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에 기반을 둔 사이버 공간은 이미 상당 부분 기존의 현실 공간을 대체하기 시작했다. 굳이 서점에 가지 않아도 책을 살 수 있고, 은행까지 걸음하지 않아도 통장정리가 가능한 세상이 된 것이다. 이는 지역문화의 뿌리인 ‘지역’의 효용성이 그만큼 떨어지고 있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허약했던 지역 구조가 더 부실해지지나 않을까 걱정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우려가 그리 썩 정확한 것만은 아니다.
전화가 세상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도 사람들은 비슷한 고민을 했다. 전화가 없을 땐 억지로라도 마주쳐야 했던 사람들이 전화 한 통화로 때워버리지나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로 나타났다. 전화 때문에 사람들은 직접 만나야 할 이유를 더 많이 만들어냈고, 또 빨리 만나야 할 필요가 켜켜이 쌓이자 교통까지 발달시켜버렸다.
그러니 우리가 걱정해야 할 문제는 새로운 의사소통 방법이 기존의 방법을 대치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새로운 방법이 현실적인 필요를 얼마나 해결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인 것이다.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디지털 ‘모바일(mobile)’ 환경은 지역문화에 중요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장동건이 휴대폰으로 위치확인 서비스를 받는 CF의 한 장면은 모바일 환경의 핵심적인 단면을 잘 보여준다. 그 CF는 모바일을 매개로 현실공간과 사이버공간이 긴밀하게 ‘공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여기서의 현실공간이란 다름 아닌 구체적인 삶의 현장인 ‘지역’이다.
모바일 환경은 사람들을 고정된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과감하게 바깥 현실 공간으로 이끌어낼 것이다. 휴대폰이나 PDA와 같은 모바일 단말기 하나면 볼 일 보면서 ‘언제 어디서나’ 정보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 자기 위치, 당장 처리해야 할 업무, 인근 식당 중 만나는 사람의 취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식당 등 때와 장소와 경우에 따라 필요한 맞춤 서비스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모바일환경 덕분에 지역적인 삶과 문화 자체가 몰라보게 풍성해질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우선 지역적이면서도 창의적인 모바일 콘텐츠가 풍부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그 콘텐츠를 만들어내야 한다. 사실 인력과 정보가 부족한 지역 차원에서 중앙의 첨단기술력을 좇아가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지역주민들은 지역과 관련된 콘텐츠를 세상 그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잘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은 가지고 있다. 이 잠재력을 극대화시킬 필요가 있다. 지역문화계와 언론계, 그리고 자치단체들도 이 부분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지역문화의 가능성을 바로 이 지점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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