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산티아고 순례길] (30) 포르토마린에서 마토 카사노바까지 32.4㎞
순례길도 막바지입니다 아쉬움에 더 열심히 걸었죠
마침 다리 통증 사라진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요

◇포르토마린에서 마토 카사노바까지 32.4㎞

포르토마린(Portomarin)에서 출발하는 새벽, 침대 수가 많지 않은 사립 알베르게(순례자용 숙소)라서인지 좀 늦잠을 잤어요. 오전 6시쯤 출발했는데, 잠깐 길을 잘못 들었어요. 그래도 걷는 사람이 많아 곧 제 길을 찾긴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심하게 캄캄합니다. 다른 사람들 뒤에서 함께 걷다 날이 좀 환해져서 다시 혼자 걷기 시작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온전히 혼자 걸을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가능하면 최대한 혼자 걸어봐야겠습니다. 다행히 다리도 다 나았어요. 그렇게 아프더니 정말 신기하다 싶더라고요. 여럿이 다니는 것이 좋은 점도 있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가 어려워 조금은 부담스러웠는데 갑자기 다리가 심하게 아팠던 거죠. 그런데 쉬어주지도 않았고 배낭도 계속 지고 걸었고 마사지 외에는 한 것이 없는데 다리가 다시 멀쩡해진 거예요. 사실 거의 다 와서 못 걷게 될까 봐 또 일정에 문제가 생길까 봐 속으로 걱정을 많이 했었거든요. 남편과 딸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설명해주니 다 신기하답니다. 그저 감사한 마음이 가득한 새벽입니다.

오늘은 구름이 끼었네요. 스페인 풍경이 생소한 듯 정겹습니다. 컨디션 또한 아주 좋습니다. 이틀 동안 순례자 일행과 손짓 발짓으로만 대강 이야기하다가 미국에서 왔다는 한국인 모녀를 만났는데 부담없이 말을 주고받을 수 있어서 얼마나 좋던지요. 겨우 이틀 만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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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례길에서 다시 만난 프랑스인 할아버지와 함께.

며칠 전 사리아 알베르게에서 같이 묵었던 프랑스인 파리에앙느 할아버지를 다시 바르(Bar)에서 만났어요. 그런데 말이 안 통하니 서로 답답할 수밖에요. 겨우 사진만 찍고 갈 길을 갔답니다. 길에는 어제 포르토마린 광장에서 함께 놀았던 스페인 학생들이 많이 보였는데 몇몇이 저를 안다고 반가워해 주더라고요. 단체로 순례길 체험을 하러 온, 그리고 어제 광장에서 공연을 펼쳤던 그 아이들입니다.

줄어드는 산티아고까지의 거리를 보니 다 와 간다는 설렘보다 아쉬움과 함께 초조함이 밀려드는 것은 웬일이래요. 언제까지나 이 길에 머물고 싶은 맘은 뭐냐고요. 으흐흑. 그리고 함께 걷던 친구들이 그리워집니다. 원래는 팔라스 델 레이(Palas de Rei)까지만 걸으려고 했는데 일찌감치 도착하기도 했고 컨디션도 좋아 친구들이 묵는다는 마토 카사노바(Mato-Casanova)까지 걷기로 했습니다. 이상하게 혼자 걷고 싶으면서도 또 친구들이 몹시 그리운 건 무슨 일인지 제 마음 저도 모르겠네요. 참말 변덕쟁이지요? 사과를 한 개 먹고 힘을 내서 으랏차 다시 출발을 합니다.

마토 카사노바로 향하는 길에는 오레오(Horreo·스페인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 북서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곡물저장고로 주로 나무로 된 것이 많다./편집자 주)가 눈에 많이 띄네요. 옛날에 옥수수 등 곡식을 넣어 놨던 창고 같은 것인데 독특하고 예쁘게 생겼어요. 방수도 통풍도 잘 되는 구조인데, 쥐로부터도 보호를 해 준다고 해요. 팔라스 델 레이를 지나자 오레오는 더욱 눈에 많이 띄었어요.

카사노바 마을 주변 풍경.

열심히 걷고 있는데 앞에 주선이(자주 함께 순례길을 걷던 한국인 아가씨)가 보이는 거예요. 얼마나 반갑던지요. 일행은 먼저 갔고 혼자 처져서 걷고 있던 거예요. 주선이는 몹시 힘이 드는지 배낭도 보내고 걸었더라고요. 둘이 얘기하며 얼마를 가니 아주 아주 작은 마을 마토 카사노바에 도착했습니다. 순례길을 함께 걷던 일행이 이틀 만에 만난 저를 반겨주네요. 다리가 나아 다행이라며 기뻐해 주면서요. 저도 그랬지만 니나(폴란드에서 혼자 온 여성 순례자)가 더욱 반가운가 봐요. 헤어질 때도 저와 남겠다는 걸 억지로 보냈었거든요. 비슷한 또래의 아줌마이다 보니 아마 더 그랬을 겁니다. 걱정을 많이 했다며 끌어안고 놔 주지를 않아요.

마을이 작아서인지 알베르게도 정말 작네요. 가방으로 줄을 세워놓고 알베르게 문 열기를 기다리는데 이곳에 묵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네요. 대부분 순례자는 이곳을 지나쳐 멜리데(Melide)로 향하고 있었어요. 이곳엔 우리 일행만 묵을 것 같아요. 다들 씻고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바르로 식사를 하러 갔어요. 오늘따라 다들 들뜬 것 같네요. 기분 탓일까요?

스페인 사람인 비센테와 하우메가 열심히 스페인 요리를 설명해 주고 주인에게 부탁해서 이것저것 맛도 보게 해주고 아주 화기애애한 분위기예요. 어제 포르토마린 광장에서 찍은 사진도 보여주고 즐거웠던 이야기를 들려주니 무척 부러워하더라고요. 저도 이 친구들과 함께했었다면 더 즐거웠을 것 같아요.

스페인 북서부에서 흔히 보는 곡식 저장고 오레오.

점심을 먹고 다들 시에스타(Siesta·스페인 사람들이 낮잠을 자는 시간)하러 가고 전 그냥 바르에 앉아 일기 썼어요. 이 시간에 잠을 잔다는 것이 오늘은 더욱 아까운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 걸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또 이 여유로움을 온전히 즐기고 싶었지요.

오늘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 기분 좋네요. 일기를 쓰고나서 혼자서 동네를 이리저리 다닙니다. 동네가 작아 볼 것은 별로 없지만 소박한 시골풍경이 정겹기만 하더라고요. 조용한 시골 마토 카사노바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갑니다.

오랫동안 순례길을 걷고 있는 내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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