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교육·문화 등 가치 실현' 마을주의자 24명 인터뷰 정리…더불어 사는 삶·공동체 일깨워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나 짓고 살 거야."

출근길부터 사람에 치인다. 잿빛 얼굴로 온종일 소모품처럼 업무에 시달리다 가끔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는 위로처럼 내뱉는다.

지키지 못할 다짐이다. 쉽사리 떠나지 못할 것을 우리는 뻔히 알고 있다.

말단 은행원, 비민주노조 간부, 군소언론 기자, 소호벤처 경영자, 영세출판사 기획자 등으로 밥벌이를 했던 <마을 전문가가 만난 24인의 마을주의자-마을공동체를 위한 전망과 대안을 찾아서>의 저자 정기석 씨는 "밥벌이는 늘 어렵고 두려웠다. 모멸감이 들 때도 있다. 도시민으로 지은 죄는 다양했다. 도시의 거대한 구조악에 홀로 맞서기엔 역부족이었다. 안다. 아웃사이더나 이기주의자로서 비겁한 변명이나 핑계에 불과하다는 것은"이라며 마흔에 이르자 제정신이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마을로 저절로, 자발적 유배를 떠나 마을주의자이자 무정부주의자에서 '한 발쯤 더 나간' 마을연구소 소장이자 마을 전문가로 살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마을을 만드는 마을경제주의자, 마을을 배우는 마을교육주의자, 마을을 높이는 마을문화주의자, 마을을 살리는 마을생태주의자 등 총 24명의 마을주의자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했다.

우선 마을주의자에 대해 저자는 국가와 정부, 자본주의와 정치경제학의 구조악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으로 정의한다.

역동적인 경제적 마을주의자와 교육의 진가를 깨닫게 해준 교육적 마을주의자. 인간에 대한 예의와 품격을 알려준 문화적 마을주의자, 생명과 온기를 품은 생태적 마을주의자를 통해 저자는 각기 자신이 몸담은 공동체에 가장 알맞은 방법으로,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을 전국 방방 곳곳을 누비며 마주했다.

직접 현장에서 들려준 이야기에는 '나'가 아닌 '우리'가 있다. '계산'이 아닌 '마음'이 있다. '따로'가 아닌 '같이'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강력한 가치를 일깨운다.

<마을 전문가가 만난 24인의 마을주의자> 정기석 지음

"요즘 아이들은 너무 풍족해서 대체 무엇을,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지 몰라요. 아예 생각도 하지 않잖아요. 좋으면 받고, 싫으면 떼를 쓰죠. 이곳 농촌으로 유학온 아이들은 달라요. 도시에서 아무리 풍족해도 뭔가 모자라고 아쉬웠던 부분들이 채워지는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거죠. 신기하고 신비롭게도. 그건 자연과 사랑, 그리고 마을과 공동체의 힘이라고 봐요." (93쪽)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저자가 이야기하는 마을주의자에게 필요한 덕목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마을주의자가 가슴에 품고 있는 도구나 무기는 낯선 이념이나 어려운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단지 '용기 있는 지혜'뿐이다."(17쪽)

용기 있는 지혜는

모르면 모른다고 털어놓는 것

깨달았다면 행동으로 옮기는 것

삐뚤어진 길은 곧게 펴는 것

쓰거나 떫어도 달다며 삼키는 것

어려운 일도 쉬운 척 기꺼이 떠맡는 것

고통스럽지만 웃으면서 견뎌내는 것

나쁜 버릇은 모조리,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것

불의와는 죽어도 타협하지 않는 것

악을 쳐부수고 물리쳐 기어이 끝장을 보는 것.

264쪽, 펄북스,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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