 있는 통역자들을 구축해 놓고 있습니다. 귀화자 혹은 결혼이민자 등이 많죠. 오래 하신 분들은 경찰이 어떠한 부분을 궁금해하는지 미리 알아서 척척 물어봐 주고 통역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각 나라 문화·언어·종교·풍습 등에 대한 이해와 공부도 필요합니다. 관련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외국인을 직접 만나야 합니다. 때로는 국내에서 먹기 힘든 음식도 먹어가며 그렇게 신뢰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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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홍 국제범죄수사대 수사 1팀장. / 김구연 기자

"형사는 종합예술인"

박재홍 경감은 경남 고성에서 나고 자랐다. 어릴 적부터 한결같은 꿈은 '경찰관', 아니 '형사'였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장래희망란에 '형사'라고 썼습니다. 정복 입은 경찰관보다는 사복 입은 형사 말이죠. 드라마 '수사반장' 영향도 있었는데, 어쨌든 형사가 멋있더라고요. 아버님은 행정공무원 쪽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또 한 고집하는 성격이라 결국 제 뜻대로 했죠."

태권도·유도 등을 줄곧 연마하며 27살 때 무도경관 특채로 경찰관이 되었다. 1980년대 후반 형사기동대 시절에는 돌·화염병이 난무하는 시위 현장에서 살아야 했다. 이때 한 달 이상 도시락으로만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이후 마약수사대·형사계 등 강력 업무를 줄곧 맡아왔다.

"1990년대 중반 창원 슈퍼 강도살인사건 공범 6명을 모두 검거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통신수사·CCTV 분석 이런 게 없을 때잖아요. 그냥 발품과 인맥에 의존하는 거죠. 나이트클럽 종사자 한 사람 한 사람한테 '이 사람 아느냐'고 물어보면서 작은 단서 하나하나로 퍼즐을 맞춰가는 거죠. 형사는 무조건 노력이라 생각합니다. 남보다 먼저 일어나고 늦게 집에 들어가며 탐문하고 또 탐문하면 결국 나오는 거죠. 그렇게 사건을 해결하면 망자와 유족들에 대한 무거운 마음을 조금은 덜 수 되죠. 옛 시절 창원경찰서 형사계에서 최고 선배·동료들과 일했을 때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아무래도 그 시절에는 끈끈한 정이 넘쳤죠. 지금도 한 번씩 만나게 되면 추억 보따리를 엄청 풀어놓게 됩니다."

'형사'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의 표정과 어투에는 자부심이 뚝뚝 묻어난다.

"한마디로 '종합예술인'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고가 그림이나 난 같은 게 도난당했다면, 전문가 찾아가서 물어보고 공부해가며 수사해야 합니다. 법적인 부분이 애매하면 그것 또한 연구해야 하고요. 형사는 거칠기만 하다는 고정관념 같은 게 있지만, 정말 배워가며 열심히 노력하고, 또 실제로 똑똑한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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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홍 국제범죄수사대 수사 1팀장. / 김구연 기자

최근 경감으로 특진

박재홍 경감은 아내 사이에 아들 한 명을 두고 있다. 대부분 경찰관 아빠가 그러하듯, 그 역시 자녀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미안함을 안고 있다. 그래도 대학생이 된 아들은 아빠와 똑같은 길을 걷기 위한 준비를 이어가고 있다.

박 경감은 여유 있을 때마다 자전거를 곧잘 탄다. 금강 주변 종주길을 완주한 적도 있다. 자전거를 타고 오가는 오르막·내리막은 곧 인생사와 같다는 생각을 한다.

박 경감에게 2016년은 잊을 수 없는 해다. 우선 '2016년 상반기 외사부분 BEST OF BEST 경찰관'에 선정됐다. 그리고 '하반기 정기특진자'에 이름 올리며 경위에서 경감으로 승진했다.

"국제범죄수사대에서 6년 가까이 있으면서 말 그대로 국제적인 감각을 키웠습니다. 제가 이전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던, 성장의 기회가 됐습니다. 조직 전체를 사랑하지만 국제범죄수사대에 대한 고마움을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자부심 또한 말할 필요가 없죠. 특히 수사1팀은 '팀워크 좋은 드림팀'이라 소문이 났습니다. 저 역시 그리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모두 동료들 덕입니다."

어릴 적부터 한결같이 품었던 꿈을 이뤘고, 또 25년 넘게 그 꿈길을 걷고 있다. 그럼에도 때때로 다른 곳에 눈 돌렸던 적은 없었을까? 쓸데없는 궁금증임을 금방 확인하게 된다.

"제가 몸담고 있는 경찰 조직을 생각하면 늘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정의롭고 따듯한 경찰이 되는데 작은 힘을 계속 보태고 싶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이 일을 하고 싶습니다. 퇴직까지 10여 년 남았는데 이후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냥 우리 동료들 다시 만나서 옛이야기 나누며 소주잔을 기울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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