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봅시다]밀양 영남루 안내문 서체 논란
'음식물 반입금지'등 문구 표시 시 "불편함 느낀다면 교체 고려"

밀양 영남루에 고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 글씨인 일명 '신영복체'가 내걸렸다. 하지만 그 내용이 '음식물 반입금지'와 같은 이용객에게 주의사항을 알리는 문구(사진)라면 어떨까.

27일 오전 11시께 밀양시 내일동에 위치한 영남루를 찾았다. 보물 제147호이자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으로 꼽히는 영남루는 명성에 걸맞게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밀양 랜드마크인 이곳에는 '음식물 반입금지', '신발은 신발장에 넣어주십시오'와 같은 방문객에게 주의사항을 알리는 표찰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문제는 해당 주의사항을 쓴 서체가 내년 1월 15일 1주기를 맞는 신 교수의 글씨 '신영복체'라는 점이다.

밀양시청 문화관광과는 지난 11월 한 디자인 전문업체에 의뢰해 해당 표찰을 제작해 이를 부착했다. 디자인 전문업체는 표찰 제작 당시 유료 서체였던 '신영복체'를 구입해 사용했다.

하지만 선이 굵고 단정한 글씨체를 선보인 서예가이자, 학자로도 유명한 고인의 서체를 알림 표찰로 사용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맞지 않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김유철 시인은 "신 교수가 생전에 서민이 기쁘거나 슬플 때 자주 찾는 술이라는 점을 고려해 한 주류회사 소주 이름을 붓글씨로 써주고 몸 담고 있던 대학에 장학금 형식으로 저작권료 1억 원을 기부한 일화만 생각해보더라도 해당 서체가 이렇게 사용되는 데 문제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며 "추사체가 아무리 뛰어나도 그것을 아무렇게나 사용하지 않듯 고인의 서체를 이런 내용을 담는 데 사용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영남루에는 다양한 이들이 적은 시문과 현판을 설명하는 글이 있다. 이들에 비해 밀양 출신이자 시대의 스승이었던 고인의 서체가 가진 무게가 적진 않을 텐데 이렇게 사용하는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신영복 선생의 삶과 생각을 닮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더불어숲은 신 교수 1주기를 앞두고 지난 21일부터 개인의 비상업적 용도에 한해 '신영복체' 컴퓨터용 폰트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그동안 '어깨동무체' '연대체' 'J신영복체'라고 불렸던 해당 글꼴은 직지소프트에서 유료로 판매해왔다. ㈔더불어숲은 "고인이 생전 누구든 원하는 사람이 있으면 서체를 쓰게 하자고 했다"며 무료 배포의 취지를 밝히기도 했다.

밀양시청 문화관광과 한 관계자는 "표찰을 제작할 당시 업체에 문구만 알려줬을 뿐 따로 폰트를 지정하진 않았다"며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지만 불편함을 느끼는 분이 있다면 다른 서체로 교체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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