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길문화연대 구술 남해의봄날 엮음…'명품 예향 통영' 장인·문학·공연 지도로 엮어 시대와 예술, 전통과 추억 공유

지난달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 가는 해외여행이라 공부도 많이 하고 자료도 많이 구했다. 인터넷 서핑으로 얻은 자료도 많지만 피렌체라는 도시를 깊이 살펴보는 것이 여행의 목적이어서 책을 몇 권 참고했다. 서점에서 관련 책을 고르고 책을 읽으면서 피렌체라는 도시 하나를 두고 이렇게 다양한 책을 낼 수 있는 그 도시 역사와 문화의 다채로움이 부러웠다. 오늘날 제아무리 화려한 도시라 할지라도 관광지 몇 군데 소개하면 들려줄 이야기는 고갈된다. 인구 40만이 되지 않는 크지 않은 도시에 역사와 문화 예술이 받쳐주지 않으면 어림없는 이야기다.

<통영을 만나는 가장 멋진 방법 : 예술 기행>. 이 책을 읽으면서 대칭 선상에 놓고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통영이 그런 도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영 서피랑 일대 전경. /경남도민일보 DB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한양 사대부도 줄 서서 기다리게 만든 통영 장인의 솜씨'로 설명되는 '장인지도', '통영, 자다가도 달려가고 싶은 문학의 바다'라고 말하는 '문학지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바다의 땅에서 태어난 음악과 공연'을 보여주는 '공연지도'다.

"통영에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청마 유치환이 우체국 창가에서 건너편 수예점 일손을 돕던 시조시인 이영도를 바라보며 연서를 쓰고, 그곳에서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서점에 박경리가 책을 보러 들르고, 조금 더 걷다 보면 유치환의 작업실이 있어 시인 김춘수, 화가 전혁림, 작곡가 윤이상, 시조시인 김상옥 등이 모여 시대와 예술을 논하고 예술 운동을 펼쳤다."(p104)

두 번째 이야기 '문학지도'를 펼치면 가히 문학예술의 드림팀이고 르네상스다. 책을 앞으로 넘기면 "조선시대에 통영의 이름은 그 자체로 명품 브랜드였다"로 시작되는 '장인지도'가 펼쳐진다. 이름만 들어봤던 통영의 전통 공예품과 이것을 만들거나 만들었던 장인들 이야기가 있다. 통영 하면 나전칠기인데 한때 200개가 넘는 공방이 있었다. 칠기 외에도 갓, 두석, 발, 소반, 섭패, 누비 등 종류도 다양하다.

중요 무형문화재 99호 소반장 기능보유자 추용호 장인 이야기에서 책장이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나라 안에서 이름난 소목장이었다. 아버지는 이웃에 살던 고모부 윤기현(작곡가 윤이상의 부친)에게 소목을 배웠다. 그리고 그 아버지에게 잔심부름하면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운 것이 아들 추용호다. 스물넷에 아버지가 갑작스레 돌아가시는 바람에 일을 물려받았다. 그가 공방을 겸하며 살림을 살던 집은 할아버지 때부터 거주한 곳이다. 150여 년의 세월을 지켜오면서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 시절의 12공방을 계승해 그 원형을 지키고 있는 마지막 공방이었다.

그런데 통영시는 도로를 내겠다며 공방 철거를 예고하고 추용호 장인을 내쫓은 상태다. 문화재청이 보존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혀도 통영시 입장은 완고하다. 마음이 답답해졌다. 시내 도로 사정이 좋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을 것인데. 많은 시민도 공방 철거를 바라지 않는데.

책 속의 많은 지도를 살피다 보니 피렌체에서의 경험이 생각났다. 민박집에서 3분을 걸어가면 메디치 가문의 성당인 산로렌초가 나오고, 거기서 2분을 내려가면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피렌체 두오모)가 산 지오반니 예배당과 지오토 종탑과 함께 있다. 다시 3분을 걸어 내려가면 시뇨리아 광장에 베키오 궁전이 버티고 서 있다. 우피치 미술관과 함께.

통영을 여러 번 다녔어도 목적지 몇 군데만 충실하게 둘러봤다. 그곳이 통영 어디든 조금만 더 걸어가면 무엇이 있고 샛길로 난 작은 골목을 들어가면 또 다른 이야기를 간직한 곳이고, 고개를 들어 약간만 시선을 돌리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곳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흩어져 있는 정보를 모아 정리해 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 그럴 필요가 없다. 이 책 한 권 들고 통영 가자.

256쪽, 남해의봄날, 1만 5000원.

/이정수(블로그 '흙장난의 책 이야기'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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