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봄날 전라도 하루유람 어때요

봄날이다. 꽃 같은 나날들이다. 가끔씩 황사 바람이 불어 눈앞을 흐리게 만들지만 한 번쯤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멀리 떠나고 싶어진다. 왜 그럴까 생각해 봐도 별난 까닭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날마다 마주하는 쳇바퀴를 벗어나 새뜻한 풍경을 담고 싶은 게 아닐까.
섬진강은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며 흐른다. 강을 건너면 경관이 달라진다. 들판이 널러지고 산은 부드러워진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심술궂게 삐죽 삐친 게 경상도 산이라면, 어깨선을 숨기듯 곱게 드러내며 돌아앉은 게 전라도 산이다.
하지만 이번 길은 산에 오르려고 나선 것이 아니다. 남해고속도로가 나 있지만 순천을 지나 영암.강진까지 가는 데 줄잡아 4시간이 들고, 금강산.주왕산과 아울러 3대 바위산인 월출산(809m)은 또 4~6시간을 잡아먹기 때문에 당일 돌아오기는 버거운 것이다.
영암의 서쪽 끝 군서면 도갑사에 가 닿는다. 합천 황매산 아래 절터인 영암사지와 분위기가 닮았는데 국보 50호인 해탈문을 지나면 가운데 5층석탑이 서 있고 엄청 큰 돌을 파서 만든 석조(石槽)가 왼편에 있다.
대웅보전은 우람하고 앞뒤에 널려진 부재와 뒤쪽 절터는 시원스럽다. 왼쪽 등산길 따라 오르면 벌써부터 용수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쏟아낸다. 다리를 건너면 고려시대 미남인 석조여래좌상이 있는데, 이처럼 석가모니불을 모셔 놓고도 미륵전이라 한 것은 조금 우습다.
다시 내려와 널널한 법당 앞뜰을 거닐거나 도선국사 관련 전시관을 들러도 좋겠다. 하지만 더 나은 것은 명부전과 도선.수미비를 거쳐 억새밭까지 계속 발길을 놀리는 게 더욱 낫겠다. 왜냐면 아무리 좋은 절간이라도 이만큼 풍광이 빼어난 곳은 드물겠기 때문이다.
내딛는 발걸음을 돌려 무위사로 간다. 하지만 산을 즐기지 말랄 수는 없다. 그렇게 놓아두지도 않는다. 목포 앞바다로 뻗어나가다 멈춰선 월출산은 차지하는 넓이가 무려 42㎢. 영암에서는 그냥 고개만 들어도 바라보인다.
장흥을 거쳐 강진.영암으로 가는 길목에서부터 보이는 월출산은 말 그대로 수석 전시장이다. 차는 속도를 늦춘다. 산마루들은 옆으로 늘어서거나 앞으로 나란히 하면서 열병식을 한다. 벌린 입은 닫힐 줄 모르고, 조용한 가운데 신음에 가까운 탄성만이 들려온다.
알고 보면 더욱 아름답지만 모르고 봐도 황홀하다. 일본에 천자문을 건넨 왕인과 태조 이성계와 인연이 깊은 도선국사가 태를 묻은 곳이며 억새밭과 높다란 구름다리와 마애여래좌상(국보 144호) 따위를 품고 있기도 하다.
곳곳에 우거진 동백과 함께 산그늘마다 잠자리난초.끈끈이주걱.용담.땅귀개가 자라고, 잎이 지면 꽃이 나서 서로 그리워만 한다는 상사화(相思花) 꽃무릇도 숨기고 있지만, 이처럼 차를 타고 가면서 보는 것만으로도 절로 입이 벌어지는 게 월출산이다.
무위사는 월출산 동남쪽 강진군 성전면에 있다. 원효대사가 세웠고 도선국사가 도갑사와 함께 중건했다. 국보 13호인 극락보전은 건축년도(1476년 완공)가 뚜렷이 알려진 몇 안되는 건물이다. 맞배지붕이며 소박하고 간결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것으로 이름나 있다.
왼쪽 천불전 법당에는 조그만 부처가 가득하다. 명부전과 나란히 앉은 미륵전은 현판도 걸리지 않았는데 돌부처는 심술궂은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이다.
오른쪽으로 조금 기운 선각대사 변광탑비는 946년 세워진 뒤 1000년을 한 자리에 버티고 있어 절간의 예스러운 맛을 한층 높여준다. 그 사이 골짜기로는 동백 숲이 이어졌는데, 뚝뚝 소리를 내며 꽃송이가 통째로 지고 있다.




