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박근혜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난 이후 세 번째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하야를 촉구하는 국민들의 촛불집회가 갈수록 거세지고 야당 주도로 탄핵 가결이 확실해지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스스로 물러날지 관심이 쏠렸으나 담화 내용은 매우 실망스럽다. 담화의 요지는 "임기 단축을 포함한" 자신의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국회 결정 수용 여부와 상관없이 박 대통령은 탄핵이 통과되면 당장 직무가 중단된다. 물론 친박 인사들도 퇴진을 건의하고, 국회 탄핵이 기정사실화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자기 거취를 국회에 맡기겠다는 발언은 퇴진을 염두에 둔 발언인 것은 맞다. 국회가 안정된 정권의 이양 방안을 마련하면 절차에 따라 물러나겠다고 한 것도 퇴진 결심을 사실상 밝힌 것이다. 그러나 매서운 추위 속에서 촛불을 든 국민들이 박 대통령에게 요구한 것은 즉각적인 자진 퇴진이었다.

물러나게 될 처지에도 박 대통령이 국민의 요구에 굴복한 것이 아니라 죄가 없는데도 외부의 힘에 끌려 물러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는 것은 매우 무책임한 데다 국민에게 도전하는 행위이다. 정작 집권 내내 의회 정치가 필요할 때 박 대통령은 야당과 불통한 것은 물론 새누리당마저 하수인으로 취급했다. 그런 박 대통령이 정작 자신이 벼랑에 몰리자 의회에 공을 떠넘기는 것은 헌정 질서가 교란되는 지경을 만든 자신의 책임을 전혀 반성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탄핵을 놓고 국회가 소모적인 갈등을 빚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무책임의 극치다.

이번 담화에서도 박 대통령은 여전히 결백을 강조했다. 대기업 총수들을 비밀리에 안가에서 만나 재단 출연금을 요구한 행위는 사익 추구나 사심과 관계 없다고 했다. 형사 피의자 처지에서도 무죄를 강변하고 국가를 위해 그랬다는 이전 담화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다. 검찰은 조사에도 응하지 않은 채 결백을 호소하는 피의자 대통령을 즉각 수사해야 할 것이다. 박 대통령에게 물러나는 순간까지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가 될까. 국민들을 더는 창피하게 하고 싶지 않다면 박 대통령은 비겁하게 처신하지 말고 당장 물러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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