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닭 여명 알리지만 탄핵정국 계속…어둠 끝내고 희망의 새싹 키워 나가야

송구영신. 다시 한 해를 시작하는 첫날, 잠시나마 음양세속을 귀동냥하는 재미도 별미일 것이다. 정유년에 담긴 비밀코드는 무엇일까. 닭은 열두 동물 중 열 번째로 이별을 상징한다고 풀이한다. 계절로 치면 음력 8월이니 과실은 나무로부터 떨어져 몸체와 분리되기에 그런 주석이 붙었다. 따지고 보면 추수의 계절이니 이별보다는 수확의 기쁨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닭이 땅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메신저로서의 역할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바로 그'꼬끼오'다. 가장 먼저 세상이 어둠 속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소식을 소리로 전한다. 특히 올해는 붉은 닭의 해. 붉다는 것은 밝음이다. 새벽을 열어 햇볕을 맞이하는 형상이다. 그 기운을 받아 이 해 삼천리 방방곡곡에 서기가 서릴지 알 수 없다.

역사도 한 번 뒤돌아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정유재란은 왜구의 재침으로 절체절명의 국가적 위기에 처했으나 성웅 이순신이 있어 명량해전이란 구국의 대첩을 탄생시켰다.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백의종군하던 이순신 장군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기용한 선택이 나라를 지켜내기에 이른다. 몸을 불살라 오로지 민족과 국가를 지키는 데 헌신한 장군의 사자후가 정유년에 찬란히 빛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시 돌아서 마주한 2017년 정유년. 붉은 닭은 목청을 높여 여명을 알리고 있지만 세정은 끝 간데없이 혼탁하고 어지럽다. 탄핵정국은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고 청와대는 시간끌기에 골몰한다. 그런 탓으로 화난 민심은 처음 열기 그대로 촛불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정치권은 어떤가. 민생과 경제는 저만치 팽개쳐둔 채 대권욕으로 낮밤을 지새운다. 조류인플루엔자는 고개를 숙일 줄 모르고 달걀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서민들의 삶은 팍팍하기 짝이 없고 폐지를 좇아 리어카를 끄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등은 더욱 굽어져 간다. 해는 바뀌었으나 혼돈의 시대는 여전히 제자리를 헤매고 있을 뿐이다.

이럴 때는 실감 못 느끼는 찬양가를 부르기보다 캄캄하기는 하나 그 속에서 뭔가 희망의 새싹을 키우는 편이 낫다. 멕시코에서 농사를 지으며 습작의 열정을 재충전한다는 시인 김호길의 '사막시편'은 어쩌면 카타르시스의 경지를 체험해보라는 손짓과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슬픔이 너무 크면/ 눈물도 마르고 만다/ 눈물은 영혼의 사치/ 기댈 수 있어야 눈물도 있다/ 기댈 곳 절망뿐이어라/ 물 한 방울 없는 사막. 사막을 통해 인내의 씨앗을 품으려는 시인의 혜안이 돋보이는 바에는 지금 우리에게 닥친 고난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책임져야 할 사람들이 진실을 말해주기만 한다면 당장 질서는 회복되고 사회안녕이 담보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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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년 새해 첫날에 절망과 눈물을 말하는 이유는 그로써 합리화된다고 할 것이다. 아무리 정권 도덕성이 파탄 났다고 한들 설마 물 한 방울 풀 한 포기 없는 사막보다 더 나쁘겠는가. 또 알 수 없다. 어떻든 시작이 있었으니 머잖아 끝이 보일 것이다. 그게 유일한 희망이요 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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