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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전 이 나무 심으며 길이 나리라 예언하였더라

[남해 바래길에서 사부작] (23) 14코스 망운산노을길 마을 고샅고샅
노을지는 바다·섬 내려다보는 맛, 남상마을 출신 가직대사의 비범성

이서후 기자 who@idomin.com 2016년 12월 02일 금요일

바닷물이 황금색으로 물들 즈음 남해섬 망운산에 오른다. 산봉우리에서 구름을 내려다본다고 해서 망운(望雲)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하던가. 운해가 자주 낀다고 들었지만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다. KBS 송신탑을 지나 감시초소까지 가니 비로소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남해에서 가장 우뚝한 산답게 망운산은 바다를 굽어보는 기상이 웅장하다. 지평선 주변에 가로로 길고 붉은빛이 머물다 사라지니 해가 온데간데없다. 곧 바래길 주변 어촌 마을에 짙은 어둠이 깃든다. 반면 바다 건너 여수산업단지와 광양제철에는 환하게 불이 켜진다.

◇망운산과 화방사

더 어두워지기 전에 서둘러 산에서 내려간다. 세계 2차대전 때 망운산에 추락해 전사한 미 폭격기 승무원 11명을 기리는 전공비가 근처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둠이 급하게 밀려들기에 찾기를 포기하고 하산길을 재촉한다. 길이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급하다. 망운산의 기운이 강해서 그런지 몸이 자꾸만 움츠러들기 때문이다. 옛 시절 남해에 비가 오지 않으면 가장 먼저 망운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그래도 비가 안 오면 상주 앞바다에 있는 세존도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노구마을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망운사 가는 길이 나온다. 원래는 북쪽 자락에 있는 화방사의 부속 암자였다. 효봉, 경봉 같은 큰 선승들이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30여 년 전 선화를 잘 그리기로 유명한 성각 스님이 이곳에 온 후 공을 들여 쌍계사 말사로 승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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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망운산 산행은 화방사에서 시작한다. 정상까지는 2.97㎞, 약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617~686)가 금산에는 보광사를, 망운산에는 연죽사를 세웠는데, 연죽사가 지금 화방사의 전신이다. 임진왜란 당시만 해도 호국 사찰로 이름이 높았다. 이순신 장군을 포함해 임진왜란 때 순국한 이들의 제사를 이곳에서 지냈다고 한다.

화방사 일주문을 지나 산사로 들어가는 길은 오솔길처럼 정겹다. 일주문에 달린 '망운산 화방사' 현판에는 글씨를 쓴 이가 '여초거사'라고 돼 있다. 근현대 서예의 대가 여초 김응현(1927~2007) 선생을 말한다. 충청북도에서 경상북도로 접어드는 길목에 있는 영남제일문(경북 김천) 현판을 쓴 이다. 사찰로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건 채진루다.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알 수 있는 건물이라고 한다. 채진루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대웅전이 있다. 아담하지만 단정하고 늠름한 모습이다. 작은 마당 한편에 범종과 법고가 보인다. 아니, 자세히 보니 목어와 운판도 있다. 이 조그만 절에 법전사물이 다 갖춰져 있다.

전체적으로 화방사는 소박한 느낌이 나는 사찰이다. 하지만, 산기슭 쪽으로 새로 지은 듯한 용왕단이 이 소박한 맛을 조금 떨어뜨린다. 용왕단에는 돌로 된 커다란 약사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망운산 정상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용왕단 뒤편으로 나있다.

◇남해스포츠파크, 나무 이야기

바래길 14코스가 시작되는 서상마을 주변은 서면사무소가 있는 면 소재지다. 이곳에 5개의 야구장, 4개의 축구장, 수영장, 테니스장이 있는 남해스포츠파크가 있다. 면적은 30만㎡로 지난 2000년에 공사를 시작해 2004년 완공했다. 바다 건너 광양제철소를 지으면서 나온 흙과 그 앞바다를 국제항로로 만들려고 바다에서 파낸 흙으로 메운 매립지 위에 조성한 시설들이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때 덴마크 선수들이 훈련장으로 쓴 이후 국내 큰 축구대회도 열리고, 많은 팀이 전지 훈련장으로 이곳을 썼다. 뭔가 굉장하지 않을까 기대를 했지만, 실제는 꽤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관리가 깨끗하게 잘 되고 있어서 여전히 작은 대회들이 자주 열리고, 남해군민들에게도 훌륭한 공원 노릇을 하고 있다.

남해군 바래길 14코스에 있는 남상마을에서 조선 영조 때 태어난 가직대사는 어릴 적부터 비범하기로 유명했다 한다. 가직대사가 남상마을과 중리마을, 노구마을에 소나무를 심으며 '이곳에 길이 날 것'이라 예언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이 나무들은 지금 77번 국도변에 있다. 남상마을 소나무 곁에는 가직대사삼송기념비도 있다.

14코스에는 오래된 나무와 관련한 몇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먼저 남상마을에서 태어난 스님이야기가 있다. 조선 영조 때 운흥(남상마을 옛 이름)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비범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커서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이 스님이 가직대사다.

이 가직대사가 남상마을과 중리마을, 노구마을에 소나무를 심었다. 물론 300여 년 전의 일이다. 그러면서 '이곳에 길이 날 것'이라고 예언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지금 이 소나무들은 모두 77번 국도변에 있다. 하여 사람들은 훗날 이 나무들을 '가직대사 삼송'이라고 부르며 잘 보호하고 있다. 특히 남상마을 소나무 곁에는 가직대사삼송기념비가 함께 있어 스님의 뜻을 기리고 있다.

지금은 노구마을까지만 바래길이 조성됐지만 애초 14코스 예정지인 고현면 갈화마을에도 유서 깊은 나무가 있다. 아니, 지금은 없다. 갈화마을 들판 한가운데 있는 갈화리 느티나무는 지난 1982년 천연기념물 제276호로 지정됐다. 높이 17.5m, 둘레가 9.3m. 500년 전에 이 마을 부농이 마을 들판을 지나는 냇가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동쪽 가지에서 서쪽 가지까지가 27m, 남쪽 가지에서 북쪽 가지까지는 25m로 여름이면 그늘이 아주 넓어 주민들이 와서 쉬기도 하고, 마을 회의를 열기도 했다.

중리 가직대사 소나무.

그런데 이 나무가 몇 해 전에 죽었다. 현재는 아예 베어지고 없다. 대신 그 자리에는 정자가 새로 생겼다. 또 하나, 주민들이 그 곁에 새로 느티나무 묘목을 심었다. 아직은 앙상하지만 앞으로 또 몇백 년이 지나면 다시 후손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어 줄지도 모른다.

노구마을 가직대사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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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후 기자

    • 이서후 기자
  • 문화체육부에서 문학/영화/연극/출판 등을 맡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