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서인숙·문영규 유고 시집, 소멸·영원성 담은 연작시…문학적 내공 담은 작품들 남은 이들에게 '희망'으로

올해도 많은 도내 시인이 시집을 냈습니다. 하나하나 의미 있고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 가운데 최근에 세상을 떠난 시인들이 낸 유고 시집이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고 서인숙 시인의 <청동거울>(동학사, 130쪽, 1만 3000원), 고 문영규 시인의 <나는 안드로메다로 가겠다>(갈무리, 152쪽, 9000원)입니다. 서인숙 시인은 올해 3월, 문영규 시인은 지난해 10월에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시인들이 품었던 시는 각각 그 즈음에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올해 나온 2권의 시집을 들여다봅니다.

◇청동거울 연작시 = 서인숙(1931~2016) 시인이 낸 <청동거울>은 처음부터 유고 시집으로 준비된 것은 아니다. 시인이 시집 발간을 온전히 다 준비한 후 시집이 나오기 불과 일주일 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결과적으로 유고 시집이 됐다.

시집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시인이 출간 직전 타계하면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수필집 6권, 시집 6권을 낸 데 이어, 이번에 마지막 시집 한 권을 보탰다.

이 시집은 수필을 쓰다 시를 썼던 시인이 등단 50년에 낸 것이다.

/서동진 기자 sdj1976@idomin.com

서인숙 시인은 "시선집 〈조각보 건축〉 이후 여러 문예지에 발표한 것과 미발표작을 한데 묶었다. 시를 사랑하는 이에게 한아름 꽃다발이고 싶다"고 시인의 말을 썼다.

'청동거울', '토기의 말', '첨성대', '석불의 반란', '수막새', '목어', '달항아리' 등의 시에서 문화재를 글감으로 삼았다. 고미술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이유다.

이근배 시인은 '시간의 평화, 모국어의 광채'라는 제목의 작품 해설에서 "그림이나 글씨, 조각 등 예술작품을 시의 오브제로 삼을 때 자칫 겉모습이나 사실적 묘사에 흐르는 것을 보는데 서인숙 시인은 자신의 시적 상상력 속에 재구성해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예술품을 창조해냈다"고 평가했다. 또 이번 시집에 대해 "그의 시의 자화상이며 문학적 내공의 절정을 담아내는 회심작"이라고 극찬했다.

<청동거울> 시집에는 청동거울 연작시가 두드러진다. '소멸', '무상', '사랑'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지병으로 죽음을 앞둔 시인이 소멸과 영원성 등을 이야기한다. "시퍼렇게 멍든 사람/아프게 슬픈 얼굴이여/피 비린내 흙의 향기로 살아 온/선사시대/죽어도 죽지 않은 한 세상의 목숨이/해골로 울지 않은 울음으로 통곡한다/사랑에 목숨을 걸어도 좋은 자유를/신은 선물했다/선물은 괴롭고 아파도 사랑은/아름다워라/저 시퍼런 갈증/영원은 어디에 있는가/그립다/그리움은 강물로 흐느낀다/사랑이 죽음이 된 청동 꽃이여//"('청동거울-사랑')

이성모 마산대 교수는 <경남문학>에서 "만년에 서인숙 시의 자장은 고대의 향수로부터 출발해 영원성을 들여다보는 내면화로 충일하다.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청동거울인데, 세 차례의 출간시집에 표제는 같으나, 각기 다른 연작시 형태를 띤다. '청동거울-사랑'에서 화자는 영원히 '사랑이 죽음이 된 청동꽃'의 시인으로 남고 싶다"고 시를 분석했다.

◇일상 속 사유 = 문영규(1957~2015) 시인의 이번 시집은 <눈 내리는 저녁>, <나는 지금 외출 중>에 이은 세 번째 시집이다. 2014년 <나는 지금 외출 중> 이후에 발표된 작품과 미발표 원고를 '객토' 동인, 가족 등이 묶어서 최근에 냈다.

<나는 안드로메다로 가겠다>
문영규 지음

문영규 시인의 시는 노동, 삶의 풍경 등을 진솔하게 담아냈다. 1부 '그 무엇도 아니다', 2부 '입원실에서', 3부 '주유소 일기', 4부 '분해' 등으로 시를 정리했다.

'연꽃 논에 와서'라는 시는 시인의 마음을 잘 보여준다. "함양 상림 숲의/연꽃들이 궁금하여/못가에 와서 보니/겨우 숟가락만한 이파리들/찬물에 떠 있을 뿐//한발 뒤따르던 아내가/다가서며/뭐 볼 게 있냐고 묻길래/아무것도 볼 게 없다고 말해 놓고/그 말 하고 연꽃들에게/얼마나 미안하든지/생각해 보니/연꽃만 아니라/나는 모든 걸 눈으로만 본 것을/비로소 알게 된 것인데/귀로만 들었던 것을 가까스로 알게 된 것인데//눈으로 본 곳은 본 것이 아님을/귀로 들은 것은 들은 게 아님을/알게 된 것인데//"

병마와 싸우면서도 주유소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겪은 일상 속 사유를 '주유소 일기'라는 연작시에서 보여준다. 문영규 시인은 생전에 '시와 시인 그리고 진정성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시'라는 것은 세상과 친구를 맺는 것이라 생각한다. 시 쓰기가 나의 이야기이면서 바로 아파하는 세상 이야기의 비유라는 생각을 했다"고 적고 있다. 그는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어했다. 〈객토〉 12집에서 그는 "우리는 애써 희망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을 놓아버린다는 것은 너무도 쓸쓸한 일이기 때문이다. 막연한 희망은 사람의 생각을 마비시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절망은 사람의 생각을 황폐화할 것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서정홍 농부 시인은 '문영규 시인을 그리며'라는 글에서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은 나이에, 시인은 쓸쓸하고 먼 길을 홀로 떠나갔다"며 "시인은 떠났지만, 시인이 쓴 시가 남아 있어 우리는 그 시를 읽으며 시인을 만난다"고 했다.

◇ 서인숙(1931~2016) 시인

1965년 〈현대문학〉에 수필 '바다의 언어', 1979년 시 '맷돌'이 문학평론가 조연현 추천을 받아 등단.

시집 〈살아서 살며〉, 〈먼 훗날에도 백자는〉, 〈그리움이 남긴 자리〉, 〈세월도 인생도 그러하거늘〉, 〈오렌지 햇빛〉, 시선집 〈조각보 건축〉, 수필집 〈타오르는 촛불〉, 〈최후의 지도〉, 〈태고의 공간〉, 〈영원한 불꽃〉, 〈그대 마지막 빛으로 남고 싶다〉, 〈고대의 향수〉 등이 있음.

한국수필문학상, 경상남도문화상 예술부문, 마산시문화상, 우봉문학상, 경남문학상, 경남예술인상, 마창불교문학상 수상. 경남가톨릭문인협회 회장, 한국여류수필가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마산지부장, 국제펜 경남지회장 등 역임.

◇ 문영규(1957~2015) 시인

1978년부터 1983년까지 창원 금성산 전, 통일중공업에서 일함.

1995년 마창노련문학상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 시작.

객토문학〉 동인, 〈일과시〉 동인, 경남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전태일 기념 시집〉 등에 작품 발표.

2002년 첫 시집 〈눈 내리는 저녁〉, 2014년 두 번째 시집 〈나는 지금 외출 중〉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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