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달군 열아홉 살 김다운 양의 외침…진주 시국대회에서 자유발언 "대통령 하야하면 다 해결되나"
"가정에도 학교에도 회사에도 비민주적인 일 넘치는데…"
"세상을 바꿔야 한다면서 자신을 바꾸려고는 하지 않아"

최순실 사태로 시작한 촛불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이끌어 냈다.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란 말이 새삼 주목을 받았다. 따지고 보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기에 오늘과 같은 사태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할 것인가가 촛불 이후 과제로 남는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논의는 대부분 체제(시스템) 교체에 집중되어 있다. 개헌 과정에 시민이 참여하자거나, 국회 대신 시민의회를 구성하자는 주장들이 대표적이다.

◇19살 청소년의 민주주의 발언 = 크게 주목 받지는 못하지만, 이런 논의와 전혀 다른 방식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지난달 27일 진주 시국대회에서 19살 청소년 김다운이라고 이름을 밝힌 발언자의 영상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많이 공유가 됐다.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문제의 책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싫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이 싫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면 제가 직면한 가정과 학교와 노동의 문제가 해결됩니까? 제가 행복한 가정에서 살 수 있고 치열한 경쟁이 아닌 배움의 즐거움을 느끼며 공부하고 기계가 아닌 사람답게 노동을 할 수 있습니까? (중략) 제 삶의 문제가 박근혜 대통령 한 명의 책임입니까? 최순실 한 명의 잘못입니까? 저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박근혜, 최순실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부모님, 반장, 친구들, 선생님, (아르바이트) 직장 사장, 그리고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박근혜, 최순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내 안의 박근혜를 발견하고 내 옆의 최순실에 분노했으면 좋겠습니다."

12일 만난 김다운 양. "각자의 자리에서 이뤄내야 할 민주주의가 있다"고 했다.

이날 김다운 양의 이야기는 다른 발언자들과는 사뭇 달랐다. 요컨대 이렇게 모여서 정치인들의 비민주성을 비난하는 우리는 과연 일상 속에서 민주적으로 살고 있느냐는 것이다. 많은 이가 이 지적에 공감하고 있다. 이 동영상에는 "우리 사회 문제점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현실을 아주 잘 인식하고 있다", "내가 본 발언 중 최고다, 나부터 이 기회에 반성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일상적으로 최순실 사태를 겪었어요" = 지난 12일 김다운 양을 만났다. 알고 보니 그는 지난해 4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당시 진주 시내 중고등학교 앞에서 "학교에는 진정한 배움이 없다"는 내용의 팻말 시위를 벌여 화제가 됐던 이였다.

"학교를 그만둘 때는 민주주의, 뭐 이런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이건 아니다 싶어서 그런 거고요. 요즘 사람들이 하도 민주주의, 민주주의 하니까 저도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을 해봤어요. 최순실 사태와 같은 일들이 우리 일상적인 삶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사람들이 최순실만 욕하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나 최순실에 분노하는 것도 중요해요. 그렇지만, 저는 이런 이야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상 속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은 다운 씨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어쩌면 그는 불합리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지닌 것도 같다. 11월 26일 발언 영상에서 다운 씨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 절대적인 명령을 하는 어머니, 학생 전체의 의견을 묻지 않고 친한 친구의 의견만 듣는 초중고등학교 반장들, 노동자와 노동법보다 돈과 상품을 더 우선시하는 사장이야기를 한다. 사람들이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일상 속에서는 전혀 실현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지난달 26일 진주 시국대회에서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는 발언을 하는 김다운 양. /김다운 페이스북 영상 캡처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사태는 제가 그동안 교실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겪어온 일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아요.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사람들이 자신을 바꾸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분명히 각자의 자리에서 이뤄내야 할 민주주의가 있다고 생각해요."

◇삶의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 = 장은주 영산대 자유전공학부 교수(참여사회연구소 부소장)는 김다운 양의 발언을 두고 "단순히 정치적 지배의 형식이 아닌 삶의 양식으로서의 민주주의의 본성과 필요를 잘 드러낸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촛불과 민주주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짚었다는 이야기다. 이어 장 교수는 "단순히 민주공화국을 회복하고 시민적 주권성을 제도화하는 정도를 넘어, 우리의 일상 자체를 민주적으로 변혁해 낼 수 있어야 한다는 과제를 제시했다"고 강조했다.

87년 6월 항쟁 이후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 하지만, 최순실 사태에서 보듯 여전히 우리 사회는 비민주적인 일들로 고통을 겪고 있다. 오히려 절차적 민주주의마저 퇴보할 지경이다. 장 교수는 '민주주의라는 삶의 양식과 그 인간적 이상 : 한국 민주주의의 민주화라는 과제와 관련하여'(사회와 철학 27집, 2014)란 논문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인간적 삶의 양식, 곧 모든 성원이 인간적 잠재력을 실현할 수 있도록 그 존엄의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는 도덕적 목적을 중심에 가진 삶의 양식 그 자체다. 지금 우리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는 바로 그와 같은 이상의 사회적 실현의 실패가 낳은 귀결이며, 그 극복을 위한 기획 역시 단순히 좀 더 완전한 정부의 형식이나 더 나은 대의민주주의 체제의 확립 같은 것만을 위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그 위기는 단순히 좁은 의미의 정치적-제도적 차원의 개혁을 넘어 전체로서의 삶의 양식 그 자체를 '인간화'할 수 있을 때에만 제대로 극복될 수 있다."

이런 맥락 위에 김다운 양의 고민이 올려져 있다. 하지만, 다운 씨는 자신이 어떤 이론이나 절차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 당장, 각자의 자리에서 바로 우리가 바꿔내야 할 현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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