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농협에 맞는 경제사업 찾기에 집중"

'농협'. 말 그대로 풀자면 농촌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도심 곳곳에 자리 잡은 '농업 협동조합'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단순화해서 표현하자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곳에 농협이 있는 셈이기도 하다. 도심의 팽창과 그에 따른 개발로 농협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농지가 거의 없는 곳에 농협이 자리 잡고 있다.

진주 남부농협의 관할 구역이라 할 수 있는 가호동, 나동면, 정촌면 일대는 혁신도시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그야말로 상전벽해라 할 만큼 주변 환경이 격변한 곳이다. 여기에 더해 정촌공단과 뿌리산업단지, 그리고 국가항공산단까지 들어설 계획이어서 또 한 번의 상전벽해가 예상된다. 그만큼 또 농지 면적은 줄어드는 것이다.

농지와 그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여타 농협보다 턱없이 부족한 처지인데, 과연 농협 본연의 설립 이념을 어떻게 담보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비단 진주 남부농협뿐 아니라 도심에 자리 잡은 이른바 '도시형 농협'이 안은 근본적 문제의식을 정광호(58) 조합장에게서 들어봤다. 정 조합장은 도시형 농협이 안은 딜레마에 대해 솔직하게 언급했고, 또 그만큼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고민과 실천을 병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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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호 진주남부농협 조합장. / 박일호 기자

도심형 농협 진주남부농혐

진주 남부농협 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과일이나 채소류가 대부분이다. 진주 시내에서 주로 소비되는 것이고, 생산 방식은 다품종 소량 형태를 띠고 있다. 전업농은 거의 없고 부업농이 많다. 전체 조합원 1800여 명 중 도심에 거주하는 조합원이 1000명에 이른다. 도심에 살면서 이 일대 농지를 구입한 이들이 조합원으로 가입하는 추세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일선 부동산 사무소에서 땅을 구입하는 이들에게 조합원 가입을 독려하는 현상은 도시형 농협 주변의 전형적 모습이 된 지는 이미 오래된 일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농산물 판매 등 경제사업 규모가 현저하게 작다. 일반적으로 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비율이 5대 5가 되어야 '건실하다'고들 하고, 적어도 6대 4 정도의 비율은 유지되어야 한다는 게 농협 관계자의 공통된 진단이다. 하지만 진주 남부농협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 규모는 8대 2가량에 그치고 있다. 정 조합장은 이 대목에서 주저하지 않고 "경제사업과 신용사업 규모 비율이 개선되어야 앞으로 농협에 희망이 있다"고 단언했다. "누가 조합장이 되든 이 부분을 명심하고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농협은 '은행'의 역할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Q. 그렇다면, 경제사업 규모를 늘릴 방법이 있습니까? 농사지을 땅이 없지 않나요.

"문제가 많습니다. 기존 조합원이 고령화되면서 품목 전환을 독려하기가 어렵습니다. 이제는 농협에서 직접 농사를 지어야 하겠다는 생각마저 하게 됩니다. 또, 금산이나 대곡, 문산처럼 농사 규모가 어느 정도 확보돼 있으면, 농업 활성화를 위해 올인해 볼 수 있겠지만 그런 여건도 안 돼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경제사업은 마트나 주유소 운영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행정적 지원이 미치지 않는 주민과 조합원을 위해 다양한 복지사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문제는 돈을 벌어야 하는 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현재로써는 지역개발에 맞춰 우리가 할 수 있는 사업을 찾아내는 일밖에 없습니다. 옛날처럼 돈 장사가 잘되면 모르겠지만, 요즈음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다 까먹을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다행스럽게도 우리 신용사업 수준은 상위 클래스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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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호 진주남부농협 조합장. / 박일호 기자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균형 필요

실제, 진주 남부농협은 정 조합장이 취임한 이래 2013 ∼2015년 3년간 이 분야에서 괄목한 성과를 이루었고, 농협 중앙회 차원에서 1등 상을 받은 바 있다. 이를 기반으로 진주역세권, 혁신도시 일대에 지점을 세우고, 대형 유통센터 건립 계획 역시 준비하고 있다.

Q. 농협 설립 이념과 어긋난다고도 볼 수 있겠는데요.

"농협 이념에 맞지 않는 형태가 맞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번 돈 50% 이상을 농협 이념에 맞게끔 사용합니다. 농자재 등을 무상지원하고 생산 과정에서 손해가 발생하면 보상도 해주고 있습니다.

사실 농협은 이익을 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출자를 한 조합원에게 배당도 해야 하고, 각종 복지사업 규모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앞으로 도시 농협과 농촌 농협 간 합병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봅니다. 도시 농협은 도시 농협대로 은행의 길을 걷고, 농촌 농협은 어려운 경제 사정에 허덕이고. 이런 악순환이 쌓이면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은 분리가 돼 버립니다. 시골에는 돈이 없고, 도시에는 농사지을 땅이 없고…. 계속 이렇게 되면 농촌 농협은 망하고, 도시 농협은 돈 장사만 하면서 직원들 배만 불려주는 형태가 되고 맙니다. 이건 아주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농사지을 땅이 없는데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 가호동에는 농사지을 땅이 한 평도 없습니다. 그런데 조합원은 500명입니다."

Q. 농협 설립이념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큰 것 같습니다.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균형은 아주 중요합니다. 도시 농협과 농촌 농협의 합종연횡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앞으로 도시 농협은 단순히 직원 봉급 주고 조합원들 배당하는 데는 문제 없겠지만, 농협 이념은 사라지고 사업체 은행밖에 안 됩니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 돼요. 시골 농협에서는 돈이 안 남으니까, 결산도 못 합니다. 직원 봉급 수준도 다 다릅니다. 정말 농협 이념 실천을 위해 노력하는 일선 농촌 농협의 직원은 봉급도 적고 복리 혜택 역시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도시 농협 직원은 월급도 많고 복지혜택도 높습니다. 현실이 그렇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도 진주 남부농협은 최대한 농산물 생산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장 농산물 생산 규모를 늘릴 조건은 안 돼 있지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농협의 기반을 다지고자 모든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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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호 진주남부농협 조합장. / 박일호 기자

신용사업 환경이 좋다고는 하지만, 기존 은행과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기업 대출 위주로 영업을 해오던 은행권이 일반 서민 대출로 영업 전략을 바꾸었다. 여기에 더해 농협중앙회 지점과도 경쟁해야 한다. 새마을금고 등과 시장이 겹치는 것도 힘겹다. "신용사업도 전쟁"이라고 정 조합장은 토로했다.

"도시 농협이지만, 그래도 농협 이념에 맞춰 경영하고자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농촌 농협도 그렇지만, 도시 농협 역시 '농업협동조합'이라는 이념에 걸맞게 새로운 길을 모색할 때다. 농협 중앙회 차원에서도 새로운 체제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다. 바야흐로 또 한 번의 거대한 변화는 불가피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광호 조합장의 현실 직시와 그에 따른 대안 모색 노력이 빛을 발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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