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트레킹을 즐기는 나에게 인도네시아 롬복에 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린자니산 트레킹 때문이었다.

나는 독일인 4명, 스페인인 3명, 벨기에인 3명, 미국인 1명과 함께 총 12명이라는 대그룹의 일원이 되어 트레킹을 시작했다. 약 1시간을 걸었다. 그리고 갑자기 점심을 먹고 간다고 한다. 점심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오랜시간 무거운 짐을 계속 들고 갈 포터(porter·짐꾼)를 생각해서 쉬어 가기로 했다. 기다리는 동안 그들의 요리하는 모습을 훔쳐봤다. 그리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집에서 떼온 듯한 가스레인지에, 중국 볶음요리에나 쓰일 법한 커다란 프라이팬, 집에서 쓸 법한 커다란 가스통까지. 어떻게 저런 걸 지고 해발 3000m가 넘는 산을 2박 3일 동안 오르고 내릴 수 있는 것인지 정말 인간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게다가 더 대단한 건 변변한 트레킹화 없이 미끄러운 슬리퍼를 신고 그 험한 일정을 소화한다는 것이다. 일정 내내 사람들은 포터가 지날 때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길을 내주었다. 이들이 얼마나 많은 짐을 들고 얼마나 열악한 조건으로 트레킹을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저절로 길을 내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2박 3일의 투어 동안 하루에 평균 10시간 내외를 걷고 또 걸었다. 가장 힘들었던 구간은 둘째날 새벽 3시에 일어나 숙영지에서 정상으로 가는 구간이었다. 깜깜한 어둠 속인데다가 활화산이다 보니 정상으로 갈수록 화산재가 바닥에 가득했다. 올라가는 내내 엄청난 화산재를 마셔야 했고 끝이 없는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특히 마지막 500m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금방 닿을 것 같았던 정상이었지만 자갈 밭에 수많은 화산재가 일으키는 먼지에 오르고 올라도 다시 미끄러져 내려와 나를 좌절하게 만들었다. 누군가 나를 뒤에서 끌어당기기라도 하듯 올라도 제자리걸음, 아니 뒷걸음치는 느낌이었다. 멀리서 해가 떠오르고 있었지만 정상에서 일출을 보겠다는 꿈을 버린 지 오래였다. 이제는 정상에 가느냐 마느냐가 문제였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 잠시 앉아 뒤를 돌아봤다. 그래도 오른 길이 올라갈 길보다 많다는 사실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렇게 내 인생 가장 힘들었던 정상 도전은 결국에 이루어졌다. 나를 더욱 눈물겹게 만들었던 건 제일 마지막으로 정상에 도착한 나를 팀원 하나하나가 반기며 축하해주는 것이었다.

인생에 있어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면 나는 이 순간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매번 힘들지 않았던 여행, 에피소드가 없었던 여행은 한번도 없었지만 특히나 기억되는 순간이 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아프리카에서 강도를 만나 살해 위협을 당했던 순간, 어두운 밤 멧돼지를 만나 죽음의 공포를 느꼈던 그 순간과 함께 가장 힘들었던 여행 중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김신형(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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