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바래길에서 사부작] (24) 다시,남해 바래길에 어서 오시다

처음부터 한 석 달까지는 갈 때마다 미칠 듯이 좋았다. 이후로는 가끔 미칠 듯이 좋았다. 이제는 그저 편안하다.

1월 시작한 남해바래길 연재가 1년 만에 마무리됐다. 걷다가, 걷다가, 어느덧 남해군을 한 바퀴 돌았다. 계산상으로 10개 코스, 132㎞, 45시간이다. 같은 코스를 두 번 걷기도 하고, 마을 고샅까지 훑고 다녔으니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길고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여기에 외전 형식으로 바래길이 나 있지 않은 곳의 길도 이어서 다녔다. 대부분 평일에 걸었으므로 바래길 위에 혼자인 경우가 잦았다. 하여 괜히 힘들고 지친 날들도 많았다. 그럼에도, 남해바래길을 걸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직은 때 묻지 않은 정겨운 길과 그 너머 푸른 바다를 좋아하는 이라면 말이다.

마지막 편을 빌려 바래길 위에서 들었던 시원섭섭한 마음을 풀어본다.

◇보물섬 800리길 = 보물섬 800리길이라는 게 있다. 이는 현 박영일 남해군수의 핵심공약이다. 바래길이 걷는 길이라면 800리길은 자동차로 남해섬을 한 바퀴 도는 길이라고 보면 된다. 남해군 해안선 총길이가 302㎞로 약 800리다. 바닷가를 따라 나있는 77번 국도. 1024번 지방도, 7번 군도, 3번 군도와 마을 해안도로를 이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서면, 남면, 미조면, 창선면 10개 읍면에 '800리 역'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역에는 군민가게(직거래장), 특산물판매소, 우리읍면문화역사관, 소공연장, 체험장, 간이슈퍼, 전망타워, 교각, 관광객편의시설 같은 게 들어선다. 4년간 200억 원 정도 되는 돈이 드는 관광인프라구축 사업이다. 주민들에게 소득이 되도록 한다는 게 중요한 목표다.

그럼 바래길은 무엇이 되느냐고 할 수 있는데, 남해군에서는 넓은 의미에서 바래길도 보물섬 800리길에 포함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한다. 바래길을 걸어보면 대중교통이나 편의시설이 불편한 게 사실이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바래길 본연의 모습은 그대로 유지되길 바란다.

▲ 바래길 걷기를 마무리 짓는 지금, 이제 이곳이 그저 편하다. 바래길 바닥 곳곳에 있는 표시. /이서후 기자

◇아쉽습니다 = 넓은 의미로 보면 바래길 보수 정비도 보물섬 800리길 사업이라고 볼 수 있겠다. 관련 예산에서 조금만 떼어내어 바래길에다 썼으면 좋겠다. 그나마 사람들이 자주 다니는 코스는 괜찮았다. 하지만,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곳은 한여름 풀이 무성하게 자라 길을 덮거나 바래길 표지판이 땅에 쓰러져 있거나 하는 곳이 있었다.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이 때문에 길이라도 잃게 되면 난감하다. 많은 일이 필요한 게 아니다. 그저 풀이나 좀 베고, 안내판을 한 번씩 제대로 고치면 된다. 많은 예산이 필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현재 10개 코스가 열려 있다. 하지만, 아직 표지판이 없는 코스도 몇 개 있다. 이왕 시작한 바래길이니 코스 조성을 완성했으면 좋겠다. 애초 계획은 14개 코스인 걸로 안다. 이참에 아예 14개 코스를 모두 개설하는 것도 좋겠다. 남해섬을 걸어서 한 바퀴 연결하는 코스를 완성했다는 것만 해도 보물섬 800리길과 더불어 훌륭한 군정 업적이 될 것이다.

다니다 보니 남해 구석구석 괜찮은 게스트하우스가 적지 않았다. 이들 게스트하우스는 저렴하면서도, 따로 온 여행자들끼리도 어울릴 수 있어 젊은이들을 남해로 불러들이는 유인책이 될 것이다. 800리 역에 숙박시설도 짓는다면 이들 게스트하우스와 함께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만하다.

◇고맙습니다 = 바래길에서 만난 이들은 외로운 나그네를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점심때 길을 걷다가 만나 자기 집으로 가서 밥을 먹자는 어머니, 무심히 길을 걷는데 새참 먹고 가라며 손짓하던 논두렁 어르신들, 낯선 이에게 대뜸 집안 구경을 시켜주시던 미국마을 아주머니, 더운 날 시원한 음료수를 건네고는 손수 지도를 그려주시던 할아버지, 추운데 마시고 가라며 믹스 커피를 건네던 펜션 주인들, 등등. 이들 덕에 바래길은 마냥 따뜻한 곳이었다.

항상 남해에 언제 오느냐, 오면 연락하라며 안부를 묻던 문찬일 선생님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연락을 잘 드리지 않아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마찬가지로 남해에 오면 꼭 연락하라던 남해군청 이경재 주무관께도 죄송한 마음이 앞선다. 필요한 거 있으면 연락을 하라고 했지만, 딱히 필요한 게 없기도 하고, 괜히 신경쓰이게 할까 봐 연락을 잘하지 못했다. 그래도 늘 잘 다녀갔는지 신경을 써 주는 분이다.

무엇보다 '남해바래길 사람들' 하진홍 대표와 백상연 사무차장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 바래길을 취재하면서도 이분들을 찾아뵙지 않았다.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에도 한두 번인가 스쳐 지나가듯 들렀을 뿐이다. 하지만, 이분들을 포함한 바래길 사람들이 언제나 바래길을 운영·관리하는 데 애쓰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이 부분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남은 일들 = 가능하면 바래길 주변으로 많은 마을을 소개하려 애썼지만, 남해군에 있는 전체 마을을 다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곳만큼은 꼭 소개하고 싶었는데, 못한 곳이 있다. 남해읍이다. 대중교통으로 왔다면, 남해읍은 남해 여행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다. 도심이 작긴 하지만 브랜드 카페나 프랜차이즈 빵집까지 있을 건 다 있다. 남해시장에서는 특산물을 살 수도 있고, 싱싱한 회나, 고소한 생선구이, 시원한 물메기탕을 먹을 수도 있다. 아담하고 고즈넉한 남해성당은 뜻밖에 가볼 만한 곳이며 그 근처 남해향교도 둘러보면 좋다. 특히 남해군청이 참 예쁘다. 군청은 옛 동헌 자리에 그대로 들어서 있다. 조선시대 고지도에 나오는 큰 나무가 아직도 군청 뜰에 살아있는데, 군청 건물과 어우러져 그 운치가 꽤 좋다. 하지만, 군청을 이전한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바래길을 다 걸었으니 남해 사투리로 '안녕히 가시다(가세요)'라고 인사하는 게 맞겠지만, 작별 인사는 하기 싫다. 언제든 마음이 내키면 찾아갈 곳이기 때문이다. 하여 마지막 인사는 이것으로 한다. 다시, 남해바래길에 어서 오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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