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거창 촛불집회 참관기

거창은 인구 6만 명 조금 넘는 농촌지역이다. 이곳에는 일찍부터 사회운동이 활발했다. 예를 들어 농민회, YMCA같은 익히 알려진 시민단체 뿐 아니라 언론소비자주권행동 거창지부, 늘푸른거창, 함께하는 거창 등 자생적인 시민단체들도 다양하게 있는 곳이다. 최근 군수 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를 누르고 무소속 후보가 당선됐으며, 교도소 반대 운동으로 결집된 거창지역 시민단체들은 수백 명 씩 모이는 집회와 상경 집회를 예사로 해낼 정도로 역량이 있었다.

거창군청과 군청 앞 로타리 사이에는 삼각형 모양의 작은 광장이 있다. 사람을 다 채우면 4~500명 정도 모일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서 교도소 반대 집회, 홍준표 주민소환 집회 등이 열렸었다. 때때로 거창군에서는 그곳을 막기도 했지만 최근 촛불집회에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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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0월 5일 교도소반대 거창군민대책위 발족식 모습./경남도민일보DB

마늘까는 아낙네와 크리스마스 트리

11월 19일 오후 5시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 좁은 광장 한 켠을 ‘미니 송전탑’ 같은 것이 채우고 있었다. 가뜩이나 좁은 광장이 더 좁아 보였다. 도대체 이게 뭔가? 현장에서 장비를 준비 중이던 임영태 씨는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용 철탑입니다. 보통 12월 초에 설치하는데 오늘 갑자기 일부 교회 목사들이 업체에 얘기해 설치했다고 합니다”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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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군청 앞 광장을 차지하고 있는 크리스마트 트리용 철탑./임종금 기자

오후 5시가 넘어서면서 속속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노년층은 별로 없었고 40대가 주축으로 보였다. 부모를 따라왔는지 청소년도 많이 참석했다. 집회 사회자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 적었다. 이미 집회에 익숙한 듯 사람들은 알아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광장에 앉은 사람보다 광장 옆 벤치나 화단에 앉은 사람이 더 많았다. 도합 200명은 족히 돼 보였다.

거창군은 농업이 주 산업이다. 일부 주민들은 나물과 마늘을 가져와 손으로는 일을 하고, 입으로는 구호를 외쳤다. 바람이 이쪽으로 불 때마다 마늘 냄새가 확 풍겨왔다. 크리스마스 트리용 철탑과 마늘 까는 아낙이 겹쳐진 집회공간은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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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9일 거창군 촛불집회 모습./임종금 기자

청소년이 분노한 까닭

집회를 연 사람은 거창 대성고 2학년 학생이었다. 거창군은 인구에 비해 명문고가 많아 ‘교육도시’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였다. 김흥준 학생은 노트에 빼곡하게 자기가 할 말을 적어왔다. 서울에서 태어나 거창에 온 김 군은 어느 날 갑자기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한다.

“2014년 4월 16일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이 또렷합니다. 오후 3시 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학교에서 뛰어 놀다가 집에 와서야 그 사건(세월호 참사)을 알게 되었고 그날 독서실에서 숨죽이면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사건은 저의 인식, 가치관에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왜 청소년들이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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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발언을 하고 있는 김흥준 학생./임종금 기자

“그녀(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은 자라나는 청소년 세대, 형·누나 세대의 세상에 대한 마지막 희망, 일말의 기대마저도 철저히 짓밟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공부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도 서민이고, 그 사람들이 말하는 ‘개·돼지’ 일 텐데. 이런 절망의 감정이 저를 지배했습니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거창고 역사교사였던 신용균 선생이었다. 그는 명예혁명을 화두로 10여 분간 여러 역사 사례를 열거했다. 영국, 미국, 프랑스 혁명을 되새기며 “이제 긴 싸움의 시작일 뿐입니다. 최소 6개월에서 2년 이상 싸움이 갈 겁니다. 역사적 사례에서 보듯 저들은 정말 목숨이 위태로울 지경이 되지 않으면 결코 권력을 내려놓지 않습니다. 긴 호흡을 갖고 가야 합니다”라고 참가자들에게 호소했다.

