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외침과 촛불 듣고 보지 못했나 봐…우리가 할 수 있는 답은 "당장 내려와"

마침내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사뮈엘 베케트' 식으로 말해야 할 때가 왔어. 그래 이건 이름 부를 수 없는 자가 아니라 더 이상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의 이야기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어딜까? 지금은 언제이고, 내가 사는 이곳은 나라가 아닐까? 지금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본다면 그래, 더 이상 나라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 누구든 밖으로 나오는 대신에 집에, 집에 그냥 있을 수 있었을까. 아무 일도 하지 않기가 불가능해. 절대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 지난 29일 오후 그가 불쑥, 3차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한 뒤 나라가 더욱 소란해졌어. 이건 뭐, 전매특허였던 '유체이탈화법'도 아니고 이른바 '교묘한 아웃복싱 수법'도 아니야. 그냥 뻔뻔스러움이야. 그래서 그냥 예, 그리고 아니요, 란 둘 중 하나 외에 다른 식으로는 방법이 없어. 그래, 그의 말은 한 마리 새처럼 언제가 됐든 간에 100만 개, 190만 개가 넘는 촛불 위에다 똥을 싸지르겠다는 거다. 말이 그렇게 되는 거지. 만일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입에 올리기조차 싫은 여러 사건들이 아니라 그의 이름에 대해 반드시 말해야만 해. 이 나라를 살아가야 할 사람이라면 절대 입 다물고 있지는 않을 거야. 절대로.

이름 붙일 수 없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입이 있는 까닭에 그가 말했으니까. 첫째, 국내외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인지 숱한 밤을 지새우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니까. 둘째, 국정의 혼란과 공백을 최소화하고 안정되게 정권을 이양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달라고 하니까. 셋째, 하루속히 이 나라가 혼란에서 벗어나 본래의 궤도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밝혔으니까. 넷째, 이 나라의 희망찬 미래를 위해 정치권에서도 지혜를 모아주실 것을 호소한다고 말하니까. 이 네 가지 문장을 압축하면 지금은 나라가 아니니까, 더 이상 국가 혼란이 길어지는 상황을 막아야 한다는 것. 즉 당장 그의 퇴진절차를 결정해서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얘기니까. 그러니까 답은 이미 나왔으니까. "이번 일로 마음 아파하시는 국민 여러분의 모습을 뵈면서 백번이라도 사과를 드린다 해도 큰 실망과 분노를 다 풀어드릴 수 없어서 가슴이 더욱 무너져 내린다"고 했으니까. 그래, 그가 네 번이나 강조하며 밝힌 퇴진의 변 '국정 혼란과 공백의 최소화'는 곧 빨리 나를 퇴진시켜달라는 말이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답은 그냥 그 가슴 더 이상 무너져 내리지 않아도 되니까 당장 내려오라는 것!

사실 우리는 내가 이 나라에 살게 된 데에도 어떤 시작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해봐야만 할 거야. 그게 비록 어떤 말을 교묘하게 퍼트리는 꼼수밖에 안 되는 수작일지라도. 지옥 그 자체는, 어떤 공간이기는 하지만 영원한 시간으로 변해서 우리에게 진행되는 것일 수도 있거든. 여기에 우리가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들이 적어도 100만 혹은 190만 개는 있어. 촛불과 함께 이 나라를 들어 올린 단어들. 이 단어들이 이 나라에 필요할 때는 지금 당장이야. 그래, 이 나라를 살아가는 그 모든 이들이 촛불과 함께 밝힌 어떤 외침이 분명하게 들려왔지. '당장 퇴진' '하야'. 그도 그 외침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여기서 내가 그리고 우리가 놀랐다는 표현을 써도, 모자랄 거야. 아주 길고 긴 침묵 뒤에 짧게 악, 하고는 바로 막혀버리는 비명소리 같은 외침. 어떤 종류의 피조물이 그와 같은 비명을 질렀고 만일 그게 동일한 비명이라면, 비명을 지르게 한 그는 아무튼 인간이 아니야. 하긴 인간들은 애당초 그가 살던 나라에는 없었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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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그는 아직 우리의 외침을 듣지 못했나 봐. 촛불을 보지 못했나 봐.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이렇게 말하는 거야. '당장 퇴진'. 그런데 그가 어떻게 수백만 개의 촛불 앞에 버틸 수 있는지 모르겠어. 그것도 가슴이 무너져 내린다는 말까지 해놓고 말이야. 당장 무릎을 꿇고 빌어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저리도 당당하게 서 있을 수 있는 걸까. 해서 한 번 더 하는 말이다. 촛불의 민심이 요구하는 것은 "저는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 당장 그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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