얌전히 주차돼있는 줄 알았던 차가 긁혀 있을 때, 믿고 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을 때, 무방비 상태에서 누군가에게 맞았을 때. 이럴 때 나오는 감정은 '화'다. 반사적으로 할 수 있는 1차적 행동은 욕설, 고함, 주먹질 등이 있겠다. 분노를 표출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렇게 한다고 피해를 보상받거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오히려 상황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욱' 하는 순간 그런 계산 따위는 사치다. 화가 치밀어 올랐을 때 사태를 정확히 판단하고자 침착히 질서를 지키며 신사답게 대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국에서 여섯 차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큰 집회가 열렸지만 창원은 물론 전국적으로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없다. 누군가는 말한다. "이래서야 귓등으로라도 듣기나 하겠냐", "이러다 금방 사그라질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지나온 날들이 쌓여 벌써 두 달째다. 평화는 결코 연약하지 않았다. 집회 참가자들은 화염병 대신 촛불을 들었고 고함 대신 노래를 불렀다. 정치인에게는 계란 대신 문자메시지를 던졌고 경찰에게는 비난 대신 격려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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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조용한 힘은 수사 초기 최순실 긴급체포조차 하지 않던 검찰이 대통령을 '피의자'로 지목하도록 했고, 딴생각에 빠지려던 야당이 탄핵안을 발의하게 했다. 2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밖으로 불러낸 힘도 평화다. 유모차를 밀고 가족끼리, 친구끼리, 초등학생부터 80대 어르신까지 전 국민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 보이는 장을 만들었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애써 누르며 우아하게 집회하고 묵묵히 저항을 실천하는 국민. 그들은 꾸준하고 은근한 힘으로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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