두 사람의 발언 이후에는 단조로웠다. 구호 몇 번 하고, 노래 몇 번 따라하는 형식적인 절차가 남아 있었다. 사회자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 남자는 ‘박근혜는’ 여자는 ‘하야하라’ 이런 식으로 구호를 따로 외쳐보기도 했지만 반응은 시원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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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참가자들이 거창읍내를 행진하고 있다. /임종금 기자

저녁 6시 30분 무렵, 집회는 끝나고 사람들이 일어섰다. 그들은 강석진 국회의원 지역 사무실까지 행진했다. 거창읍내는 작았다. 정보과 형사가 ‘스피커 소리가 기준치를 초과했다’고 하자 스피커 소리를 낮췄다. 그래도 좁은 읍내를 메우기에는 충분했다. 상가에 있던 사람은 대부분 상가를 나와 가두 행진을 구경했으며, 주변을 지나던 초등학생들과 뒤늦게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행진에 합류했다. 행진규모는 조금씩 커졌다. 행진하면서 ‘박근혜 구속’, ‘새누리당 해체’ 같은 평범한 구호 외에도 ‘교도소 예산 삭감’, ‘강석진은 (새누리당을)탈당하라’는 구호도 있었다. 강석진 국회의원 지역 사무실은 2차로 좁은 골목에 있었다. 근 300명의 사람들이 골목을 길게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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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참가자들이 거창읍내를 행진하고 있다. /임종금 기자

“박근혜를 죽여야해”

집회 전에 참가자들은 종이를 한 장씩 미리 들고 왔었다. 집회 도중 그 종이에 뭔가를 썼으며, 이제 강 의원 사무실 현관을 그 종이로 도배했다. 딱풀·테이프 냄새가 풍겨왔다. 참가자가 직접 종이에 쓴 내용이기 때문에 제 각각이었다. “내가 쪽팔려서 해외에 못 나간다”, “쌀값 보장”, “학교 앞 교도소 예산 전액 삭감”, “박근혜=수구언론=재벌=새누리당 한꺼번에 박살내자”, “나는 개돼지가 아니다. 국민 무시하는 정권은 필요없다”, “군민들의 뜻을 따라 새누리당 해체하라!”, “지겹다 새누리당 해산하라!”, “마이 해무따 아이가 아직도 남았나”, “신천지당 해체하라” 등 같은 문구가 하나도 없었다. 현관문으로 부족해 인근 전봇대까지 종이가 붙었다. 의외로 대통령보다 새누리당에 대한 비판이 더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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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국회의원 지역 사무실 현관에 빼곡히 붙은 종이들. /임종금 기자

다시 거창군청으로 행진이 시작됐다. 자전거를 타고 행진에 합류한 초등학생 3명이 눈에 띄었다. 3~4학년 정도로 추정되는 소년들이었다. 이 3인방은 누구보다 소리 높여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부모님하고 같이 왔니?

“아뇨. 저희들 여기 있다가 따라온 건데요. 이거 계속해요?”

-다음 주말에 서울에서 크게 한다고 하네.

“정말요? 우리 버스 타고 갈까? 학교 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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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진을 따라온 자전거 초등학생들./임종금 기자

구호와 마이크 소리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묻혀서 제대로 인터뷰하기는 어려웠다. 돌아서려는 찰나 잠시 구호가 멈추고 조용한 틈에 소년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박근혜를 죽여야해. 이대로 가다가는 나라가 망해.” 소년들에게 대통령은 이미 경멸과 저주의 대상이 돼 있었다.

대열은 8시 무렵, 거창군청 앞 광장에 도착했다. 행진에 참가하지 못한 20~30명이 서울 집회 실황을 보고 있었다. 사회자가 다음 주 집회를 공지하는 동안 사람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짐을 챙겼다. 다 까지 못한 마늘이 봉지에 담겼다. 100여 명은 아쉬운 지 남아서 서울 집회 실황을 계속 보고 있었다. 사회자가 ‘10분 후 영상을 끄겠습니다’라고 한 뒤에야 모두 흩어졌다. 11월 26일 그들은 다시 이곳에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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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회를 마치고 나서 깐 마늘을 챙기는 주민. /임종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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