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1) 지리산…조선 중기 유학자 남명 조식, 산청 시천면 산천재에서매일 천왕봉 바라보며 사색

산청군 시천면에 있는 산천재는 조선 중기 유학자 남명 조식(1501~1572)이 61세부터 살며 제자를 가르친 곳이다. 남명은 평생 벼슬이라고는 해 본 일이 없다. 그런 그가 조선 유학자 중에서도 역사적으로 큰 발자취를 남긴 것은 오로지 철저한 자기반성과 절제라는 그의 학문 태도 덕분이다.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퇴계 이황이 경상좌도 사림의 우두머리였다면, 남명은 경상우도의 우두머리였다. 산천재에서 남명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대부분 의병을 일으켰다. 의병은 의를 실천하는 조선 선비정신의 발현이며 남명 학풍의 실천적인 도덕성을 상징한다.

지리산은 이런 남명이 궁극적으로 추구한 도덕적 목표였다. 벼슬을 하던 부친을 따라 각지로 옮겨다니던 그는 30세가 되자 처가가 있는 김해에 정착한다. 숙부가 기묘사화에 목숨을 잃고 부친이 관직을 잃자, 오직 권력에만 눈이 먼 자들이 조정에 가득한 것을 본 남명은 학문에만 뜻을 두기로 하고 자신만의 공부를 시작한다. 아무리 지식이 많아도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것이다. 그러던 그는 지리산을 만나면서 더욱 깊고 높아졌다. 지리산에 매혹된 그는 장년 시절 10번 이상 지리산을 오르내렸다고 한다. 환갑이 지나자 아예 천왕봉이 잘 보이는 자리에 터를 잡고 매일 지리산을 거울삼아 사색하고 성찰한다. 그리하여 산천재는 남명의 사상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곳이기도 하다.

하늘이 요동쳐도 꿈쩍도 하지 않는 지리산을 닮고자 했던 그의 기상이 어느 만큼이나 높고 강직했는지, 산천재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며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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