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자 차별 사고·제도 고쳐야…동생 결혼식날 화나게 한 물음

하필이면 그날처럼 좋은 날, 하필이면 이십 년 만에 만난 동생 친구에게 화를 냈다. "동생이 먼저 결혼해서 어떡하니?" 심심한 친척들의 심심한 위로와 "나이 더 들면 애도 못 낳는다. 빨리 결혼해라!" 애 키우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의 재미없는 놀림에 지쳐 있던 때였다.

동생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내내 불편하고 짜증 나고 심지어 뭔가 내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들던 때, 마지막으로 동생 친구가 딱 걸렸다.

"언니… 언니도 빨리 결혼하셔야죠." 순간, 화가 폭발했다. "너는 결혼이 그렇게 좋니? 그래서 행복해?"

놀라 쳐다보는 동생 친구에게 다시 한 번 나지막이 말했다. "결혼 안 하는 게 무슨 죄니?"라고. 인정한다. 오버했다. 하필이면 그날처럼 좋은 날, 굳이 오랜만에 만난 동생 친구에게 화를 낼 필요는 없었다.

하필이면 요즘처럼 어수선한 시국에, 하필이면 촛불집회 동지를 다그쳤다. 몇몇 선후배들과 박근혜 대통령의 이상한 정신세계를 논하는 자리였다. 세월호 7시간 동안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대통령의 행동에 대해 얕은 지식을 총동원해 심리학적 분석을 내놓던 때였다.

누군가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상한 건 결혼도 안 하고 애를 안 낳아봐서 그래요." 덧붙여 아이를 낳지 않아 철이 덜 들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럼 나는? 나는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았는데?" 순간, 머뭇거리는 상대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비혼 여성은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거야?"라고.

아이를 낳고 길러봐야 세상만사를 알 수 있다는 사고는 위험하다. 비혼은 물론, 아이를 낳고 싶어도 못 낳는 수많은 난임여성에 대한 모욕이다. 여성에 대한 편견이자 차별이다. 하지만 인정한다. 까칠했다. 하필이면 요즘처럼 따뜻한 말 한마디가 중요한 때, 그렇게 다그칠 필요는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묻고 싶다. "비혼은 비정상인 겁니까?"라고.

기혼은 정상, 비혼은 비정상이라고 인식되는 이 시대, 비혼자는 피곤한 시선은 물론, 법적 제도적 차별을 감내해야 한다. 이 시대 모든 법과 제도는 기혼을 전제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선거제도만 해도 그렇다. 현행 공직선거법상 예비선거 운동 기간에는 후보자 외 후보자의 배우자와 자녀 등 직계존비속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만약, 비혼인 내가 선거에 출마한다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 혼자 쓸쓸히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한 표가 아까운 선거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룰을 감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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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임대주택 입주 우선순위도 마찬가지, 비혼자는 설 자리가 없다. 물론, 저출산에 따른 국가경쟁력을 고려해야 하는 건 인정한다. 복지재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우선순위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무조건'이라는 인식은 바꿔야 한다. 결혼을 했느냐, 아이가 있느냐가 모든 복지서비스의 기준이 되는 건 반대한다. 특히, 요즘처럼 비혼자들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가족위주의 복지서비스는 한 번쯤 고려해 볼만하지 않은가.

"사장님! 저는 신혼여행을 안 가는 대신, 비혼 휴가를 주세요." 언젠가 사장님에게 기혼자 중심의 사규가 부당하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비혼자도 배려하는 사규로 바꿔주기를 건의했다. 물론, 아직 바꾸지 않았다. 하지만 천천히, 내 손으로 내 주변부터 나를 차별하는 법과 제도를 바꾸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비혼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 물음표를 던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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