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의 산] (1) 지리산…산청군 삼장면 새재마을을 가다
한국전쟁 전후 배고픈 시절 먹고살려 산에 깃든 사람들 "자기만 부지런하면 안 굶죠

산청군 삼장면 새재마을은 아마도 지리산 경남권역에서 가장 높은 자연마을일 것이다. 대원사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마지막에 있는 마을이다. 지도를 보니 마을 꼭대기에 있는 집이 해발 730m다. 20가구 채 되지 않는 이곳에는 거의 평생을 지리산에 기대 사는 이들이 많이 산다.

민박을 치는 송우점(84) 할머니가 생초면에서 새재 골짜기에 들어온 게 한국전쟁 직전의 일이다. 당시는 마을이랄 것도 없이 골짜기마다 숯을 굽는 사람들이 움막을 짓고 살았다. 지금 새재마을이 있는 골짜기에는 할머니 식구가 유일했다. 그러다 하나둘 사람들이 깃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숯 굽는 일을 했다. 때로 약초를 캐서 부부가 함께 덕산까지 걸어가서 팔았다. 새벽에 출발하면 오전 11시나 돼야 시장에 도착했다. 약초를 팔고 보리쌀 몇 되를 사서 다시 돌아오면 한밤중이었다.

▲ 산청군 삼장면 새재마을 아낙. 지리산에서 뜯은 나물을 계곡 물에 씻고 있다. /유은상 기자

"호랭이(호랑이)가 동네 개처럼 흔하던 때라, 아이고 그때는 목숨 떼 놓고 살았어. 호랭이가 잡아 무면 고마 잡하 멕히는 기고. 이 골짝에도 호랭이가 목숨을 너이나(4명이나) 데꼬갔어. 지금은 호랑이가 한 마리도 없어. 곰도 막 버글버글하드마는 오드로(어디로) 다 갔는지 없어."

숯을 굽고 밭을 일궈 농사도 짓고 약초도 캐서 팔면 그럭저럭 먹고살 만했다. 하지만, 나이 일흔에 돌아가셨다는 할아버지는 노름이 심했다. 그렇게 소 3마리를 잃었다. 그래도 지리산에 기대 억척같이 살았다.

새재마을서 민박을 치는 송우점 할머니. /유은상 기자

"말도 못하지, 참, 말도 못해. 지금은 산나물 쳐다보기도 싫어. 그걸로 배를 채아난께. 그래가 먹고살았다."

사과 농사를 짓는 김복석(67) 씨는 한국전쟁 직후에 아버지를 따라 새재마을에 들어왔다. "처음 들어올 때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전쟁 이후에 못 먹고 살 때, 그래도 여기는 하루 벌이가 되니까. 이 골짝만 해도 100집 넘었을 걸요."

사과농사를 짓는 김복석 씨. /유은상 기자

여전히 숯을 굽는 사람들이 많던 시절이다. 더러 큰 나무를 베어 팔기도 했다. 농사를 짓는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나무를 하도 베어내서 입산금지령이 떨어졌다. 많은 이들이 먹고살 길을 찾아 마을을 떠났다. 김 씨도 잠시 지리산을 떠나 공장 생활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곧 지리산으로 돌아왔다.

"지리산은 자기만 부지런하면 절대 안 굶어요. 뭘 해도 할 게 있습니다. 약초를 캐도 되고 열매를 따도 되고. 지리산은 어머니 같은 산이지요. 공기도 좋고, 물도 맑고, 그러니 이 골짝 안 삽니까. 밖에 나갔다가 이 골짝 들어오면 마음이 푸근해져요."

지리산 경남권역에서 가장 높은 자연마을인 새재마을.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한 집들이 남아 있다. /유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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