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주인 학생이라 깨우쳐준 아이들…깨어있을 때 민주주의는 지켜지는 것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요즘처럼 이 말이 가슴깊이 다가올 때도 있었던가. 지난 10여 년 동안 '퇴행한 민주주의'와 '방전된 민주주의'를 더 이상 지켜볼 수 없었던 '깨어있는 시민'들은 마침내 촛불 광장으로 나왔다. 어느 국회의원은 "바람 불면 촛불은 꺼진다"고 빈정댔지만, 분노한 민중들의 촛불은 횃불로까지 번졌다. 마침내 국민의 요구에 따라 국회는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여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그야말로 '촛불혁명'이 시작되었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인용절차가 남아있어 촛불혁명은 현재진행형이다. 탄핵소추안에는 "박근혜 대통령은 직무집행에서 헌법과 법률을 광범위하게 그리고 중대하게 위배하였다"고 적시했다. 나열한 위법 행위가 무려 15가지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소추사유는 사실이 아니며 이를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청구는 각하 또는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준엄한 '촛불의 명령'을 거부한 것이다.

이를 두고 국민의 분노는 다시 들끓고 있다. 초중고 학생들도 다 아는 사실을 대통령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고 나서니 이 일을 어쩌면 좋지? 나도 학생들 앞에 서기가 부끄럽고 민망해진다. 이런 현상을 우리 아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하지? 그냥 입 다물고 침묵하라고? 어린 아이들은 몰라도 된다고? 아이들은 벌써 다 알고 있다. 어른들을 향하는 아이들의 조롱 소리가 귓전을 맴돌아 말 그대로 '자괴감'이 든다.

사실 이번 촛불혁명의 신선한 충격은 초중고 학생들의 자유발언이었다. 교실에 갇혀 지내던 어린 학생들까지 광장으로 나와 외치는 '박근혜 퇴진' 주장은 교육자로서 내 삶을 깊이 성찰하게 했다. 대통령도 퇴진하라고 요구하는 아이들이니, 앞으로 행여 교장으로서 나도 잘못하면 언제든 '교장 퇴진'을 요구하는 것쯤이야 쉬운 일일 테다. 그래, 나도 '탄핵' 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겠다.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듯이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다. 교사는 학생을 섬기는 머슴이요, 교장은 학생과 교사를 함께 섬기는 '상머슴'이다. 이번 촛불혁명 과정에서 이 사실을 분명히 증명해준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고맙고 자랑스러운가!

짐작했듯이 촛불혁명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어쩌다가 우리는 "이게 나라냐"는 절망의 피켓을 들 수밖에 없단 말인가? 온갖 꼼수와 잔재주를 부리며 국민을 우롱하는 정치 경제계 무뢰배들의 저 뻔뻔함을 언제까지 다시 봐야 한단 말인가? 언제까지 속고 또 속아야 한단 말인가? 이런 허망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계속 촛불을 들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절체절명의 과제는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성하여 민주사회의 '시민성'을 함양하는 일이다. 우리는 이번 촛불혁명을 통해서 '사람에서 시민으로' 깨어나는 제2의 탄생을 경험하고 있다.

여기서 '시민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선 각자 각자가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깨어나는 일이다. 그런 다음 그 주인들이 연대하여 조직된 힘을 표출할 때 민주주의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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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民主)'를 문자 그대로 풀어보면 백성(民)이 주인(主)이란 뜻이다. 이때 '주인 주(主)'자는 왕(王)자 위에 점(′) 하나를 눌러 찍은 모습이다. 주인 된 삶이란 '왕을 점 하나로 찍어 누르는 일'이다. 그 어떤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사람에서 시민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온 '깨어있는 시민'은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를 지키는 파수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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