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노인복지관 실버극단서 직장인·어린이예술단까지…무대서 끼 발산하는 '이웃들'
도전·자존감·열정 일깨워줘 연습공간 부족…공동과제 행정·재정적 지원 방안 필요

#1. 지난 7일 김해시노인복지관에서 평균연령 71세 할머니들이 모인 실버극단이 무대에 올랐다. 실버극단은 지난 11년간 해마다 연극발표회를 열고 있다. 이번 공연은 4월부터 7개월이 넘는 기간 연습한 성과물로, 극단은 <배비장전>을 선보였다.

#2. 13일 오후 7시 30분 창녕문화예술회관에서는 어린이들이 모여 공연을 선보인다. 개똥이어린이예술단은 창녕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우포늪 초록걸음 창작 뮤지컬 <나무 할아버지>를 무대에 올린다. 이번 뮤지컬은 동시집 <우포늪엔 맨발로 오세요>를 기념해 만들어진 공연이다.

#3. 경남A&B오케스트라가 지난 7일 창단 세 번째 정기연주회를 열었다. 경남 A&B오케스트라는 지난 2014년 7월 직장생활과 취미 예술 활동을 병행하는 직장인으로 결성된 순수 직장인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다.

공연장을 사용하는 사람은 대다수가 공연전문가이다. 하지만 이 문이 점차 개방되고 있다. 이제는 비전문가들에게도 공연장이라는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비전문가들이 공연무대에 올라가면서 전문인만의 영역을 벗어나고 있는 것. 노인과 초등학생, 직장인들이 모여 만든 무대는 공연에 대한 이해를 돕고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데 충분하다.

◇내 나이가 어때서 = 지난 7일 김해시노인복지관에서 실버극단이 선보인 연극발표회는 오승근 노래 '내 나이가 어때서'가 떠오르는 시끌벅적한 무대였다. 할머니들은 대사를 실수하기도 했고 동선파악에 실패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오히려 그런 실수가 무대를 더 즐겁게 만들었다. 대사를 해야 할 타이밍을 놓쳐도 마냥 즐거운 무대로 관객과 무대에 선 이들이 하나가 됐다.

<배비장전>에 기생 역으로 등장한 박문자(81) 씨는 "11년째 무대에 오르고 있는데 연극을 하면서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게 즐거움으로 다가왔다"며 "공부도 되고 화려한 옷을 입으며 늙지 않게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는 13일 창녕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창작 뮤지컬 〈나무 할아버지〉를 선보일 개똥이어린이예술단. /개똥이어린이예술단

실버극단 반장 박도연(71) 할머니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면서 더 다양한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다.

"준비기간은 많이 길었는데 이번 발표회를 끝으로 공연 막을 내린다는 점에서 안타깝죠. 공연을 좀 더 간소화하고 축소하더라도 더 다양한 공연장에 서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무대에 오르며 '우리'를 배우다 = 김해시노인복지관에서 해마다 공연을 준비하면서 한 단원은 한글을 깨쳤다. 이번 공연에는 개인 사정으로 오르지 못했지만 몇 해 전 그가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을 때는 크게 감동했다.

공연 강사로 함께한 김수현 사회예술강사(극단 아시랑 공동대표)는 "어르신의 자신감, 자존감이 높아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글도 배우며 새 삶을 살아가는 단원들이 있다"며 "몇 해 전 공연에 나선 할머니는 한글을 배운 뒤 무대에 올라 열연했다. 그 후 가족들이 꽃다발을 건네주자 눈물을 흘렸고 손주들에게 자랑스러운 할머니가 됐다는 점에 뿌듯해했다"고 말했다.

박도연 할머니는 "공동체 의식을 배우고 대인관계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된다"며 연극반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도와줬다며 행복해했다.

지난 7일 김해시노인복지관에서 복지관 내 연극반인 실버극단이 <배비장전>을 선보였다. /김해시노인복지관

창녕 개똥이어린이예술단 역시 이번 뮤지컬을 준비하며 초등학생들이 공동체의식을 알게 됨과 동시에 '나', '너', '우리'라는 단어에 대해 알게 됐다고 한다.

작곡가 겸 어린이예술단을 운영하는 우창수 씨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자신감이 붙었다"며 "무대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이해하게 되면서 공연이라는 것이 결코 멀리 있는 것이 아닌 우리가 향유할 수 있는 즐거움이라는 것에 공감하게 된 것도 순기능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전했다.

A&B오케스트라는 직장인들의 문화향유를 위해 구성된 순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지만 이제는 프로라 불러도 손색없는 실력을 자랑한다. 이들은 서울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제3회 생활예술오케스트라축제'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A&B오케스트라 관계자는 "직장인들이 무대에 대한 동경, 열정, 그리움으로 하나 돼 잠재된 끼를 발산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무대에 대한 갈망 = 연습공간에 대한 아쉬움은 전문적으로 공연을 하는 사람들과 비전문가 모두에게 공동과제로 남아 있다.

지역에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는 한 인디밴드는 "연습공간이 부족하고 공연을 할 공간도 적다. 이름 있는 뮤지션들은 언제든 대관을 통해 공연을 선보일 수 있지만 인디밴드나 비전문가, 인기 없는 공연팀은 여전히 사회적 약자"라며 야외무대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언급했다.

직장인들로 구성된 A&B오케스트라 공연 모습. /경남도민일보 DB

서울에서 활동하는 한 공연기획 관계자는 "지역이나 수도권이나 마찬가지다. 좀 더 무대가 관객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일정 부분 무대를 비전문가들에게 내놓는 게 방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행정적, 재정적 문제 때문에 무대를 빌려주려는 곳은 사실상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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