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행동 어긋나면 생기는 화…근심·걱정 뽑아버려야 즐거움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생활을 꿈꾸며 산다. 바로 희망이다. 그런데 그 행복이라는 희망은 사람마다 생각하는 것이 모두 다르다. 행복이 다르므로 그것을 얻는 방법 또한 다르다. 흔히 등이 따뜻하고 배가 부르면 그것으로 만족하는 이도 있다. 또는 나물밥을 먹고 팔을 베고 누워 한잠 늘어지게 자는 것으로 행복을 삼는 이도 있다.

그러나 이 세계 전체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재산이 있고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고, 높은 관직에 있으면서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도 많다. 그러고 보면 행복이란 어떤 조건도 기준도 없는 것이고 스스로 행복을 느끼고 희망을 품으면 되는가 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것저것 피할 수 없는 온갖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 많은 일을 겪으면서 여기에 휘둘리고 저기에 이끌리고 하면서 인간이 본래부터 가진 위대하고 숭고한 대자유를 알지도 못하고 누리지도 못한다. 세상사와 인생사에서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던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방하착(放下着) 공부를 시 한 수를 통해서 잠깐이나마 흉내 내 보고 연습도 해봄으로써 이 추운 겨울날의 훈훈한 한 줄기 봄바람 같은 마음을 맛보게 되리라.

옛날 어떤 여종이 있었는데, 얌전하고 청렴하여 항상 주인을 위하여 보리와 콩을 관리했다. 그때 그 집에 있는 숫양이 빈틈을 엿보아 보리와 콩을 먹어 한 말쯤이나 축을 냈다. 그래서 그 여종은 주인에게 꾸중을 들었다. 그는 주인이 자기를 믿지 않는 것을 모두 저 양이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그는 양을 미워하며 막대기로 양을 쳤다. 그러자 양도 성을 내어 그 여종을 들이받았다. 이렇게 하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어느 날 여종이 빈손에 불을 가지고 있었다. 양은 그 손에 막대기가 없는 것을 보고 곧 쫓아와 여종을 들이받았다. 여종은 황급히 가졌던 불을 양 잔등에 던졌다. 양은 뜨거움을 못 견뎌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래서 그 불은 마을 사람들을 태우고 또 산과 들에까지 번져갔다. 그때 그 산에는 500마리의 원숭이가 있었는데, 불어오는 불길을 피할 수가 없어 한꺼번에 타 죽고 말았다. 여러 하늘은 그것을 보고 게송으로 말하였다. '성내어 서로 싸우는 그 사이에는 머물지 마라. 숫양과 여종이 싸우는 바람에 마을 사람들과 원숭이가 타죽었느니라.'

선과 악이 서로 등지고 말과 행동이 서로 어긋나면 거기서 화(禍)가 생기고, 원한이 더욱 무거워지는 것이다. 이것은 말은 쉽지만 행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강유(剛柔)가 중용을 얻으면 위순(違順)이 그 본성을 얻는 것이다. 비유하면 검(劍)을 만들 때 너무 강하면 부러지고 너무 부드러우면 굽어지는 것과 같다. 검을 부러지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주석을 섞어야 하고 검을 굽어지지 않게 하려면 반드시 금을 섞어야 한다. 왜냐하면 금의 성질은 강하고 주석의 성질은 부드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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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가 고른 것을 선(善)이라 하고, 머금은 성질이 화평한 것을 아름다움(嘉)이라 하는 것이다. 수행하는 사람이 근심과 걱정의 뿌리를 아주 뽑아버리면 즐거움의 뿌리와 서로 상응해서 고요히 이 세상의 변화를 허깨비나 아지랑이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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