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지역 역사를 돌려주자] (3) 가이드북 활용 탐방
거제 기성·계룡초 '주인 의식'되새기며 칠천량해전 기념관 견학
6·25 전쟁 후 폐허된 터전서 주민 돌 캐고 지은 거제초교도 찾아

<초등학생을 위한 거제지역사 가이드북>은 단지 1권씩 나눠주고 읽거나 공부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읽어보면 그 나름으로 효과가 없지 않겠지만 가이드북에 나오는 역사·문화 현장을 찾아 보고 만지는 데에는 미치지 못하는 법이다. 경남도민일보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가이드북을 만들면서 배포할 뿐 아니라 활용해 탐방하는 방안까지 마련했다.

거제의 모든 초등학교를 탐방하게 할 수는 없었고 35명 안팎 규모로 네 차례 진행했다. 11월 25일 기성초교(1회)와 11월 30일 계룡초교(3회) 5학년 학생들이 대상이었다. 요즘은 우스갯소리로 어른이나 중고생보다 초등학생들이 더 바쁘다. 학교 마치면 곧바로 학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오후 2시30분까지 학교로 돌아와야 했다. 원래는 세 군데를 돌아보려고 했지만 두 군데로 줄여야 했다.

탐방은 재미있고 즐거웠다. 임진왜란 조선 수군 유일 패전 칠천량해전을 기념하는 공원·전시관과, 임진왜란 이후 거제의 중심이 되었던 거제면 소재지 일대의 관아 건물들(거제향교·거제초교 포함)을 찾았다. 칠천량해전공원 전시관에서는 팀별로 미션지를 나눠주고 문제를 풀어보도록 했고 거제현 관아에서도 간단한 설명을 곁들인 다음 스스로 특정 무늬나 그림을 찾아보도록 했다.

칠천량해전공원전시관에서 조별로 미션을 풀고자 집중하는 모습./김훤주 기자

칠천량해전공원전시관 동영상은 주인공이 임금이나 장군이 아니고 노비 출신 일반 병사다. 부유하고 고귀한 지배집단의 관점에서 전쟁을 보는 것이 아니라 천대받고 가난한 일반 백성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전쟁의 참담함과 끔찍함을 드러내기에 알맞은 설정이다.

노비 출신 주인공 도치는 면천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칠천량에서 숨을 거둔다. 죽어가는 도치의 눈에는 두고 온 아내와 아들이 어른거린다. 도치의 동료 칠복도 그토록 먹여살리려고 애썼던 어머니와 누이동생에게 돌아가지 못했다. 양반들은 뇌물로 전쟁터를 벗어날 수 있었고 대신 자리를 채웠던 이들은 이렇게 죽어갔다.

동영상을 본 아이들은 전시관 곳곳을 돌아다니며 미션 수행을 했다. 전시관은 칠천량해전의 참혹함과 함께 그렇게 패전하게 된 원인도 자세히 밝혀놓았다.

거제 기성관 앞 기성초교 학생들./김훤주 기자

일본 수군의 본거지인 부산으로 진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데도 이순신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중첩자 요시라의 이간책, 거짓인 줄 알면서도 이순신을 미워해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한 선조 임금, 통제사 임명 전에는 부산 진격하면 이길 수 있다 했다가 뒤에 사정을 알고는 그럴 수 없다고 태도를 바꾼 원균, 그럼에도 임금 명령이라며 막무가내 부산 진격을 다그친 권율 도원수….

전투도 하기 전에 이미 패배한 조선 수군은 1597년 7월 14일 부산을 향했다가 이튿날 밤중에 150척 전선과 2만 군사 대부분을 칠천량 바다에 수장시키고 말았다. 살아남은 것은 배설 경상우수사와 12척이 전부였다. 이 12척이 두 달 뒤 이순신이 명량에서 130척 넘는 일본 수군을 물리치는 씨앗이 되었다. 배설을 두고 도망자·비겁자라 하지만 달아나면서도 한산도 본진에 들러 물자·시설을 불태워 왜군에 넘겨주지 않은 것을 보면 무턱대고 비방만 할 수는 없다. 마지막에는 삼강행실도 열녀 그림을 빌려와 전쟁은 언제나 여자와 아이들에게 더욱 끔찍했음을 보여주기도 하고.

