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인이다-부조리에 맞서다] (1) 나도 한국지엠 노동자-김일권 씨
샤워장 하나 맘 편히 못 쓰면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차별 없이 노동 대가 받는 세상, 우리 아이들 위해 꼭 이뤄낼 것

"도망만 다니면 내 딸도 나처럼 살지 않을까요. 딸만큼은 이런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한국지엠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는 김일권(43) 씨를 전국금속노동조합 경남지부 한국지엠창원 비정규직지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선한 인상의 그는 진솔하게 자신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에게 2015년과 2016년 겨울은 유난히 혹독했다. 김 씨는 두 번의 11월에 해고 통보를 받았다. 두 번째 통보를 받았을 땐 아내와 중학교 2학년 딸에게 차마 알리지 못했다.

"한국지엠에서 일한 건 2006년부터입니다.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 장기 계약직인데 계약기간이 지나도 자동으로 갱신돼 사실상 무기계약직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동안 회사명과 대표는 수차례 바뀌어도 노동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 같은 사무실에서 같은 동료와 같은 업무를 했다. 입사 후 단 한 번도 재계약을 요구하지 않던 회사가 처음 계약 해지를 알린 건 2015년이다.

2006년부터 한국지엠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해온 김일권 씨.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회사는 처음에 선별채용을, 그다음엔 노조 탈퇴 조건으로 고용승계를 제안했고 그것도 거부하자 노조에 항복해 100% 고용승계를 수용했습니다. 그때는 정말 기뻤죠."

그것이 끝인 줄 알았다. 소속 업체는 부영에서 맨토스파워로 바뀌었지만 이전과 달라진 것 없이 1년을 마무리하는 듯했다. 그런데 지난해 또 '해고 통보'를 받았다. 약 50명이던 해고 대상도 369명으로 늘었다.

비정규직지회는 대량해고 사태가 노조 압박용이라고 했다. 해고 대상에 포함된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은 105명으로 전체 조합원의 3분의 2가량이다. 노조는 특히 지난해 6월 대법원이 사내하청 정규직 지위를 인정하면서 조합원이 크게 늘자 사측이 대응 강도를 높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씨 역시 노조 조합원으로 2014년부터 활동하고 있다. 복지 수당까지 주는 좋은 회사인 줄 알던 곳에서 최저 임금도 주지 않으려 꼼수를 쓴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가입했다.

그는 현재 T3-T4 엔진 라인에서 마티즈3, 다마스, 라보 엔진을 조립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라인에는 29명이 근무하는데 비정규직은 21명, 정규직은 8명이다. 업무는 같지만 대우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같은 공정을 하더라도 정규직은 8명, 비정규직은 5~6명이 투입된다. 그만큼 노동 강도가 세다. 안전화와 작업복도 색깔만 같고 브랜드 자체가 다르다. 임금과 복지는 말할 것도 없다. 정규직이 성과급 100%를 받는다고 하면 장기 계약직은 70%, 단기 계약직은 장기직의 50%를 받는다.

"가장 속상한 건 비정규직은 샤워장도 거의 이용하지 못합니다. 막는 사람은 없지만 정규직만의 공간이라는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땀이 나고 더러운 것이 묻어도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만 하는 정도입니다."

차별은 또 있다. 정규직은 마음껏 쓸 수 있는 연월차도 눈치를 봐야 한다. 집안에 큰일이 있어도, 아이가 아파도 대체인력이 거의 없다 보니 울며 겨자 먹기로 출근해야 한다.

하나부터 열까지 차별받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매년 고용 불안까지 겪게 됐으니 정규직 지위가 더욱 절실하다.

김 씨는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2차 소송단이다. 소송 진행 속도는 더디다. 2년 동안 심리 6차례 열린 것이 전부다. 그래도 소송을 이어가는 이유는 뭘까. "회사에서는 정규직과 같은 일을 정규직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열심히 합니다. 그런데 퇴근해서 집에 가면 현실은 웃기더라고요. 정규직은 능력 있는 아빠, 비정규직은 딸이 뭘 사달라고 해도 못 사주는 능력 없는 아빠. 40대가 되고 보니 가족도 중요하지만 더는 도망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는 특수목적고를 졸업하고 19살에 사회에 첫발을 디뎠다. 돌아보면 비정규직도 없고 가족적인 분위기였던 그때가 그립다고 했다. 4~5년 후면 사회에 나갈 딸도 그런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언제 잘릴지 몰라 불안해하지 않고 열정을 다해 일할 수 있는 일터, 일을 하면 마땅한 보상을 받는 차별 없는 세상에서 꿈을 펼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소수가 외친다고 해서 금방 바뀔 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럴 거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겠죠. 다만 누군가는 계속해서 요구하고 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딸을 위해서라도 정규직 전환 투쟁을 이어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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