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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32) 마침내 산티아고에

아르수아∼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40㎞
'내가 해냈다'쏟아지는 눈물…그간 길에서 지나친 사람들과 얼싸안고 감동을 나눕니다

박미희 webmaster@idomin.com 2016년 12월 19일 월요일

순례길의 끝이 코앞에 있어요

거의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일어나 평소와 다름 없이 준비를 합니다. 긴 길을 걷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아요. 그동안 눈뜨면 습관처럼 했던 행동들이 오늘은 의식을 치르는 것 같습니다. 바셀린을, 선크림을 더욱 꼼꼼히 발라봅니다. 드디어 친구들도 준비가 끝났고 우리는 어두운 거리로 출발을 합니다. 날이 밝아지고 오늘이 거의 마지막인데 저는 앞만 보며 빨리 걷는 게 싫었어요. 일행은 먼저 가라고 하고 혼자 천천히 걷습니다. 친구들은 저만치 가 있을 테지만 산티아고에 있는 알베르게(순례자 숙소)에서 만나기로 했으니 걱정은 없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며 음악도 듣고 막바지 카미노를 충실히 느끼며 걷습니다.

숲길을 지나고 산길도 지나는데 혼자서 거꾸로 걷는 사람이 있네요. 오늘이나 어제쯤 산티아고에서 출발했을 터. 대부분 산티아고를 목표로 그곳을 바라보며 걷는데 그곳에서 출발하는 사람은 어떤 목표로 걷는 것일까요? 거꾸로 걷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더욱 외로울 거고 거기다 해를 마주 보며 걷는 것이 고역일 텐데요. 이런 어려움을 통해 뭔가를 깨달으려 하는 걸까요? 아무튼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저도 스틱에 힘을 줍니다.

몬테 도 고소를 지나 마침내 도착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표지판 앞에서.

몬테 도 고소(Monte do Gozo)에 도착을 했어요. 간이 바르에 앉아 있는데 많은 사람이 그곳을 지나쳐 산티아고를 향해 가고 있더라고요. 아직 시간도 이르고 바로 코앞에 산티아고가 있는데 나도 그냥 산티아고에 갈까 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갑자기 가슴이 두근두근 왠지 오늘 가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막 들데요. 빨리 도착하는 것이 아쉬워 천천히 음미하면서 왔는데, 이제 얼마 남겨놓지 않았는데,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왜일까요? 친구들에게 산티아고에서 기다리겠다는 문자를 남기고 언덕을 걸어 내려갔습니다.

산티아고를 알리는 표지만

언덕을 내려가자 얼마 안 있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란 빨간색 표지판이 서 있었어요. 내가 해냈구나 하는 마음이 들며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누군가 곁에 있었으면 서로 얼싸안고 울음을 터트렸을 텐데 혼자서 이 감동을 느끼기에 너무 안타까웠어요. 후회도 되기 시작했어요. 친구들이랑 함께 올걸! 친구들이랑 함께 이 감격을 느꼈어야 하는데 너무 아쉽더라고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너 참 잘했어 정말 대단해, 저 자신에게 칭찬을 해 주었지요. 영어도 할 줄 모르고 여행경험도 별로 없는 내가 10㎏ 정도의 배낭을 메고 800㎞를 그 많은 사람과 어울려 걸었는데 왜 대단하지 않겠어요.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 다와가나 봅니다. 오브라도이 광장에서 바라본 산티아고 대성당은 실망~! 하필 공사 중이라서 본래의 위엄은 다 볼 수 없었어요. 아쉽긴 하지만 이곳을 향해 그렇게 먼 길을 걸어왔다고 생각하니 다시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저처럼 생장피드포르에서 시작해 걷는 사람도 많지만 중간에 있는 대도시 팜플로나, 부르고스, 레온 같은 곳에서 출발하는 사람도 많아요. 하지만 처음부터 걸어온 사람이랑은 급이 다르지요! 흠흠~!! 끝까지 배낭을 메고 걸어서 완주한 사람, 배낭을 부쳤던 사람, 버스 타고 건너뛴 사람, 중간에 출발한 사람 등, 각자 느끼는 성취감도 다르겠지요? 예전 중세의 순례자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지금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이곳까지 걸어왔던 순례자들은 그 감동 또한 지금의 몇 배가 되지 않았을까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중심가, 멀리 순례자들의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이 보인다.

사람들을 헤치고 알베르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가게에 들어가 알베르게를 찾는다고 하니 한쪽을 가리키며 가 보라고 하더군요. 그쪽으로 가니 알베르게가 보여요. 물론 사립이죠. 다리도 아프고 너무 지쳐서 다른 곳을 찾을 엄두도 나지 않았어요. 일단 들어가니 깨끗하고 자그마한 알베르게였어요. 여태 7~8유로의 숙소에서 묵었는데, 여긴 무려 16유로, 거기다 2층 침대에 위층을 배정받았지 뭐예요. 하는 수 없지요. 그래도 시트도 깨끗하고 예전의 알베르게랑은 좀 다르긴 해요. 짐을 풀고 씻고 나니 살 것 같네요.

몸은 피곤하지만 누워 있기는 싫었어요. 나갔죠. 내일 친구들이 오면 순례자증 받으러 가려고 어디에 사무실이 있는지 알아보고 성당 주변도 살펴보고 시내를 거니는데 그동안 길에서 보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는 거예요. 만나자마자 서로 끌어안고 감동을 나눕니다. 그동안의 노고를 서로 알기 때문이죠. 이 감동을 서로 알기 때문이죠~! 만나는 사람마다 저를 안고 빙빙 도는 바람에 오늘 여러 번 돌았지 뭐예요. 동양에서 온 조그만 여자가 대단해 보였나 봐요.

막상 가까이 가본 산티아고 대성당은 공사 중이라 위엄을 느끼기 어렵다.

다들 정말 기쁘게 반겨주는데 그 감동 또한 정말 크더라고요. 만나는 사람마다 선물이라며 태극 배지를 나눠주었어요. 다들 얼마나 감동하는지 오히려 제가 미안할 정도였어요. 혼자이긴 해도 외롭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함께했더라면 더 좋았을 테지만, 먼저 오기를 잘한 것 같아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공연도 보고 이것저것 먹어도 보고 숙소로 돌아왔는데 잠이 오지를 않아요. 밖에서 요란하게 음악 소리가 들리는데 잠이 올 리가 없죠. 그렇지만 알베르게이다 보니 문 닫는 시간이 10시예요. 막 순례를 끝내고 즐기려는 사람들에게 통행금지 10시는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요? 그냥 잘까 하다 관리인에게 나갔다 오면 안 되는지 물으니 키를 주며 갔다 오랍니다. 오예~! 역시 용기를 내면 된다니까~.

이곳저곳에서 재즈, 개그, 록공연이 펼쳐지고 나도 그들과 동화되어 함께 즐기다가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관리인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잠을 청해 봅니다. 내일 아침에 함께 다니던 친구들이 산티아고에 도착한다고 하니 마중 나가려고요.

산티아고 중심가에서는 순례를 끝낸 사람들을 위한 다양한 공연이 밤낮으로 펼쳐진다.

/글·사진 박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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