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문화 관광의 미래 그리스 섬이 주는 힌트] (3) 크레타섬과 카잔차키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읽은 세계인들 끊임없이 방문
마을 주민들의 자랑…관람객 크레타섬 해변서 휴양 즐기기도

◇그리스 최고 휴양지

크레타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미노스 문명으로 시작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 곳입니다. 하지만, 현대 크레타는 그리스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양지입니다.

우리로 치면 제주도라고 보면 딱 맞습니다. 제주도가 광역자치단체이듯 크레타도 그리스 13개 중 한 주를 차지합니다. 물론 크레타는 제주도보다 4.5배 정도 큽니다. 오히려 경남 면적과 비슷하죠. 어쨌거나 여름이면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인들이 크레타 해변으로 모여듭니다.

신화와 역사를 간직한 섬이지만, 오히려 아름다운 해변으로 더 인기를 끌고 있죠. 아프리카에 가까워 겨울에도 춥지 않습니다. 한 해 4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다녀간답니다. 대부분 여름에 오는데, 역사보다는 자연경관을 즐기러 온다는군요. 사실은 섬 전체가 아름다운 자연 휴양지입니다.

100개 넘는 해수욕장이 있는 크레타는 그리스인이 사랑하는 휴양지다./이서후 기자

섬 가장자리를 도는 해안도로가 1000㎞에 이르고요, 해수욕장만 100개가 넘는답니다. 2000m가 넘는 산만 60여 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꽃이 약 150 종이랍니다.

크레타는 또 전 세계 철새들의 건널목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겨울에는 대부분 숙박업소가 문을 닫습니다. 숙박업자들에게는 이때가 휴가철인 셈입니다. 하지만, 겨울에 크레타를 찾는 이들도 있습니다. 생태관광객들입니다. 이들이야말로 진정으로 크레타의 자연 자체를 만끽하러 오는 거지요. 이들을 위해 겨울에도 문을 여는 호텔들이 있습니다.

크레타에 있는 크노소스 궁전 유적./이서후 기자

◇카잔차키스가 있는 시골 마을

크레타의 주도는 헤라클리온이라는 도시입니다. 이 섬에 유일한 공항이 있는데요. 헤라클리온 N. 카잔차키스 국제공항입니다.

여기서 N. 카잔차키스는 현대 그리스의 대문호 니코스 카잔차키스(1883~1957)를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로 유명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나 <일리아스>를 번역하는 등 전 세계에 그리스 문화를 알린 공이 큰 작가인데, 바로 헤라클리온에서 태어났습니다. 19살까지 살다가 이후는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살았습니다.

헤라클리온에서 20㎞ 정도 떨어진 미르티아라는 마을에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이 있습니다. 미르티아는 카잔차키스의 아버지가 태어난 마을입니다. 박물관 건물은 아버지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이었답니다. 처음에는 아주 소박한 규모였다고 합니다. 그러다 2009년 리모델링을 해 지금처럼 세련된 2층 건물이 됐습니다. 전 세계에서 카잔차키스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이 박물관은 정부지원을 전혀 받지 않습니다. 대신 기부와 물품 판매로 얻은 수익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요즘에는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고, 가장 많이 기부를 한다는 것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박물관이 있는 크레타 시골마을 미르티아는 마을 전체가 카잔차키스를 테마로 꾸며져 있다./이서후 기자

박물관이 있는 미르티아 마을은 200여 가구, 600명 정도 사는 작은 마을입니다. 주민 대부분은 농사를 짓고 사는데, 우리나라 시골처럼 대부분 노인입니다. 수시로 찾아오는 관광객들이 불편할 만도 하지만, 오히려 박물관 직원들 일손이 부족하면 달려와 적극적으로 도와 준답니다.

박물관을 나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봤는데요. 마을 자체가 카잔차키스 박물관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잘 꾸며져 있습니다. 박물관이 생기면서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벽을 칠하고 길을 닦았다고 합니다. 이 마을 어르신들은 박물관을 지날 때마다 직원들에게 '밥은 먹었어? 청소해줄까? 몇 명 왔어?' 같은 정겨운 말들을 잊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크레타에서의 마지막 여정은 카잔차키스의 무덤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헤라클리온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묘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비석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나는 바라지 않는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인이다." 눈 아래 펼쳐진 현대적인 시가지를 보며 미르티아 마을 어르신들을 다시 한 번 떠올렸습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친절하고 다정했던 웃음들을 말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박물관은 오로지 기부금으로만 운영된다./이서후 기자

◇유럽서 가장 오래된 문명 중심지

미노스 문명(또는 미노아, 크레타 문명)은 기원전 3650년경~기원전 1170년경 크레타에 번성했던 고대 문명입니다. 유럽이라는 이름도 이 섬과 관련이 있습니다.

'에우로파'란 이름에서 유럽이란 말이 나왔는데요. 에우로파는 오늘날 시리아, 레바논, 이스라엘이 있는 지역의 옛 이름 페니키아에 살던 아주 예쁜 공주였습니다.

그리스 신화 최고의 신 제우스는 바람둥이로 유명하죠. 에우로파가 이 제우스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얀 황소로 변해 에우로파에게 다가가죠. 에우로파를 등에 태우고 놀던 황소 즉 제우스가 갑자기 바다로 향합니다. 그대로 지중해를 건너 도착한 곳이 크레타섬입니다. 일종의 납치였죠.

이 섬에서 제우스와 에우로파는 세 아들을 두는데, 그중 큰아들이 나중에 크레타의 왕이 되어 이 섬의 황금시대를 엽니다. 그의 이름이 미노스입니다.

관람객에게 친절한 미르티아 주민들은 박물관이 마을에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낀다./이서후 기자

'크노소스 궁전' 유적은 미노스 문명의 중심지였습니다. 미노스 왕이 이곳에 살았다고 합니다. 사방 2㎞까지 뻗은 하나의 거대한 밀집 건물이어서 '궁전'이라고 부릅니다만, 일반주택과 무덤, 선착장까지 갖추고 8만 명 정도의 인구가 살았던 '도시'입니다.

워낙 내부구조가 복잡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궁'이 이 도시에서 기원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