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형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며칠 전에 위독하다고 하셨다. '가 봐야지' 하는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며칠 후에 장례식장에서 자형을 만나야 했다. 죄인이 된 듯, 늙은 누나의 얼굴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8시, 등교하는 아이들을 챙겨 집을 나선다. 오라는 곳은 별로 없지만, 갈 데도 많고, 주어진 일은 별로 없지만, 저질러놓은 일은 산더미다. 피곤에 지쳐 졸린 눈을 비비다 선잠에 들 때면, 꼭 전화가 울린다. 젠장. 머피의 법칙은 이럴 때 꼭 들어맞는다. 온갖 스팸 전화도 한몫을 하지만, 중요한 전화도 꼭 이 순간에 울린다. 어느새 선잠도 달아나버린다. 평균 통화 시간 30초. 내게 전화를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이렇게 묻는다. "바쁘시죠? 통화할 시간 됩니까?" "네, 별일도 없는데, 시간 남습니다." 온 정신을 쏟으며 몰입한 순간에도 전화가 온다. 하지만 나는 늘 한가하다고 말한다. 하릴없이 시간을 보낼 땐 오히려 내가 안절부절못한다. 사방으로 전화로, 문자로 연락을 한다. "아이쿠! 바뿐 니가 우짠 일로 연락을 다하고?" "나야 늘 노는데, 뭐. 바뿌제?" "바뿔 게 뭐 있나? 이야기해라."

언제부턴가 '바쁘지?'가 인사말이 되었고, '바쁘면 좋은 거야'라는 말은 위로 겸 격려의 말이 되었다. 바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한가하면 이상한 놈으로 여겨지는 세상에 살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안일한 생각만으로 살아간다면 금방 타인과의 경쟁에 뒤처질 것이라며 겁을 먹고 살고 있다. 공부도 남보다 잘해야 하고,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고 믿고 살아간다. 이제는 취직보다는 창업이며 새로운 일을 만들어야 한다며 타인과의 창조성에서조차 경쟁한다. 남보다 돈도 많이 벌어야 한다. 결혼도, 자식도 모두가 남보다 낫길 바란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치열히 살아야 한다. 그렇기에, 시간을 분과 초로 나누고, 그 사이를 왕복달리기하며 살아야 한다. 노동시간과 학습시간도 단연코 세계 1위다. 바쁘게 사는 이들이 능력자로 여겨진다. 자연스레 바쁘게 사는 인생이 멋진 인생이며, 타인의 부러움을 사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다. 성공의 1만 시간 법칙, 일심동체 스마트폰. 모두가 시간의 올가미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대인의 아픈 단상이다. -"바뿌제? 바뿌면 좋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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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발달의 대혁명은 '쉼'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쉼'은 '머무름'이란 의미요, '심심함'을 의미한다. 심심한 아이가 상상도 못한 신기하고 새로운 놀이를 만들 듯, 심심한 사람은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일과 문화를 만든다. 몰입의 순간에서 잠시 벗어나 또 다른 자신의 세계에서 쉼을 찾은 사람들은 인류 발달의 혁명을 이끌어왔다. 아인슈타인이 차를 마시고 길을 걷다 묵혀둔 고민을 해결했듯, '쉼'은 '창조'라는 말을 쉬이 설명한다. 노곤한 오후의 낮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여유, 길을 걷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마법의 순간을 만나곤 한다. 꼬였던 생각도 한 가닥씩 풀어지고 엉겼던 앙금도 쉬이 풀어진다. 이제 시를 음미하듯, 우리 인생에서 잔잔한 '쉼'의 시간을 음미해보면 어떨까?

/장진석(아동문학가·작은도서관 다미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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