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33)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순례자 모여드는 대성당서 특별미사 스스로 대견한 마음에 눈물 절로
광장서 함께 춤추고 사진 찍으며 정들었던 이들과 아쉬운 작별 달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둘째날, 석별의 정

지난밤에는 잠을 푹 잤어요. 어제 많이 걸은데다가 전의 알베르게(순례자용 숙소)보다 잠자리가 편했나 봐요. 아침 일찍 친구들 마중하러 오브라도이 광장으로 갔더니 벌써 모두 도착해 있어요. 모두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사진을 찍고 순례증을 받으러 순례자 사무실로 갔어요. 일찍이라서 다행히 줄이 길지는 않네요. 여기는 언제나 순례자가 많아 늘 줄을 서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동안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에 찍힌 도장을 보고 순례증을 발급해 줍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었다는 증명서예요.

순례증을 받고 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하지만, 시끌벅적 다시 친구들과 어울려 내가 묵는 알베르게로 갔어요. 모두 다 오늘은 내가 묵는 곳에서 묵는다고 합니다. 친구들이 다른 곳으로 가면 따라가려고 했는데 잘되었어요. 부엌에서 간단히 함께 아침을 먹고 다시 광장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갔어요. 매일 정오에 순례자들을 위한 특별미사가 있기 때문이에요.

순례길을 다 걸었다는 증명서인 순례자증을 들고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선 박미희 씨.

성당에 갔는데 이게 누구예요? 미국인 프랭크가 앉아서 엽서를 쓰고 있더라고요. 얼마나 반갑던지요. 얼마 전부터 못 만나기 시작해서 다신 못 만날 줄 알았는데 글쎄 이곳에서 다시 만나다니요. 프랭크도 아주 반가워합니다. 수많은 순례자가 성당을 가득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제단 뒤쪽에는 성야고보(산티아고) 상이 있어요. 지난 1000년간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와 이 상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답니다. 나도 그렇게 했습니다. 순례길을 걷는 동안 감사하다고요.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 때문에 오래 기도할 수 없어서 아쉬웠어요.

야고보 성인의 무덤도 둘러보고 미사를 기다리며 앉아 있는데 감사의 눈물이 저절로 흘렀습니다. 마음도 벅차오릅니다. 이 대단한 일을 한 제가 너무 대견합니다. 꼭 야고보 성인의 무덤을 보려고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어요. 어떤 대단한 깨달음을 얻으려고 온 것도 아니었고요. 신문 화보 속의 산티아고 풍경이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겼고 이곳에 오고 싶어 열병을 앓았었지요. 이곳만큼은 꼭 나 혼자 오고 싶었고요. 그 일이 얼마나 무모한 생각이었는지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전 결국 해 내었습니다.

비록 언어는 잘 통하지 않지만 이 먼 타국에서 수많은 사람의 사랑과 관심을 받았고 스페인을 구석구석 거닐며 아름다운 광경을 수없이 보았고 세계의 많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지요. 긴 시간 동안 오로지 저 자신과 마주하며 저와 수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일, 그 하나만으로도 큰 수확을 얻은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수많은 순례자가 바닥에도 앉아 있고 벽에도 기대어 서서 미사를 기다립니다.

순례길에서 만났던 동료들과 함께한 박미희 씨.

미사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에 거대한 향로가 그네 타듯 춤을 추는 광경이었어요. 예전에는 순례자들에게서 나는 냄새 때문에 향을 피웠다고 하는데 지금은 미사의 순서로 자리 잡았다고 하네요. 정말 장관입니다. 향로가 움직일 때마다 모두 와~! 와~! 환성을 지릅니다. 예전에는 미사 때 순례자들의 이름을 한명 한명 불러 주며 축복해 주었다고 해요. 지금은 출발도시와 국적, 몇 명인지만 불러 주며 축복을 해 줍니다. 예를 들어 '생장에서 출발한 한국인 몇 명' 하는 식으로 말이죠. 너무 소란스러워 미사 내용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지만 감동은 가라앉지 않습니다.

미사 후 거리에서 정들었던 얼굴들과 마주칠 때마다 서로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온 마음을 다해 서로 안아주고 축복하는 거지요. 다들 마음이 들떠 있습니다. 광장에서 흥겨운 음악과 함께 축하의 공연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빠질 수 없죠. 어깨동무도 하고 함께 엉켜 춤추며 흥겨움을 나눕니다. 스페인 사람 하우메가 스페인 전통춤을 추길래 따라 해 보았는데 잘 되지를 않아요. 안 되는 춤이긴 하지만 열심히 하면 그만이죠 뭐~! 신나면 그만이죠 뭐~!

한바탕 어울림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갔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찾지도 못할 식당으로 갔어요. 현지인들이 찾는 곳이라나 봐요. 역시 스페인 친구들이 있어 좋네요. 우리가 파파라고 불렀던 스페인 사람 비센테가 돌아가며 소감을 말하라고 합니다. 모두 한마디씩 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말이 통했더라면 더 감동적이었을 텐데 이럴 때 말이 안 되는 게 가슴이 터질 듯 답답합니다. 그래도 마음은 통하는 법,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고 있으니까요. 식사 후 우린 함께 쇼핑을 하고 살 옷 입는 것도 봐주고 거리를 쏘다녔습니다.

친구들은 알베르게로 돌아가고 저는 니나를 바래다주러 갔습니다. 니나는 몬테 도 고소의 폴란드인 알베르게에 며칠 묵기로 해서 그곳까지 다시 걸어간답니다. 그곳에서 며칠 묵으며 산티아고에 매일 올 거고 축제도 보고 갈 거라네요. 같은 나라 사람이 하는 알베르게라고 그 먼 거리를 마다치 않고 의리를 지키는 니나가 대단해 보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포옹을 했습니다. 이제 만나지 못할 거거든요. 물론 서로 자기네 나라에 놀러 오라고 초대는 했지만 언제 만날 수 있을는지요. 함께하며 많이 의지했었는데 엊저녁이라도 함께 할 걸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중심가에서 공연을 즐기는 순례자들.

알베르게로 오니 친구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저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함께 슈퍼에 갔어요. 함께 순례길을 걸으며 한국식으로 밥을 한번 해 주고 싶었는데 알베르게에 취사가 안 돼서 못해 주었어요. 그래서 아쉬움에 함께 먹을 맥주도 사고 낼 아침을 위해 달걀도 사고 바나나도 좀 사서 숙소로 왔어요.

친구들은 콘서트를 본다고 먼저 나가고 저는 달걀을 삶아 놓고 나가서 합류를 했죠. 늦을지 모르니까 관리인에게 열쇠도 받아 가는 것도 잊지 않았고요. 광장에 나가 콘서트도 보고 즐기다가 알베르게로 돌아와 맥주도 마시고 사진도 함께 찍으며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 고마운 인연들, 순례자 생활을 풍성하게 해 주었던 친구들, 헤어지면 언제 만나게 될까요. 서로 기회가 되면 스페인에서, 한국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하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글·사진 박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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