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밖 아이들 위한 진정한 '대안' 모색…스스로 고민·선택할 수 있는 '틈' 필요해

수능 시험일이었던 지난 17일, 아내와 함께 서울 정독도서관에 다녀왔다. '놀배네'라는 제목으로 배움의 지도(네트워크) 만들기를 시도하는 사람들 모임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교를 넘어 놀면서 배우는 새로운 배움 네트워크를 위해 상상력을 함께 모아보자는 취지로 모인 모임이다. 나 역시 이러한 교육 현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끼던 터라 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새로운 배움 네트워크를 상상한다는 말은 뒤집어보면, 오늘의 학교와 대안학교가 충분한 배움의 현장이 되지 못했다는 말을 담고 있다. 학교의 대안이 필요해 대안학교가 만들어졌고 또 다양한 교육시스템을 만드는 일에 열심을 내었지만 '대안'이 되기보다는 '대신'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진단들이 나오고 있다. 한 해 6만~7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이 학교 밖으로 나오고 있지만 이 아이들에게 대안학교는 충분한 대안이 되지 못한 것 같다.

아이들에게 학교가 필요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학교를 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던 시대와 달리 지금의 청소년들은 특별한 대안도 없는 상황에서 학교 밖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 아이들에게는 '왜 학교 밖으로 나와야만 했는지, 앞으로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배움을 선택하고 싶은지'를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삶의 자리가 필요하다. 현대의 아이들은 어쩌면 단 한 번도 자신이 주체가 되어 삶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자의든 타의든 학교 밖으로 나온 아이들에게 이제라도 자신의 삶을 두고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 우리 어른들의 몫이라 생각한다.

놀배네에서 나눈 이야기들 중에 학교를 자퇴하고 나온 한 아이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어떤 학교를 만들면 네가 다니고 싶겠느냐?"는 질문에 "등하교가 자유롭고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을 자기 진도에 맞게 배울 수 있는 학교면 다니고 싶어질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아이는 "어른들은 우리를 위해 무엇을 자꾸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우리를 가만히 두면 좋겠다"고 했다. 시대가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바지만 그럼에도 교육방법은 여전히 바뀌지 않는다. 이렇게 상상력이 바닥인 어른들이 앉아서 자신들의 미래를 재단하지 말 것을 강하게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 아이들에게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는 '틈'이 필요하다. 요즘 학교 안과 밖에서는 삶의 전환을 꿈꾸며 '틈'을 찾아가는 과정들이 늘어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딸이 하버드대학에 합격하고도 바로 학교를 가지 않고 갭이어(gap year)를 가져서 화제가 되었다. 갭이어는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졸업 시점에서 다음 학교 진학하기 전에 1년 정도 긴 방학을 가지는 틈새교육이다. 이것은 아이들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시간과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이러한 틈새를 원하는 청소년들에게 충분히 쉬어갈 안식처가 필요하다. 그곳은 그들을 위해 준비된 프로그램으로 정렬된 세련된 공간이 아니라 자연스레 깃들어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리며 자신의 삶을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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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미래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것이다. 유목세대인 우리 아이들이 자신만의 삶의 이유를 찾아 주도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삶의 철학을 공유하고 또 함께 살아보며 배우는 삶을 위한 배움터가 필요하다.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 청년들을 위해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새로운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젊은이들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계획하며 고민할 수 있는 삶의 자리를 열어주고 기다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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