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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장님]윤두진 거제 수양동 6통장

2012년 통장으로 추대돼 농사짓는 주민에 비료 배달
각종 농자재 전달해주기도 "온 동네 함께 잘 살았으면"

신서용 기자 syshin@idomin.com 2016년 11월 30일 수요일

"마을 일에 전혀 관심 없이 일만 하고 살았습니다. 어렸을 때는 원양어선을 탔고, 병역을 마치려고 고향에 돌아왔습니다".

윤두진(70) 통장은 군 복무를 마치고는 다시 수출선을 탔다.

수출선에서 남미와 동남아 등지를 돌며 5년을 보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 취직해 2005년까지 오직 일만 하며 지냈다.

그리고 정년퇴직을 한 뒤에는 산불감시원과 공공근로 등으로 일하며 일 속에 파묻혀 자신을 스스로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무엇인가 뜻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

윤두진 씨가 거제시 수양동 6통장이 된 계기를 그는 이렇게 회상했다.

평생을 일만 하며 보낸 그가 새로운 인생을 찾고 싶었는데 그것이 바로 통장이었던 셈이다.

윤 통장이 집에 들어서면 '정심(正心) 정언(正言) 정행(正行)'이란 글이 보인다.

작은 일이라도 농사짓는 주민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배달을 시작했다고 하는 윤두진 통장.

바른 마음과 바른말, 그리고 바른 행동. 가훈이다.

항상 가훈처럼 하려 하지만 잘은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볼 때마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 위안을 얻는다.

그가 처음 통장을 해보라는 지인의 권유를 받고 통장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경쟁자가 있었다.

한 마을에서 추대가 아닌 선거를 통한 통장 선출은 주민들 간에 편만 가를 뿐 마을에 득이 될 게 없다고 생각해 그는 통장을 포기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화합이라고 생각한 그의 신념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2012년 전(前) 통장의 임기가 끝나자 그가 통장에 추대돼 통장이 된 것이다. 물론 선거가 아닌 추대였다.

그가 통장이 되면서 달라진 게 하나 있다. 지금껏 자신에게 전혀 필요가 없었던 오토바이를 사게 된 것이다.

마을이 넓어 걸어다니기엔 거리가 상당하고, 차를 타자니 좁은 길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시골 마을의 특성상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고, 혼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 역시 많은데, 그분들은 각종 모종이며, 비료를 직접 가져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농사를 짓는 통민들에게 모종이며, 비료를 전달해주려고 오토바이를 구입했다.

주민들이 농사를 짓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통장이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 배달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요즘 마을 구석구석을 온종일 오토바이를 타고 순시 아닌 순시를 하고 있다.

주민들이 필요한 각종 농자재를 의뢰하면 신속한 배달을 하기 위해서다.

아직 수양동에는 상수도를 이용하지 않는 가구가 많다. 일부 통민들이 식수로 이용하는 물에 문제가 생길 때는 언제나 나서서 해결해주고 있다. 식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불편하긴 하지만 간이 상수도를 이용하는 것은 상수도 사용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란다.

그는 "'말도 붙이기 싫은 통장'이란 말을 듣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온 힘을 다하고 있지만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면서도 "말을 걸 때마다 잘 받아줘서 그렇게 나쁜 통장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마을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과 협의해 동의 민원을 해결하는 것도 통장이 해야 할 것 중의 하나라는 그는 "순환버스 증회 및 노선 연장, 도로 확장 등 동을 먼저 생각해서 동 전체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통장은 "마을 사람들끼리 지금처럼 잘 화합하고 도와가며 살 수 있도록 작은 힘을 보탤 수 있어서 행복하다"며 "또 다른 나의 인생을 찾게 해준 통장이란 직업(?)을 사랑하고, 마을 일을 맡겨준 주민들에게 감사하다"며 환한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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