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민 기자가 만난 농협CEO] (10) 하동농협 정갑수 조합장
대량·집중생산 안돼 어려움 겪는 소득 창출
관광객·지역사회 상대 판로 확대·활성화 고심

하동농협 정갑수(52) 조합장은 농협 임직원 출신이 아니다. 그렇다고 행정 관료 생활을 한 것도 아니다. 30대 초반에 고향에 정착해 농사를 지어온 농민이다. 한농연(한국농업경영인연합회) 하동군 회장을 역임한 '젊은 피'라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지난해 조합장 동시선거 때 하동에서는 관내 7개 농협 중 5곳에서 한농연 소속 농민이 조합장으로 당선되는 파란이 일어났다. 모종의 변화를 갈망하는 조합원들의 의지가 반영됐다 해도 무방할 듯하다.

유권자들이 변화를 바라고 그것이 현실화될 때는 그 원인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하동농협은 대내외적인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

지난해 조합장 선거 직전 20억 원대 횡령 사고가 발생했는가 하면, 의욕적으로 추진한 '매실 가공공장' 사업 실패로 손실을 남겼다. 하동농협뿐 아니라 대부분 농협이 깨지기 쉬운 유리 다루듯 조심스럽게 경영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하동농협에 가해진 잇따른 악재는 그 존립을 위협할 만한 것이었다.







◀ 정갑수 하동농협 조합장은 30대에 고향에 정착해 농사를 지어온 농민 출신 조합장이다.


/박일호 기자 iris15@idomin.com

일반적인 수순대로라면 정갑수 조합장은 당선되자마자 장밋빛 전망을 내놓아야 했다. 그러나 정 조합장은 무책임한 장밋빛 전망에 기대는 대신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농업에 가해진 무수한 구조적 모순을 일개 농협 하나가 뚫을 수는 없는 일이다. 허황된 '성공신화'보다는 최대한 조합원들 처지에서 생각하고 정책을 만드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동농협은 하동읍, 적량면, 고전면을 관할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매실, 배, 수박, 양상추, 밤, 딸기, 취나물, 부추, 블루베리, 단호박, 풋고추 등이다.

- 생산되는 품종이 많다.

"(품종이) 많으니까 힘들다. 농업 소득을 높이려면, 전업농이 대량으로 장시간 생산하는 시스템이 되어야 하는데, 철 따라 나오는 소규모 품종으로는 소득을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는 게 사실이다."

계절에 맞게 생산되는 농산물이 제값을 받아야 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국내 유통·소비 환경은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인 셈이다.

하동농협에서는 관내에서 생산되는 매실, 밤, 취나물, 부추 등을 거의 전량 판매하고 있다. 배는 호주 수출까지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역시 어려움이 있다.

"우리 농산물과 과일이 귀한 대접을 못 받다 보니 생산을 해도 만족하는 값을 받고 파는 건 아니다."

이렇다 보니 수출이 국내 수급량을 조절하려는 방편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매실 판매 촉진을 위해 가공 공장을 설립해 봤으나, 지금은 이미 매각절차까지 마친 상태다. 매실 폐농 농가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최근 2∼3년 동안 미디어에 검증되지 않은 매실의 유해성이 광범위하게 퍼졌고, 매실을 이용해 음료나 술을 만드는 대기업에서도 구매를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하동군 관내 농협은 매실 협의회를 만들어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는데 골몰하고 있다.

"아직 과학적으로 규명되지 않은 게 많다. 미디어에서는 자극적인 이야기만 하니까 농가들이 타격을 많이 입었다."

하동에서 생산되는 매실이 전국 재배량의 1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좀체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이다.

그러나 정 조합장의 냉정한 현실 진단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 관내에 자연 부락이 88개가 있다. 1개 읍 2개 면인데, 2개 면에서는 75세 이상 조합원이 35%를 넘는다. 어려운 면 단위 영세 농협을 흡수하다 보니 더 어려워진 측면이 있다. 하동군 전체적으로 인구는 줄어든다. 사업이 잘되려면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인구 축소와 고령화에, 생산 물량은 마이너스로 치닫고 있다. 우리 농협뿐 아니라 지겹게 제기되는 우리 농업의 실상 아니겠나. 그럼에도 신용사업을 하면서 조금씩 수익을 내왔는데, 요즈음은 금리 때문에 그마저도 어렵다. 이런 상황 속에서 그래도 고령 조합원들과 전체 농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혜택을 찾는 데 노력하고 있다."

- 그럼에도 주력 농산물을 개발하고 경제사업 규모를 늘려 가야 하지 않나.

"경제사업 해서 수익 내라는 것은 말하기 좋은 말만 하는 셈이다. 수수료 떼고, 환원사업하고 그러면 그야말로 봉사활동하는 수준이다. 농협에서 하는 경제사업이 현실화되고 제도가 바뀌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우리 역할이 중요하다. 우리가 하는 만큼 농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갈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야 한다. 신뢰회복을 위한 노력을 농협이 먼저 해야 되는 일이긴 하다. 지나온 50년을 보면, 다가올 1∼2년 동안 우리에게 닥칠 어려움이 눈에 선하다."

그렇다고 해서 하동농협이 현실적 모순과 어려움 때문에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관광객을 상대로 한 판매 활성화 전략을 강구하는 한편, 지역사회에서 판로확대를 통해 지역 기업으로서 입지를 다진다는 계획이다. 그러면서도 정 조합장은 농협이 담보한 사회적 기업의 성격을 또 잊지 않고 있었다.

"우리도 생산되는 농산물을 이용해 경제사업 일환으로 다른 조합처럼 식당업 등을 하고 싶지만, 읍내 자영업자 대부분이 식당을 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식당을 해서 경제사업을 했을 때 자칫 농협이 갑질을 한다는 지역 여론도 신경 써야 하지 않겠나."

농협과 농민은 바늘과 실과 같은 존재다. 그래서 정 조합장은 이런 제안을 했다.

"외지에 나가 계시는 하동군민이 50만 명이라고 치자. 그분들이 우리 농협에 와서 카드 한 장이라도 만들어서 식사하고 기름 넣는 데만 사용해줘도 그 수익으로 우리 관내에 있는 조합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사업을 좀 더 할 수 있다. 고향 방문하실 때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생필품 사서 가시는 등 도와주시면 우리도 활로가 좀 뚫린다. 우리 관내 여건 가지고는 이끌어가는 데 한계는 분명 존재한다."

근본에서부터 손을 봐야 할 농업 현장의 모순이 산적한 데도 이 모든 일을 농협이 해결하라는 건 말이 안 된다. 또한 농협 역시 조합원들에게 신뢰를 받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농업 경영인 출신 정갑수 조합장은 원칙 있는 질문을 던지면서도 구체적으로 발현되는 조합원들의 힘겨움을 덜어주기 위해서도 고군분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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