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여권 책임론에 부담, 지지층 재결집 여지 충분 '촉각'
야권, 강제 퇴진 여파에 기대, 차기 주자 난립 '혼돈'우려도

지난주 미궁에 빠졌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야권은 끝까지 안심할 수 없다며 총력 대응을 선포했지만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이 대거 동참하는 한 의결 정족수 확보는 무난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새누리당 비주류 모임인 비상시국위원회 측은 4일 총회를 열어 박 대통령이 퇴진 일정 등과 관련한 입장을 표명하더라도 여야 합의가 안 되면 9일 본회의 탄핵안 표결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탄핵에 비판적이었던 당 지도부도 굳이 이를 막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정진석 원내대표는 5일 "만일 오는 9일 예정대로 탄핵 절차에 돌입하면 우리 당 의원들도 다 참여해 개개인이 헌법기관인 만큼 양심에 따라 투표하는 게 좋다는 게 저의 일관된 생각"이라고 말했다.

비박계의 선회는 물론 3일 전국적으로 230만 명이 집결한 촛불집회 영향이 크다. 비상시국위 측은 총회 직후 "대통령 즉시 퇴임을 요구하는 국민 뜻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국민의 분노는 청와대를 넘어 국회로 향하고 있다"고 밝혔다.

타오르는 "탄핵"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5일 저녁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결의를 보여주고자 촛불로 '탄핵' 글자를 형상화한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비상시국위의 이 언급, 그리고 야당과 촛불 민심의 주장에는 상식적으로 양립 불가능한 두 가지가 뒤섞여 있음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회 탄핵'은 대통령 직무만 정지될 뿐 국회 의결 후 최장 6개월 동안 헌법재판소 심판을 받는다는 점에서 '즉시 퇴임'과 거리가 멀다. 정치권에서는 이런 이유로 탄핵이 대통령 즉각 퇴진을 막아선 형국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새누리당과 보수세력 입장에선 박 대통령이 즉각 퇴진을 당하느니 차라리 탄핵이 나을 수 있다. 비상시국위 대변인인 황영철 의원의 말이 그렇다. 그는 5일 CBS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지금 즉시 하야하겠다고 하면 이건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며 "그 경우 오히려 더 큰 혼란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 시기 조절 등이 논의될 필요가 있어진다"고 했다.

대통령이 오늘 하야를 결정하면 헌법에 따라 곧바로 2개월 내에, 그러니까 내년 2월 초에 다음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되도록 빠른 대선은 대선주자 지지율 1위 문재인 전 대표를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이 선호해온 방향이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지난 1일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 회동에서 "늦어도 1월 말 퇴진"을 언급해 논란을 불렀다. 박지원 국민의당 원내대표는 "대선을 빨리 하는 게 문재인 전 대표에게 유리하기 때문 아니냐"고 맹공을 퍼부었다.

반대로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은 최대한 대선 시점을 늦추는 게 유리할 수 있다. 박지원 대표는 박 대통령 '4월 말 퇴임설'이 흘러나왔을 때 찬반을 '유보'해 눈길을 모았다. 좀처럼 지지율 반등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안철수 전 대표와 당 사정을 고려한 태도라는 분석이 뒤따랐다.

새누리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의당에 밀릴 정도로 지지율이 추락하고, 지도부 사퇴와 당 쇄신 등을 둘러싸고 친박-비박 간 극심한 갈등을 빚고 있지만 어쨌든 지금 고비만 넘기면 최장 8개월까지 시간을 벌 수 있는 게 탄핵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특검 수사와 헌재 심판 과정이 정치적 부담을 안길 게 자명하나 당을 새롭게 바꾸고 유력 대선주자 중심으로 한데 뭉치면 미래는 또 모른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에서 이탈한 민심이 대부분 야권이 아닌 부동층으로 이동해 있는 만큼 지지층을 재결집할 여지는 아직 충분하다.

헌재의 탄핵 인용 시 2개월 내 대선이 치러지는 점도 각 정당에 큰 변수가 될 수 있다. 새누리당이 일단 가장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자신들이 만들어낸 현직 대통령(박근혜)이 쫓겨나게 됐으니 그 책임론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의 '4월 말 대통령 퇴진-6월 조기 대선' 당론을 야권이 경계한 이유 또한 그것이었다. 여야 합의에 따라 평화롭게(?) 물러나는 것보다는 탄핵에 의해 강제 퇴진 당하는 게 훨씬 더 정치적 효과가 클 수 있다.

그렇다고 야권에 마냥 유리한 점만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단순하게 접근하면 반기문 UN 사무총장 한 사람만 바라보는 여권이, 문재인 전 대표를 비롯해 안철수 전 대표, 이재명 성남시장,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10여 명의 주자가 난립해 있는 야권에 비해 보다 안정적이라 할 수도 있다. 쟁쟁한 주자가 많으면 흥행에는 도움이 되겠으나 그만큼 단시일 내 '교통정리'는 어려워질 공산이 크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당 내부에 대선 후보를 신속히 뽑을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 있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안철수 전 대표와 단일화가 화두가 될 수 있겠으나 오히려 안 전 대표는 반기문 총장 지지층과 겹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언제 대선을 치른다 해도 민주당에 나쁠 게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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