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바이트로 번 돈 모아 어려운 가정 3년간 후원
아픈 어르신 마음도 돌봐…작은 배려에 "고맙다" 한마디
녹록지 않은 봉사활동 '보람'

"봉사활동요? 어렵게 생각할 게 뭔가요. 그저 제가 다음에 돌려받을 거라 생각하면 될 것인데."

1993년부터 진해구에서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황보경옥(53) 씨의 말이다. 황보 씨는 우리가 흔하게 볼 수 있는 한 가정의 주부다. 다 큰 대학생 자녀 2명과 늘 아끼고 사랑하는 남편, 오랜 기간 치매로 거동이 불편한 시아버지를 모시는 평범한 주부다. 그런 그가 우연한 기회에 진해구 자은동 영구임대아파트에 있는 한 가정을 돌봐주면서 '봉사'하는 삶을 살게 됐다.

장애인과 소년소녀가장 등 돌봄이 필요한 사회적 약자가 모여 사는 아파트 한 가정을 후원하게 됐다. 남편의 월급으로 후원도 얼마든 할 수 있었으나 그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후원을 시작하면서 작은 것부터 하자고 생각했어요. 남편 월급으로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는데 그게 신문배달이었어요. 배달을 3년간 하면서 그 돈으로 생필품도 많이 사고 했죠."

우연한 기회에 진해구 자은동 영구임대아파트에 사는 한 가정을 돌봐주면서 '봉사'하는 삶을 시작했다는 황보경옥 씨, /박종완 기자

봉사활동을 꾸준히 하던 차에 큰아들의 유치원 입학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황보 씨는 당시 1급지체장애인(엄마)과 손녀 둘, 친정 어머니 등 삼대가 사는 가정을 후원하고 있었는데 마침 손녀들도 유치원을 갈 시기가 됐다. 내 아들만 사립유치원에 보낼 수 없어 아이들을 함께 공립 유치원에 보냈다.

1997년, IMF외환위기가 맞물린 시기에 운 좋게 삼성자동차에 입사를 하게 된 그는 직장생활과 가정주부, 봉사활동 등을 함께 할 겨를이 없었지만 꾸준히 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입사 후에는 봉사활동을 통해 얻은 경험이 회사생활에도 큰 힘이 돼 보람을 느끼곤 했다.

"제가 부산에 있던 삼성자동차 홍보팀에서 일을 했는데 시골에서 견학 오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장애인들도 자동차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견학하기도 했고요. 견학 왔던 분들에게 한 행동이 그들에겐 배려가 됐던지 연신 감사하다면서 고맙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한 할머니는 바지 속에 꼬깃꼬깃 접어둔 만 원짜리 지폐 두 장을 건네며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1999년에는 봉사활동을 더 이상 이어나갈 수 없게 됐다. 시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돌봄이 필요했다. 그렇게 봉사는 접어둔 채 가정에 충실했던 그는 2012년 다시 봉사활동을 위해 두 발 벗고 나섰다.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황보경옥 씨,

2011년 말 퇴사 후에는 진해현모회, 덕산파출소 생활안전위원회, 덕산동새마을부녀회, 목련회, 한우리봉사단 등에서 사회적 약자,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건네고 있다.

2012년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까지 땄다. 자격증을 딴 이유도 달리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어른을 돌보는데 있어 이해하고자 함이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딴 뒤에는 치매에 대한 이해도도 전보다 높아져 시아버지를 모시는 데 더 어려움이 없다.

"저도 사람이니 왜 귀찮을 때가 없겠어요. 그래도 감정조절이 안될 때가 많았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마찰도 안생기고 이해하는 마음이 훨씬 넓어져서 저한테도 큰 도움이 되고 있어요."

황보 씨는 연말, 연초가 되면 고독사로 죽는 어른들이 많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노인문제는 지금도 앞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될 거예요. 요양병원도 있지만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하기도 하잖아요. 어르신들은 여전히 자식들과 함께 살 길 꿈꿔요."

함께 살면 좋은 일이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도 이 부분은 공감한다. 지금은 어르신에 대한 봉사활동을 주로 하는 그는 늙는다는 것에 대해 "호기심이 없어지고 도전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그는 노인이 되는 법에 대해 자신의 소견을 전했다.

"느긋하게 느리게 살아가는 것이죠. 세월의 흐름을 이해하면 됩니다. 마음만 급해지면 다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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