함께 미션 정답을 알아보고 몇몇 친구들에게 문화상품권을 선물로 안긴 다음에는 식당으로 옮겨 이른 점심을 먹었다. 오후에는 거제면 소재지를 찾아가 거제향교·기성관·질청·거제초등학교를 둘러보았다. 여기 기성관 등도 임진왜란의 산물이다. 조선 수군 최초의 승전 옥포해전(1592년 5월 7일)으로 말미암아 당시 거제에 상륙했던 왜군들은 퇴로를 잃었고 그래서 계속 서쪽으로 나가 닷새 뒤 고현성을 함락시켰다. 그래서 전쟁이 끝난 뒤 조선 조정은 지금 거제면소재지 일대로 동헌을 비롯한 관아를 옮겼다.

역사 퀴즈를 풀고 상품권을 받아 기뻐하는 모습./김훤주 기자

하지만 이런 얘기까지 하면 아이들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된다. 대신 관아 건물을 살피고 쓰다듬으면서 어떤 일을 했는지 알아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먼저 거제향교. 향교란? 지금으로 치면 공립 중·고등학교에 해당된다. 사립 중·고교는 서원인데 거제에는 반곡서원 딱 한 군데가 있다.

그러면 옛날 초등학교는 무엇일까? 그렇지, 서당이다. 옛날에는 공부하는 목적이 지금처럼 지식·기술 습득이 아니었고 사람답게 살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초점이 있었다. 향교에서 공부하는 장소인 명륜당이 칠판도 분필도 없는 널찍한 강당 모양인 이유다. 같은 이유로 사람답게 잘 살았던 행적이 빼어난 이들을 모시고 제사도 지냈는데 뒤쪽 높은 데 대성전이 그런 자리였다.

기둥 위 들보에 머리가 닭 모양인 계룡(鷄龍)이 있는데 거제의 중앙에 우뚝 솟은 진산이 계룡산이어서 그런 측면이 있다. 이러면서 계룡이 모두 얼마나 되는지 찾아보게 했다.

거제 장터를 거쳐 기성관으로 갔다. '기성(岐城)'은 거제의 별명이다. 관아에서 으뜸가는 중심 건물이다. 원님이 업무를 보던 동헌보다 높다. 왜냐하면 지금은 국민이 주권자지만 옛날에는 임금만 주권자였고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셔놓은 데가 기성관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동헌보다 훨씬 커서 경남에서 전통 목조건물 가운데 네 번째로 규모가 크다.

아이들은 이어서 앞에 늘어서 있는 선정비들로 눈길을 보냈다. '이게 뭐예요?' 옛날 원님들이 백성들을 위하여 착한 정치를 했다고 사람들이 세워준 비석이다. 여기 보면 돌로 만든 석비도 있고 쇠로 만든 철비도 있는데 옛날에는 쇠가 귀했기 때문에 철비가 더 값진 대접을 받았다. 여기는 이렇게 많은데 다른 지역은 한둘밖에 없으니 이 또한 거제의 특징이다.

이어서 바로 옆 질청. 동헌이 원님, 요즘으로 치면 시장의 집무실이라면 질청은 아전들=국장·과장이 일을 보던 곳이다. 아전 자제들이 공부하는 공간 노릇도 했다고 한다. 마루가 너르고 방도 많고 구조가 ㄷ 모양이라 특이하다면서 '사람 얼굴 모양'을 찾아보라 했다. 처음에는 두리번거리더니 곧바로 찾아내고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웃음을 머금는다. 기와지붕 끝부분을 마감하는 막새에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한 번 하면 아이들은 다른 전통 건물을 찾아가도 잘 보이지 않는 구석까지 눈길을 한 번 던져보게 된다.

거제향교 대성전 앞 계룡초교 학생들./김훤주 기자

마지막으로는 1907년 설립되어 거제 최초 근대교육기관이라는 이름을 얻은 거제초등학교. 거제초교는 '최초'라서 뜻이 깊은 것은 아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고 먹을 것도 제대로 없던 시절에 지역 주민들이 마음을 내어 몸과 재물을 바쳐 뒷산에서 돌을 캐고 벽돌을 굽고 쌓은 거제초교 본관이다.

석조 건물의 장중함과 늠름함을 갖춘 데 더해 이런 피땀 어린 역사도 있다는 이유로 근대문화재로 등록되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본관을 유심히 보던 아이들은 운동장을 물들이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잠깐 놀고 기념사진도 한 장 곁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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