△가볼만한 곳 - 영랑생가.다산초당

영암과 붙은 강진은 영랑 김윤식과 다산 정약용으로 이름나 있다. 영랑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뚜렷하게 갈린다.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떠받드는가 하면 엄혹한 일제 시대에 “모란이 피기까지” 기다린 게 “찬란한 슬픔의 봄”밖에 되지 않았냐고 하는 이도 있다.
어쨌거나 읍내 군청 부근의 영랑생가에는 본받을 만한 게 있다. 자세한 설명이 바로 그것이다. 샘터에는 ‘마당 앞 맑은 새암을’이라는 작품의 글감이라는 안내판이 있고 장독대에는 “누나가 장독을 열 때 감나무잎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 ‘오매 단풍 들것네’ 속삭이자 ‘누이의 마음아 나를 보아라’라는 시를 지었다”고 적혀 있다. 얼마나 정다운가.
1808년부터 유배가 풀리던 1818년까지 정약용이 터잡고 살았던 다산초당은 도암면 귤동마을에 있다. 마을 뒷산이 다산이었으니 정약용의 호 다산(茶山)도 여기서 나왔다. 초당 좌우에 서암.동암이 있고 뒤편으로 약천.정석이 있다. 하지만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연지석가산(蓮池石假山)이라는 생각이 든다. 발아래 탐진강에서 바위를 주워와 만든 못이다.
골짜기를 흐르는 물을 대나무 대롱으로 받아 못을 채웠는데 지금도 옛적 그대로여서 지나는 이들은 목마르지 않아도 일부러 물을 받아 목을 축인다. 장방형으로 돌을 쌓고 가운데에다 돌산을 만든 것은 무슨 뜻이었을까. 둘레에다 배롱나무와 대나무까지 심어놓았다.
초당 뒤쪽으로 백련사 가는 길 또한 빼어나다. 1km 조금 못 미치는 길은 고개를 몇 개 넘기는 하지만 산책로에 가깝다. 다산이 귀양살이 당시 혜암 스님을 만나러 다니던 길이라고 한다. 길 따라 가면 우거진 숲을 만난다. 때로는 멀리 강진만 구강포 너른 갯벌과 바다가 보이기도 한다. 유배로 외로웠을 정다산이 두고 온 처자를 그리며 바라보았을 풍경이다.
백련사가 있는 만덕산은 동백 숲을 품고 있다. 숲은 또 부도비들을 안고 있다. 천연기념물151호인 이 숲은 저 유명한 고창 선운사 동백보다도 더 뛰어나다는 말을 듣는다. 나무 아래 들면 아직도 서늘한 느낌이 들며 여기서 몇 걸음 더 옮겨 절간에 들면 다시 너른 바다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찾아가는 길

경상도에서 생각하는 전라도는 멀기만 하다. 생각만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다. 영암까지는 줄잡아도 4시간이 걸린다.
대중교통은 좋지 않은 편이다. 마산.진주고속버스터미널이나 마산역.창원역.진주역 등에서 광주까지 간 다음 영암.강진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사나 백화점 등에서 모으는 관광여행에 많이 기대는 편이다.
마음대로 돌아다니려면 아무래도 자가용쪽이 더 낫다.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순천에서 빠져나와 국도 2호선을 따라 장흥을 거쳐 강진까지 온 다음 국도 13호선으로 바꿔 타고 성전면 무위사로 가면 된다.
무위사는 월출산의 동남쪽 끝이다. 도갑사는 여기서 영암읍내까지 갔다가 나주 가는 길을 버리고 목포 쪽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5.5km쯤 가다가 표지판을 따라 왼쪽으로 틀어서 3km 들어가면 된다. 문화재 관람료 1200원과 국립공원 입장료 1300원을 합해 1인당 2500원을 내야 경내에 들어갈 수 있다.

다산 초당에 가려면 강진 읍내에서 영암 말고 해남으로 가는 국도 2호선을 계속 타야 한다. 백련사 표지판을 지나 조금만 더 가면 된다. 가는 길에 보이는 구강포 갈대밭도 굉장하다. 시간만 된다면 여기 멈춰서 바지 둥둥 걷고 들어가 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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