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견법 폐지는 장기 과제, 흐름 바꾸는 건 정부 의지
대기업 직접고용 원칙 이행하도록 관리감독해야

김일권 씨 기억처럼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제조업 생산라인은 대부분 정규직이었다. 사내하청업체 비정규직이 본격적으로 양산된 건 우리나라 경제 위기와 시기가 맞물린다.

사내하청은 90년대 중반부터 조금씩 들어왔다. 1996년 현대자동차가 전주공장을 완공하면서 울산공장 직원들이 옮겨갔고, 울산공장 빈자리를 사내하청으로 채워나간 것이 대표적이다.

잇따라 발생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기업은 사내하청을 계약 해지하며 대량 정리했다. 1999년, 2000년 들어 환율이 폭등하는 등 경기가 살아나자 사내하청이 급속도로 확산했다.

한 차례 위기 때 경험한 사내하청은 기업들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사내하청 노동자는 임금이 저렴할 뿐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고용을 유지하거나 중단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원청 정규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각 사업장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그 힘으로 근로자지위확인소송 바람이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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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내하청 노동자가 자동차 조립을 하고 있다./경남도민일보DB

2010년 대법원이 처음으로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을 원청 정규직으로 인정했다. 의미 있는 성과지만 노동자 개개인이 소송으로 지위를 확인하기에는 시간·비용 면에서 부담이 크다. 첫 정규직 인정 소송도 대법 판결까지 장장 7년이 걸렸다.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더 끈끈한 조직의 힘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현재까지는 금속노조가 제시한 1사 1지부 형태가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꼽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를 하나로 합쳐 정규직 단체협약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1사 1조직 타타대우상용차지회는 2009년 임단협으로 비정규직 노동자 '동일 대우'를 쟁취했다. 이들은 수년 전부터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요구했고 7년간 257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고용노동부의 강한 의지로 문제를 해결한 사례도 있다. 2001년 노동부가 에어컨 제조 업체인 캐리어에 대해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라는 시정명령을 내려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손정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은 정부 의지만 있다면 비정규직 흐름을 바꿀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내하청 제도 자체를 현 시점에서 100% 부정할 수는 없다. 민법상 계약관계라 민법을 고쳐야 하는데 시간이나 노력이 너무나 많이 든다"며 "정부가 상시적이고 고정적인 업무에 대해 특히 대기업일수록 직접고용 원칙을 지키도록 적극적으로 관리 감독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와 함께 이명박 정부 때 바뀐 고용의무를 고용의제로 복구해야 한다고 했다. 고용의제란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노사 당사자의 의사와 관계없이 법률 규정에 의해 해당 노동자는 고용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고, 고용의무란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면 사용자에게 고용이라는 법률행위를 할 의무를 부과하는 것이다. 사측은 고용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과태료만 내면 된다.

중장기 과제로는 파견법 폐지를 들었다.

그는 "상시적이고 고정적 업무는 계약직으로라도 직접고용을 하고 비고정적 업무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용직으로 고용할 수 있다"면서도 "시급한 파견법 조항들을 고쳐나가면서 법 폐지를 장기 과제로 둬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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