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증에 걸린 듯 -진실을 노출시키려 하지 않는 이들이 이 병에 걸리면 얼마나 좋을까?- 나무들이 옷을 벗어젖히는 계절이다. 곡식으로 가득 찼던 들판도 까만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세월을 먹어 간다는 것을 느낄 사이도 없이, 시간이 덧없이 지나간다. 피 끓는 청춘을 보면 아직도 마음 설레지만, 그 청춘들에게 늘 인생을 이리저리 살아야 한다며 이러쿵저러쿵 잔소리를 해대는 나를 돌아보면,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다. 여러분은 언제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침잠이 줄어들 때인가요? '요즘 아이들은 우리하곤 달라'라며 아이들과 세대차를 느낄 때인가요?

어느덧 노는 물이 달라졌다. 소주 한 잔 곁들이며 세상사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이가 50대, 60대 형님들이다. 형님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들의 지혜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잘났고 많이 배웠다 하더라도 삶의 경륜이 묻어나는 그들의 말에 늘 고개를 숙일 뿐이다. 하지만 시대가 시대다보니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네가 맞니 내가 맞니, 핸드폰을 꺼내는 일도 다반사다. 형님들은 스마트폰을 여는 순간 자연스레 안경을 벗는다. "나이를 먹으니까 가까이 있는 게 잘 안보여. 안경을 벗고 이렇게 봐야지"하면서 눈에서 화면을 멀리 가져간다.

나이듦을 느끼는 것은 돋보기를 찾는 노안이 찾아오면서부터인가 보다. 노안이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진적으로 눈의 조절력이 떨어져 가까운 글씨를 보기 힘들어지는 일종의 노화 현상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개인마다 노안이 찾아오는 시기는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인생을 지금에 집착하기보다는 멀리 보기 시작하는 혜안이 찾아오는 시기와 비슷하다. 성질 급한 형님도 유순해지고, 고집 센 형님도 어느새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것을 보면 인생의 혜안이 찾아온 것을 느낄 수 있다. 자식 키우느라, 먹고사느라,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려고 앞만 보고 살아온 인생이 깨달음을 얻는 순간, 삶의 성찰을 통해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는 그때가 되면 어른이 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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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안이란 눈앞의 이익만 좇지 말고, 인생을 멀리 보고, 주변을 두루 살필 수 있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지라는 자연의 섭리가 아닐까 한다. 그때가 어른이 되는 때이기도 하니까. 돋보기는 가까이에 있는 사물을 더 크게, 더 선명하게, 더 명확하게 보기 위한 도구이다. 나도 언젠가는 노안이 오고, 돋보기가 필요할 때가 찾아 올 것이다. 하지만 돋보기를 낀 듯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던 나에게 노안이 온다고 한들 슬퍼할 일만은 아닌 듯하다. 그나저나 정작 나라를 이끄는 이들에게 노안은 언제 찾아오려는지. 

/장진석(아동문학가·작은도서관 다미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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