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 3·15민주묘지 내 3·15의거기념관 벽면에 걸린 박근혜 대통령 대형 전신사진이 계란과 케첩 세례를 받아 만신창이가 됐다. 박근혜퇴진경남운동본부 관계자들과 일부 뜻있는 시민들이 분노를 참다 못해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다. 충분히 예견됐던 사태다. 기념관 측이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터진 후 항의 여론에 밀리다 못해 한때 철거를 실행한 것은 다행이었으나 무슨 연유에서인지 다시 제자리로 원대 복귀시켰고, 그에 따라 비난의 목소리가 더욱 커졌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없어 뭔가 시민 차원의 대응법이 나올 것이라는 추측이 무성했기에 한 말이다.

박근혜-최순실게이트가 아니라도 3·15의거기념관에 전직이나 현직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야 하는 당위성은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하다 못해 민주화에 공헌한 대통령이라면 또 모를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나 역사적 검증이 없는 상태인 현직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 관람객의 시선을 빼앗는 것은 올바른 사관이 아닐뿐더러 기념관의 정체성과도 어긋난다. 민주성지에 반민주적 요소를 접목시킨다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겠는가. 이 나라 민주주의가 위협당하는 위기의 고비마다 분연히 일어서 정의를 지켰던 이 지역 시민정신이 바랠 것임은 자명하다.

민주묘역과 기념관 운영을 책임진 관리소가 그 정도 인과를 모를 리 없고 따라서 가볍게 처신할 리도 없다는 셈법이 나올 만한데 왜 사진 부착을 고집할까. 그 배경은 오직 하나일 것이다. 3·15민주묘지는 국립이기 때문에 보훈처 감독을 받고, 보훈처는 정부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탄핵으로 직무는 정지됐지만 그래도 대통령이다. 사진을 제자리에 도로 갖다 붙인 것은 아직 남아 있는 한 가닥 권력의 잔재를 의식한 결과물이다. 청산되어야 마땅한 권위주의가 민주화 상징인 3·15민주묘지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이다.

관리소 측은 이 지역 시민들의 자존심을 생각해서라도 즉각 사진을 떼어내고 이후 다시는 그러한 정치적 선정주의에 장단을 맞추지 말아야 한다. 계란과 케첩 세례가 의미하는 시대적 소명이 무엇인가를 통찰하는 노력을 곁들이면 길은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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