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문화 관광의 미래, 그리스 섬이 주는 힌트] (2) 산토리나 섬의 슬픈 역사
화산재 덮인 그리스 척박한 섬 집 지을 나무 없어 땅 속 생활
1970년대 마을 사진 알려진 후 관광객 방문 식당·호텔 변신

아, 하고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습니다. 과연 '평생에 한 번은 가봐야 할 곳'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했습니다. 그리스 섬들 중 요즘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한 산토리니섬 이야기입니다.

산토리니는 그리스 본토 남동쪽, 에게 해에 있는 키클라데스 제도에 속합니다. 그리스 신화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섬, 델로스를 중심으로 220여 개 섬이 원을 그리며 둘러싸고 있지요. 산토리니는 이 중 가장 남쪽에 있습니다. 산토리니는 외부에서 부르는 이름이고요, 섬사람들은 '피라섬'이라고 부릅니다. 행정구역도 '피라시'고요.

요즘 산토리니는 유럽인보다 한국인이나 중국인들이 더 많이 찾는 섬입니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1년 '포카리스웨트' 광고 촬영지로 알려지기 시작했지요. 당시 신인이었던 손예진이 등장해 파란 하늘과 바다, 하얀 집이 어우러진 풍경을 달리던 모습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지난해 5월 케이블방송 tvN에서 방영한 <꽃보다 할배>에 산토리니가 나오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산토리니행을 부추겼습니다.

산토리니에서 만난 원주민 프로코피 씨./이서후 기자

현재 그리스를 찾은 한국 관광객 70% 이상이 산토리니를 찾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 관광당국은 한국과 산토리니를 연결하는 직항로 개설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그리스 본토로 향하는 직항로도 없는데 말입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주민

산토리니에는 선사시대 이후로 몇 번의 커다란 화산 폭발이 일어납니다. 그러면서도 이 섬에는 계속 사람들이 깃듭니다. 화산재만 가득한 이곳에서 주민들은 턱없이 가난하게 살아왔습니다. 산토리니에서 만난 원주민 프로코피(55·사진) 씨는 13살까지 신발을 신어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부모 세대는 평생 신발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고 하네요. 수저라는 것도 없어서, 양파를 벗겨 움푹한 부분으로 수프를 떠먹었다는군요. 농사를 지을 때도 농기구가 없어 손과 발로 땅을 긁었다고 합니다.

물이 부족한 섬이라 포도 농사를 주로 지었답니다. 여름 내내 포도를 키워 수확한 다음 건포도를 만들어 한겨울 식량으로 삼았답니다. 섬이니 물고기 잡아먹으면 되지 않느냐 할 수도 있는데요. 지중해는 광물이 많아서 해산물이 그렇게 풍부하지가 않답니다. 적어도 1970년대까지 산토리니 주민들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화산 폭발이 잦아 드문드문 유럽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는 했지만, 산토리니가 많이 알려진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입니다. 70년 말 처음으로 이 섬에 유럽인들을 태운 유람선이 들어옵니다. 하지만, 정식 기항이 아니라 풍랑을 피하고자 며칠 들른 것이지요. 아무것도 없는 섬에서 뭐 할 일이 있었겠습니다. 여기저기 다니며 사진을 찍었답니다. 그리고 돌아가서 사진을 현상했는데, 사진작가들이 이를 보고는 환상적인 풍경에 매료돼 산토리니를 찾아오기 시작했다는군요.

산토리니 주민들이 살던 동굴집은 대부분 식당이나 호텔이 됐지만 행정당국의 노력으로 풍경 자체는 거의 변화가 없다. 절벽에 다닥다닥 붙은 하얀 집은 살아남으려는 산토리니 주민들의 몸부림이었다./이서후 기자

◇옛것 그대로 최고의 관광지

사실 하얀 집은 산토리니가 속한 키클라데스 제도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여름에 건조하고 겨울에 비가 잦은 지중해성 기후 탓에 담과 벽에 회반죽을 칠합니다. 해충도 막고, 방수도 됩니다. 회반죽이 지중해 햇살을 받으면 하얗게 빛납니다. 산토리니가 더욱 독특한 것은 이런 하얀 집이 절벽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모양 때문입니다. 산토리니는 화산재로 덮인 섬입니다. 건축재료로 쓸 나무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민들은 지층처럼 쌓인 화산재를 파서 좁고 긴 동굴집을 지어 살았습니다. 동굴은 자외선과 바닷바람을 막아주면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해 지중해성 기후에는 딱 좋았습니다. 최근까지도 집에 화장실이 따로 없었다고 합니다. 기원전 1600년에 수세식 화장실을 갖춘 2층 벽돌집을 짓고 살았던 사람들이 살던 바로 그 섬인데 말입니다.

어쨌거나 이 유명한 바닷가 절벽 하얀 집들은 상업적으로 디자인한 게 전혀 아닙니다.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눈물겨운 삶 그 자체입니다. 놀랍게도 산토리니가 완전히 관광지가 된 지금 풍경은 지난 시절과 비교해 거의 변한 게 없다고 합니다. 행정당국의 세세한 건축 정책 덕분입니다. 예컨대, 계단은 흰색 회반죽으로 둥글게 처리하는 게 어울린다, 난간은 허리춤 이상으로 하지 마라, 이런 식으로 1980년대부터 모범 답안을 정해 사람들에게 권장했답니다.

여기에 햄버거나 커피 등 대형 프랜차이즈와 대형 호텔 체인을 일절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산토리니섬의 토속적인 것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풍경에 넋을 잃고 있다가 문득 남해 다랭이마을이 떠올랐습니다. 바닷가 마을이지만 어로 활동을 하기 어려운 환경, 경사진 땅을 깎고 돋워서 다랑논을 만들고 지게로 거름을 져 나르던 억척스런 생활, 그러다 어느 순간 관광지로 유명해진 곳, 그리고 주민들이 살던 집들이 대부분 숙박 장소가 된 것까지 여러모로 산토리니와 닮았습니다. 다랭이마을에서 사라져가는 것들과 지켜야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산토리니의 하얀 집들 사이에 오래도록 서 있었습니다.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이뤄졌습니다.

<아틀란티스 부활?>

산토리니의 옛 이름 중 하나는 '둥근 섬'입니다. 기원전 1600년경, 이 섬에서는 지구 역사상 손에 꼽을 만한 거대한 화산 폭발이 일어납니다.

당시 크레타섬에서 절정에 이른 미노아 문명(기원전 3650년경~ 기원전 1170년경)이 이 폭발에 따른 해일 피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멸망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지요.

그리스 산토리니섬에 있는 아크로티리 유적./이서후 기자

산토리니에는 '아크로티리 유적'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지난 1867년 수십 미터 화산재에 묻혀 있던 마을이 하나 통째로 발굴된 곳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마을이 미노아 문명과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다는 건데요. 우리로 치면 후기 신석기에서 초기 청동기에 속한 시기에 이 마을에는 2~3층짜리 벽돌 건물이 있었고, 침대를 사용했으며, 수세식 화장실도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크로티리 유적 때문에 플라톤이 <크리티아스>에 언급한, 사라진 지중해의 화려한 도시 아틀란티스가 바로 산토리니라고 생각하는 고고학자들이 많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