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가구 사는 마을 3년째 이장직, 농사지으면서 요양보호사까지
"도로 개설 등 사업 벌이기보다 아픈 어르신 돌보는 게 더 중요"

하동군 악양면은 천혜의 자연과 역사,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흔치 않은 특별한 지역이다.

악양면 뒤편으로는 지리산 줄기인 형제봉과 구제봉이 병풍처럼 버텨 있고 앞으로는 섬진강과 넓게 펼쳐진 무딤이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소설 토지의 무대인 최참판댁, 하동 출신의 판소리 근대 5대 명창인 유성준·이선유 선생과 남명 조식 선생의 흔적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그런 공간이기에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무딤이들과 섬진강이 한 손에 잡힐 듯 바라보이는 곳에 있는 악양면 봉대리 봉대마을은 그래서 더 특별하다.

27가구 80명이 채 안 되는 소규모 마을이지만 악양면만이 품은 자연의 넉넉함과 편안함이 마을 모습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이장을 하면서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는 최경아 이장. 마을 발전을 위해 도로를 내거나 큰 사업을 벌인다든지 하는 거창한 일이 아니라 어르신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것이 소소한 바람이라고 했다. /허귀용 기자

내내 환한 웃음과 미소로 마을 이야기를 쏟아내던 봉대마을 이장 최경아(48) 씨의 모습은 마을이 품은 넉넉함과 편안함을 그대로 전하는 듯했다.

"젊은 사람이 거의 없고 일할 사람도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을 어르신들 권유로 이장이 된 지 올해 3년째입니다. 힘든 건 전혀 없어요. 제가 역마살이 많아서 돌아다니는 걸 좋아합니다. 그냥 재미있습니다."

대부분 시골 마을의 이장은 고단하고 힘들다. 제 한 몸 가누기 어려운 고령의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다 보니 마을 이장이 마을 대소사를 모두 챙겨야 하고 마을 주민 간 갈등이 생길 때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더욱이 마을 일을 먼저 챙기다 보면 자신의 일은 늘 뒷전으로 밀려나기 일쑤여서 가족들의 따가운 눈치에도 시달려야 한다.

그의 모습에서는 고단하거나 힘들다는 내색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즐겁게 이장 일을 할 수 있게 된 건 모두 마을 어르신들 덕분이라며 오히려 공을 마을 주민들에게 돌렸다.

"동네가 작아서 그런지 마을 주민 간에 싸움 나는 일이 거의 없어서 단합이 잘 되고 마을 일이 있으면 어르신들도 잘 도와주십니다. 제가 즐겁고 재밌게 일할 수 있는 것도 어르신들 덕분입니다. 그리고 애교도 많아서 어르신한테 사랑을 많이 받습니다."

사실 그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자식 셋 뒷바라지에 농사일에 그리고 본업인 요양보호사 일까지 하다 보면 하루가 금세 지나간다.

요양보호사는 8년 전 시작했다. 치매나 요양 등급을 받은 악양면과 화개면에 사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가정방문을 한다.

공휴일을 빼고 오전 7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꼬박 8시간 이상 해당 가정에서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보면 몸이 지칠 법도 하지만 이장 일의 하나로 여기며 서두르지 않는다.

"요양보호사 일이 참 많이 힘듭니다. 일 자체도 힘들지만 치매 환자의 경우 요양보호사가 돈을 가져간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욕을 해서 스트레스 많이 받습니다. 그래도 그분들 사정을 이해하니까 즐겁게 합니다. 어떤 어르신은 안쓰러웠는지 식당가서 일하면 편할 텐데 똥 기저귀 치우면 좋으냐고 하지 말라고 하시기도 합니다(웃음)."

그는 마을 이장을 하면서 한 가지 바람이 생겼다. 마을 발전을 위해 도로를 내거나 큰 사업을 벌인다든지 거창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마을 어르신들이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는 것이 소소한 바람이라고 했다.

"마을 어르신들이 모두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 두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지금 살아계신 어르신도 치매에 걸리시거나 암으로 고생하시는 분이 적지 않습니다. 제가 아무리 잘 해드려도 어쩔 수 없는 일이어서 아픈 어르신을 보면 마음이 아플 때가 잦습니다. 마을의 큰일을 해내는 것보다 어르신들이 항상 건강했으면 하는 게 간절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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