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권력에굴복하지 말라 ­양산박에서 송강­, 남다른 통찰력으로 꿰뚫은 108두령·본성·권력…국정농단 시국 관통하며 현 세대에 메시지 던져

난국의 원천이자 이를 풀어야 할 대통령은 변명과 책임 회피를 반복하는 담화문을 무려 세 번이나 발표하며 국정을 더욱 어지럽히고 있다.

지난달 28일 밤, 황교안 국무총리 관용차량은 20여 분간 KTX 오송역 버스정류장을 점거했다.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고 추위에 떨었다.

처음이 아니다. 지난 3월에는 관용차량을 KTX 서울역 플랫폼까지 들이밀었다. 지난해 7월 노인복지관을 방문해서는 엘리베이터 사용을 제한해 되레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국민이 뽑아준 국회의원은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라는 말로 공분을 사더니 190만 시민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밤, 유유히 사우나로 향했다.

"권력자와 관리들은 가렴주구(苛斂誅求· 가혹하게 세금을 거두거나 백성의 재물을 억지로 빼앗음)에만 몰두할 뿐 민생에는 눈곱만큼도 관심 없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 그들을 성탄은 '보물을 훔치기 위해 머리를 싸매는' 강도보다 못한 존재라고 힐난했다." (42쪽)

국가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 양산박을 배경으로 그곳에 사는 108두령의 이야기를 기록한 <수호전>. 고전 <수호전>에 담긴 함의를 몇 가지 주제로 나눠 평론하는 방식으로 풀어낸 <혼돈의 시대 - 수호전을 다시 읽다>(저자 구주모, 2016)가 시국을 관통하며 우리를 위로한다.

저자는 "명말청초(明末淸初) 시대상황과 지금이 많이 다르다고는 하나 사람들이 맞닥뜨리는 힘든 현실은 그때나 이제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며 "이 책은 '억강부약(강한 자를 누르고 약한 자를 도움)을 기치로, 인간 본성을 주 내용으로 소설적 재미를 외피로 한 <수호전>을 지금 우리 눈높이에 갖다 놓으려 애쓴 결과물"이라고 서문에서 밝혔다.

<수호전> 속 인물과 장면을 활용해 그 속에 숨은 주제를 풀어내는 저자의 통찰은 예리하다.

108두령이 안착한 양산박 대척점에는 주로 벼슬아치로 대표되는 악역이 도사리고 있다. 이 가운데 고구와 채경으로 대표되는 권력을 다룬 '02. 일그러진 권력, 신음하는 사람들'의 소제목을 들춰보자.

'관이 핍박하니 반란이 일어나고', '머리 좋은 출세주의자, 국정을 농단하다', '친인척까지 총동원된 부패 사슬', '곁가지 권력이 부리는 패악', '돈독 오른 아들딸 뇌물 경쟁에', '벼슬아치네 개새끼가 사람을 무니' 등은 지금 신문 제목으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시대를 꿰뚫는다.

덧붙여 저자는 일갈한다.

"인성이 밑바닥이고 재주는 많은데 권력이 손에 들어왔으니, 남은 건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휘두르는 일뿐이다."(43쪽)

"원래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그것은 인간에게 내재한 악한 본성을 끄집어내고 폭발시킨다. 그 본성이 조금 악하면 득실을 따지며 욕구를 채우는 데 급급해한다. 그러나 심하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도의와 사리에 어긋나는 일을 무소불위로 행한다." (54쪽)

500년 전 고전이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토지와 재물을 독차지하고 백성을 수탈하던 권력자, 고된 삶을 이어가던 백성, 일그러진 권력을 부정하는 호걸들의 이야기. 가장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물과 명쾌한 주제를 중심으로 <수호전>을 풀어낸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수호전>을 읽지 못했다고 해서 책 펴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본문을 시작하기 전 '읽기에 앞서'를 찬찬히 따라가면 흐릿하기만 한 고전 속 호걸이 점점 선명해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수호전 평설>, <중국사의 대가, 수호전을 역사로 읽다> 등 35편의 주요 도서와 30여 편의 논문 등 저자가 이 책을 쓰고자 들인 공력은 가늠하기 어려울 듯하다. 또한 이러한 내공을 쉽게 얻어올 수 있다는 것이 책을 읽는 기쁨 아니겠는가.

324쪽. 도서출판 피플파워. 1만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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